[3040칼럼] 연구윤리의 나쁜 예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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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4   |  발행일 2019-09-24 제30면   |  수정 2020-09-08
나치·日731부대 생체실험
장애학생에게 방사능 노출
흑인 남성들 대상 매독 연구
연구 윤리는 깡그리 무시돼
데이터수집 끝없이 감시를
[3040칼럼] 연구윤리의 나쁜 예
강선우 전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미국 대학 교수 재직 당시 가르쳤던 대학원 수업 중 하나가 ‘연구방법론(Research Methods)’이다. 과목명이 말해주듯 연구를 하는 데 있어 다양한 ‘방법들’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정작 ‘연구방법’, 그 중 특히 ‘기술적인’ 내용은 전체 수업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순서도 학기 말 즈음으로 밀려 있었다.

내 ‘연구방법론’ 수업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주제는 바로 ‘연구 윤리’였다. 내가 가르쳤던 ‘연구방법론’ 수업 뿐 아니라, 내가 대학원에서 배웠던 ‘연구방법론’ 수업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준비하며 참고로 찾아보았던 타 대학들의 연구방법론 수업 계획서(syllabus)에도 ‘연구 윤리’의 중요성은 크게 다르지 않게 반영돼 있었다.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통계 분석 등을 포함한 실험 등에서 어떤 변수를, 왜, 해당 연구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는 연구의 이론적·실증적 배경, 가설, 연구 방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변수에 대한 해석을 하고 그 해석에 기반해 변수를 선별해 통계 작업이나 실험에 포함시킨다.

변수에 대한 연구자의 해석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다시 말해 그 변수들이 연구에 쓰이려면 연구 데이터의 수집 이전, 수집 과정, 수집 이후가 윤리적이어야 한다. 세계2차대전 당시 나치의 생체실험결과나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결과가 방법론적 오류나 결과의 조작때문에 연구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듯.

연구의 ‘윤리성’에 대한 OK 사인을 주는 곳이 바로 ‘연구윤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참여했던 연구관련, 서울대병원IRB의 심의를 받지 않았던 것과 관련해 현재 서울대병원측이 심의 절차에 착수했다.

지금은 당연시 여기는 연구윤리 관련 법과 규정들, 그리고 연구를 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어야 하는 IRB는 자연스레 생겨난 결과물들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수백, 수천명의 목숨과 억울한 희생을 대가로 얻어진 처절한 역사의 산물이다.

연구윤리의 초석이라 일컬어지는 누렘버그 코드(Nuremberg Code)도 세계2차대전 종료 후 1945년 전범을 대상으로 진행된 재판의 판결문이 그 기원이니, 결국 생체실험의 결과로 마련된 것이 연구 윤리의 시초인 셈이다.

1940년대 말 우리에게 시리얼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퀘커사(Quaker Oats)의 지원으로 MIT대학 연구팀이 발달장애학생 수십명을 속여 무료 점심과 야구티켓 등으로 환심을 산 후, 우리 몸에서 철과 칼슘 등의 흡수를 알아보기 위해 수없이 방사능에 노출시켰던 실험이 있었다.

1932년에서 1972년 사이 40여년간 미국 정부가 600명의 저소득층 흑인 남성만을 대상으로 매독과 페니실린 관련 연구를 진행한 터스키기 연구(Tuskegee Study).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수백명의 흑인 남성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1961년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시행한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타인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게 해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피실험자들을 속였다. 해당 연구는 현재까지도 심리 연구에 있어 ‘하얀 거짓말’의 범위와 연구 윤리를 논할 때 어김없이 그 예로 소환된다.

오늘날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연구윤리, 연구윤리법, 연구윤리위원회(IRB)는 이처럼 비윤리적 연구에 희생된 연구 참여자들의 목숨, 건강, 눈물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아무리 옳은 가치라 할지라도, 당연한 이치라 할지라도, 엄격한 잣대로 끊임없이 감시하지 않으면 금세 틈이 생기고 무너져 내린다.

연구 윤리는 표절, 결과 조작, 논문 저자의 순서 문제가 아니다. 연구의 시작, 연구의 끝, 그리고 그 중간과정 - 연구 자체가, 연구 전체가 윤리다.
강선우 전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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