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2]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이자성 청송 한지장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박관영기자
  • 2019-10-01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아흔아홉 번 손질 전통방식 그대로 7대째 한지 가업 이어

무형문화재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인 이자성씨가 완성된 한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3년생 미만의 토종 참닥나무를 찌고, 두드리고, 말리는 등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청송한지는 질기고 윤이 나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자성 청송 한지장이 한지뜨기(초지)를 하고있다. 초지는 한지의 두께와 섬유 방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작업이다.
한지뜨기 작업 뒤 어느 정도 물이 빠진 종이는 한 장씩 떼어내 열판에 붙여 건조시키는 과정을 또 거친다.
한지. 닥나무를 베어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반듯이 뜨고, 정갈히 말리는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쳐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서 빛과 바람의 세계로부터 사람을 온유하게 감싸는 창이었고, 초혼(招魂)을 하여도 돌아오지 않는 이가 먼 길 떠날 적에 입는 옷이었다. 세상이 변하여 한지는 이제 일상과 멀어졌지만 지금도 청송에는 아흔아홉 번의 수고로움을 일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이 준 재료를 갖고 옛 방식 그대로 한지를 만드는 사람들, 청송 한지장이다.

예부터 파천면 감곡마을은 한지 유명
1920년대까지 20여가구 제지로 생업
수요 줄자 이상룡만 송강리 옮겨 명맥
지금은 장남 이자성 한지장이 맥 이어
수입 닥나무 쓰지 않아 품질 전국 명성

#1. 청송 한지마을

청송군 파천면 신기2리,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라 하여 ‘감곡(甘谷)’이라 부른다. 마을은 예부터 참닥나무 산지였다. 마을사람들은 섬유질이 우수한 참닥나무와 마을 앞을 흐르는 깨끗한 물로 오랫동안 종이를 만들어 왔는데, 종이를 만드는 지소(紙所)가 있다고 하여 ‘지통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구전에 의하면 삼국시대부터 종이가 마을의 특산품이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1920년대까지 20여 가구가 한지를 생산했으며, 제지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 주민들도 부업으로 삼았다.

원래 감곡마을은 다양한 성씨가 모여 살았지만 현재는 벽진이씨(碧珍李氏) 판서공파(判書公派)의 세거지다. 벽진이씨는 31세손인 원천(源川) 이석일(李錫一)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종이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이원중(李元重), 이진두(李振斗), 이종진(李鍾震), 이성순(李聖淳), 이상룡(李相龍), 그리고 이자성으로 이어져 7대째 종이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삼았다.

옛날 감곡마을 사람들은 공동으로 한지를 만들었다. 집집마다 닥나무를 마련해 오기도 하고, 집에 젊은 사람이 없으면 대신 종이를 떠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며 어울려서 종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유리창이 보급되면서 창호지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한지를 주로 사용하던 각종 의례도 현대화되는 등 한지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마을의 한지공방은 크게 위축되었다. 마을에서는 1960년대까지 한지를 생산했으나 곧 모든 제지 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 그 즈음 이상룡은 이웃한 송강리로 자리를 옮겨 조상들로부터 전수해온 한지 제조 작업을 이어나갔다.

#2. 닥나무가 종이가 되는 시간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만든다. 참닥나무 중에도 3년생 미만의 토종 참닥나무로 몸체에 생채기가 없는 것이 섬유질이 부드러워 품질이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다. 닥나무는 주로 늦가을에 뿌리 위를 조금 남겨 놓고 베어 온다. 봄에 닥나무를 채취해도 되지만 그럴 경우 껍질이 질겨진다고 한다.

채취해 온 닥나무는 큰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어 6~7시간 푹 삶는다. 껍질이 물렁물렁해질 정도가 되면 꺼내어 식힌 뒤 껍질을 벗겨낸다. 벗겨낸 껍질은 겨울철부터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건조시켜 보관했다가 한지를 만들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때 건조된 껍질은 물에 불려 닥칼을 이용하여 한 번 더 표면의 껍질을 벗겨낸다. 이렇게 나온 것을 ‘백닥’이라 한다.

백닥은 잿물을 넣고 같이 고아 낸다. 요즘은 양잿물을 사용하는 데가 많지만 청송한지는 천연 잿물을 사용한다. 콩깍지, 수숫대 등을 태워 재를 만들어 하루 정도 물에 우려내면 재는 밑으로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물만 남는데 그 맑은 물이 천연 잿물이다.

잿물을 넣은 백닥은 7시간 정도 고아 낸다. 이렇게 장시간 고아야 백닥이 부드러워진다. 이후 백닥을 방망이로 두들기고 짓이겨 ‘닥죽’으로 만든다. 그리고 닥죽을 깨끗한 물과 함께 지통에 넣고 잘 섞이도록 저어준 뒤 닥풀을 넣어 다시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닥풀은 황촉규(黃蜀葵)라 불리는 뿌리를 물에 담가 불린 뒤 두드려서 채취한 것이다. 닥풀 역시 날이 더우면 풀이 삭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에만 작업할 수 있다고 한다. 닥풀의 양에 따라 한지의 내구성이 달라지는데, 닥풀을 많이 넣으면 종이가 얇아지고 조금 넣으면 종이가 두꺼워진다. 따라서 닥풀의 양이 적당해야 종이가 질기고 오래갈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한지뜨기(초지)에 들어간다. 보통 작은 종이는 전통식 외발에, 큰 종이는 쌍발을 사용한다. 외발뜨기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초지 방법으로, 직사각형의 조그만 발 하나를 턱이 없는 틀 위에 얹고 공중에 매달린 가로막대에 한 줄로 매달아 앞뒤 좌우를 흔들어 종이를 뜬다. ‘앞물’을 떠서 뒤로 버리고 ‘옆물’을 떠서 반대쪽으로 버리는 동작을 서너 번씩 반복하면서 한지의 두께를 조절한다. 외발은 전후좌우로 물을 흘려보내 닥 섬유가 서로 엇갈리게 결합하기 때문에 섬유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얽혀 질기고 강한 종이를 만들 수 있다.

외발뜨기는 발 위에 다른 발틀이 없어 물이 사방으로 흘러갈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섬유가 그 방향으로 배열되는데, 이러한 방법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발로 건진 종이는 차례로 쌓아 올려놓고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압착시키면서 천천히 물이 빠지도록 한다. 어느 정도 물이 빠지면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내 열판에 붙여 건조한 뒤 완성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침’이라고 하여 종이의 밀도와 섬유질을 높이기 위해 말린 한지를 수백 번 두드리기도 한다.

#3.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청송 한지장

이렇게 만들어진 청송한지의 품질은 전국에서 유명하다. 청송 한지는 질기고 윤이 나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송 한지를 창호지로 사용하면 유리보다 보온 효과가 높고, 통풍은 물론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석일 대로부터 이상룡에 이르기까지, 자연이 준 재료를 갖고 전통 방식 그대로 한지를 만들어온 청송 한지장(韓紙匠)은 1995년에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이상룡의 장남인 이자성이 가업을 이어받아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로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이자성의 부인인 김화순이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딸인 이규자는 전수자로 지정되어 전수 장학생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여기에 동생 이병환까지 한지 공장 일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전통한지 제작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무형문화재 청송 한지장 기능 보유자인 이자성은 공방 근처에 약 6천㎡의 닥나무 밭을 일구었고 청송한지체험관을 조성하여 청송 한지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수입 닥나무를 쓰지 않고 닥나무 산지인 청송군 일대와 예천 용궁 등지에서 원료를 수집하여 사용한다. 동네 어른들은 닥나무를 채취해 경운기로 실어다 주기도 하는데, 이는 예부터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한지를 만들어 온 전통이 현재에도 일부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부분이다. 청송한지 체험관에서는 한지 만들기와 공예품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하는 공간도 별도로 있다.

청송한지의 수요층은 대부분 화가나 서예가, 서예나 동양화를 취미로 하는 동호회 사람들이라 한다. 특히 서예가들 사이에서 청송한지의 뛰어난 품질은 정평이 나 있으며 최근에는 책을 제작하거나 공예품에 쓰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현재 생산하고 있는 청송 한지의 종류는 송월지, 매화지, 살구지, 난초지, 목단지, 싸리지, 붉은싸리지, 공산지, 국화지, 단풍지, 오동지, 죽화지 등 2합지와 3합지, 4합지, 5합지에서 10합지, 기타 담배쌈지 등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지원

▨참고= 경북도 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재청. 청송문화재대관. 경북향토사연구협의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