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옛 건축물의 진정한 가치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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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5   |  발행일 2019-11-05 제34면   |  수정 2019-11-05
옛 건축물은 따분해 보이지만
생생한 역사와 시대정신이
구조물 곳곳에 고스란히…
건축물 테마상품 개발 통해
진정한 가치 조명되길…
[화요진단] 옛 건축물의 진정한 가치

옛 건축물은 고리타분하다. 정형화된 구조물은 구태의연하고 권위적이고 형식적이다. 때로는 ‘권력의 상징’처럼 보이고, 때로는 ‘그들만의 공간’으로 비춰진다. ‘근엄한 꼰대’의 모습도 보인다. 서원이 그렇고 누정이 그렇다. 지체 높은 어느 양반가의 집도 같은 인상이다. 옛 건축물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관점은 딱 요 정도로 요약된다.

필자의 시각과 관점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 수학여행 때처럼 그저 흘깃 스쳐가는, 별로 볼 것 없는 공간으로만 생각했다. 학교에서 짜놓은 수학여행 코스 중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만 했던 곳, 특징 없는 어떤 이미지로 뭉뚱그려져 있는 매력 없는 공간이 옛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업무상 옛 건축물을 자주 접하면서 생각과 관점이 확연히 바뀌었다. 그것은 그저 흘깃 스쳐가는 볼 것 없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구태의연하고 권위적이고 형식적이지 않았다. 역사와 사람살이의 정취, 시대가 요구하는 질서가 고스란히 스민 공간이 바로 옛 건축물이었다. 생생한 역사는 물론 건축 공간적 이해와 정신의 지형도까지 절묘하게 접붙여져 있었다. 전통과 자부심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되새김질할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담장을 일부러 낮춘 어느 양반가의 집에서는 ‘소통’을 배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지만 담장을 낮춰 자신을 낮추고 숙이려는 마음가짐은 절로 존경스럽다. 출입문을 아주 낮게 만들어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 설 수 있게 한 어느 서원 입구에서는 예의 가치를 되새긴다. 안채 입구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내외담’을 쌓은 종택에서는 남녀유별과 예절을 실천한 유학적 가치를 깨닫는다. 분별심을 공간화해 자기 식구들과 마주치는 일도 늘 조심하려 한 배려는 지금도 유효한 정신적 유산이다.

어디 이뿐인가. 건축물을 배경으로 펼쳐진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해학적이며, 때로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삶만큼이나 널려 있다. 그 이야기는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이승과 저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다시 생성하고 변화하며 이 시대 아이들의 교과서가 되고, 어른들의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마루에 내려앉은 햇살의 청청한 윤기와 처마 그림자가 드리운 마당은 덤이다. 그러한 소박한 풍경은 늘 그윽하고 평안을 준다.

옛 건축물의 가치는 깊이 들여다 볼수록 무한하다. 무뚝뚝하고 화려한 미감은 없지만 그 속에는 소통과 마음가짐과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옛 선조들의 정신이 서려있는 공간이 옛 건축물이다.

지난 5월부터 대구관광뷰로가 대구지역에 산재한 3대 문화권(가야, 신라, 유교)과 근현대 건축물을 테마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용역은 한국능률협회에서 맡았다. 반가운 일이다.

내년 1월까지 대구지역의 주요 건축물을 재평가하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한다고 한다. 흩어져 있는 점(단일 관광점)을 선(관광코스)으로 잇고 이를 면(관광지)으로 묶어 관광벨트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내년이 ‘대구경북관광의 해’여서 더욱 기대된다.

두서없이 언급했지만 옛 건축물은 고리타분하고 죽은 역사가 아니다. 치밀한 공간 배치 속에 소통과 배려, 전통과 질서가 서려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그 속에 깃든 정신은 지금 이 시대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가치이다. 특히 도시 정체성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숨어 있는 원석이다. 지역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특화 콘텐츠로도 손색이 없다. 역사적인 공간을 넘어 대중이 공감하는 콘텐츠로도 발전할 수 있다.

대구관광뷰로와 한국능률협회의 프로젝트가 옛 건축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하는 ‘씨앗’이 되길 기대한다. 더불어 옛것을 바라보는 옹졸했던 시각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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