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3] 심연을 들여다보는 예술가의 시선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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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7   |  발행일 2019-11-07 제24면   |  수정 2019-11-07
이 억울한 죽음에 눈물 흘려본 적 있나요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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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의 신작 소설집 ‘새의 시선’(문학과지성사, 2019)은 세상을 보는 눈과 자신을 보는 눈이 하나가 된 경지를 보여 준다.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주목하여 그 슬픔과 고통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시선의 대상으로서 세상과 자신의 구분이 의미를 잃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작가의 말’에서 정찬 스스로 밝혀 두었듯이 이 작품집의 소설들은 ‘만장이 펄럭이는 세계’를 응시한 결과다. 수많은 만장들,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깃발들이 사람들의 눈물 어린 시야를 가리고 막힌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했던 세상을 ‘새의 시선’의 작품들이 되살려 낸다. 이들 작품이 쓰인 시기는 2014년 늦봄에서 2017년 여름이다. 2014년 늦봄이라니, 4월16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새의 시선’을 이루는 일곱 편의 세계에는 슬프고 불행한 죽음들이 미만해 있다.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살아남은 사람의 수명을 단축하거나, 잊었던 죽음들을 불러내어 슬픔과 죄의식에 빠져들게 하거나, 슬픔의 긴긴 길을 거쳐 절대자에게 호소하게 하는 것, 이것이 소설집 ‘새의 시선’이 풀어내는 세계다. 해서 이 소설집은 예기치 않게 닥친 억울한 죽음으로 중음을 떠돌 수밖에 없는 넋들을 되새겨 그들을 잃은 슬픔을 독자 모두의 슬픔으로 전화시키며 벌이는 진혼곡이라 할 만하다.

이 소설집이 기리는 억울한 죽음은 세월호를 가운데 두고 그로부터 과거로 더듬어 올라간다. 2014년 4월16일은 이 소설집의 기원이다. 전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서 자신들의 무력함과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국가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을 까맣게 태우던 그날 말이다. 우리들의 자식, 우리들의 이웃이 억울한 수중고혼이 되어, 슬픔과 분노가 복받쳐 국가를 원망해야만 했던 남은 자들에게 길고 긴 상처와 죄책감을 남겨 놓은 그날이 이 소설집의 중심이다. 소설집 중간에 수록된 ‘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길’ ‘등불’의 세 편이 세월호를 불러내고 있다. 여기서 시간을 거슬러 정찬은 2009년 용산 참사와 1986년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의 분신 사건까지 끌어안는다. 두 번째에 수록된 표제작 ‘새의 시선’이 그렇다.


세월호·용산참사, 군사독재하의 죽음
타인의 슬픔 공감 못하는 야만적 현실
작가 정찬은 자신의 고통으로 만들어



정찬이 사회적 죽음, 국가권력이 연루된 사건으로서의 죽음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죽음 자체에 육박한다. 스물다섯 살 대학생이 영영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자 그 슬픔에 어머니와 아버지도 차례차례 죽음의 길에 들어서는 이야기를 제시하거나(‘새들의 길’), 1999년에 벌어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건으로 유치원 아이들 19명이 숨진 안타까운 사건을 환기시키기도 하며(‘등불’), 백혈병을 앓던 아내와 사별한 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 슬픔에 빠진 아비를 그리기도 한다(‘카일라스를 찾아서’).

이렇게 국가 사회적 죽음뿐 아니라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우연한 죽음들을 망라함으로써 이 소설집은 ‘운명을 알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196쪽)인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우리 모두의 절대적인 운명인 죽음을 숙고하는 것이 ‘새의 시선’의 길이다. 이 길은 물론 낯설지 않다. 정찬의 소설을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이 길이 작가가 밟아온 오랜 여정의 지속임을 안다.

1983년 ‘말의 탑’으로 등단한 정찬의 초기 소설세계는 밀도 있는 언어로 권력의 문제에 대한 치밀한 사유의 세계를 열어 우리 소설계에서 보기 드문 영역을 구축하였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다각적인 소설화를 통해 중편소설 ‘슬픔의 노래’(1995년)와 장편 ‘광야’(2002년)를 낳았다. 한편으로 그는 종교의 문제,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과 절대자의 구원의 문제를 줄곧 다루어 장편 ‘세상의 저녁’(1998년)과 ‘빌라도의 예수’(2004년) 등을 펴냈다. 근래에는 환생의 서사를 통해 폭력과 전쟁의 역사를 다룬 ‘유랑자’(2012년)나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길고 긴 슬픔을 환기시킨 ‘길, 저쪽’(2015년) 등을 통해 36년에 이르는 작가 이력 내내 그의 관심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었다. 역사와 국가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인간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그것이다.

‘새의 시선’은 이러한 정찬의 길이 2010년대 우리 사회의 비극을 끌어안고 풀어낸 결과이다. 다시 ‘작가의 말’을 끌어오자면, 만장이 펄럭이는 세계 속에서 넋을 피할 도리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넋에게 육신을 부여하기 위해, 넋을 견디는 시간을 보낸 작가의 기록이 이 소설집이다. 이러한 점에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 작품집의 처음과 끝에 실린 두 편 ‘양의 냄새’와 ‘플라톤의 동굴’이다.

‘양의 냄새’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약물 과용으로 숨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을 깊이 탐구하고 동일시한 나머지 배우로서의 자신은 없어지고 영화 속 인물이 되어버린 배우의 비극을 그렸다. 히스 레저의 실제 작품들과 이력을 그대로 가지고 온 이 소설은 그 자체만 보면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만든다. ‘양의 냄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소설집의 끝 작품 ‘플라톤의 동굴’을 함께 생각할 때 또렷해진다.

‘플라톤의 동굴’은 극작가인 서술자가 자신의 희곡을 설명하는 형식을 취한다. 에밀 졸라가 세잔을 모델로 하여 썼다는 소설 ‘작품’을 바탕으로 쓴 희곡 ‘예술가의 초상’을 공연하게 되었는데, ‘작품’의 주인공 클로드 역을 하게 된 친구 K가 연기를 위해 클로드에 몰입한 나머지 클로드처럼 자살해 버린다.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머리에 가시가 박힌 듯해 하던 극작가는 그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 새로운 희곡 ‘플라톤의 동굴’을 쓴다.

이 희곡의 주인공 또한 K인데 파리에서의 유학을 접고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소설로 인간의 본성을 바꾸고 그로써 새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은 까닭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이혼을 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데까지 몰린 것이다. 이때 졸라의 ‘작품’을 읽고는 주인공 클로드의 영혼을 이해하려 하는데, 그와의 동일시 속에서 세잔의 영혼을 보게 된다. 이 세잔의 영혼을 알기 위해 파리로 가서 그의 흔적을 좇지만 오리무중이던 차에 아이의 죽음 소식을 전처로부터 듣는다. 죽은 아이를 생각하고 그 환영을 보는 중에 그는 클로드를 거쳐 세잔의 영혼에 공감하게 된다. 세잔이 말한다. 자신은 졸라로부터, 모든 진정한 예술가가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것, 고통 없이는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 속에 있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힘을 얻었다고.

‘플라톤의 동굴’의 K와 ‘양의 냄새’의 히스 레저를 함께 보면, 타인의 영혼과 일체가 되는 이들의 모습이 바로 작가의 지향임을 알 수 있다. 만장이 펄럭이는 세계의 넋들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정찬 말이다. 물론 이들 인물과 달리 작가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의 넋 속으로 파고드는 모험을 감행하며 자살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 대신 세잔과 ‘플라톤의 동굴’의 극작가처럼, 심연을 들여다보는 고통을 감내하며 세월호와 용산 참사, 군사독재하의 죽음 그리고 우리 일상의 여러 죽음들을 작품화한다. 세잔과 마찬가지로 심연을 들여다보는 고통을 묵묵히 견디면서 세상의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자기 자신의 경우인 양 그리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죽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고통 또한 보아 왔음을 소설집 앞뒤의 작품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새의 시선’은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이되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소설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죽음과 고통의 이야기이면서 예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취는, 작가 생활 내내 세상의 고통을 주목해 온 정찬이 세상의 슬픔으로 소설을 쓴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운 자기 응시를 계속해 왔음을 보여 준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응시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야만이 적지 않고 자신의 공감을 과시함으로써 진정성을 잃는 경우가 없지 않은 우리의 민낯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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