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8] 풍호정 주사와 추현 상두소리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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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2   |  발행일 2019-11-12 제13면   |  수정 2020-03-18
풍호정 주사, 평산신씨 입향조 정자와 함께 건립…경북북부 민가 양식
[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8] 풍호정 주사와 추현 상두소리
풍호 신지의 정자인 풍호정 왼쪽에는 관리인의 주거건물인 주사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로 중정이 하늘로 열려 있어 마치 얕은 연못과 같은 느낌이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92호인 풍호정 주사는 경북 북부지방의 서민 주거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18] 풍호정 주사와 추현 상두소리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추현리 상두소리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구전민요로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 사진은 추현리 상여행렬을 재현한 모습. <청송군 제공>

평산신씨(平山申氏) 청송 입향조는 세조 때 사람인 풍호(風乎) 신지(申祉)다.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인 그는 “반드시 남쪽 고향땅으로 가라”는 아버지 신영석(申永錫)의 유언을 따라 만년에 진보의 합강(合江)에 정착했다. 합강이란 여러 갈래의 물이 한데 모여 강을 이룬다는 뜻으로 반변천이 진보면 소재지를 지나 여러 물길을 받아들여 크게 휘도는 땅이었다. 그 큰 물굽이가 만든 수리(水利) 좋은 농경지를 기반으로 한 평산신씨들의 집성촌이 있는데 바로 합강에 이웃한 추현리(楸峴里)다. 두 마을에는 평산신씨가 이룬 두 개의 문화재가 있다. 합강의 풍호정 주사와 추현의 상두소리가 그것이다.

◆풍호정 주사
합강 상류의 절벽 위 경사지에 자리
ㅁ’자형 건물에 중정이 하늘로 열려
대청 왼쪽엔 온돌방, 오른쪽은 고방
1994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92호

◆추현 상두소리
장례식 때 상여꾼의 亡者 애도 노래
축원만가 없는 ‘대도둠소리’가 특징
반변천 아래 하고산 마을에 전수관
199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6호

#1.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92호 합강리 풍호정 주사

풍호정은 풍호 신지의 정자다. 정자는 합강 상류의 절벽 위 약한 경사지에 안정감 있게 서 있다. 풍호 신지는 세조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1463년에는 효행과 청렴으로 의영고부사(義盈庫副使)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벼슬이 학문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하여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만년에 이곳에 정자를 짓고 동생 신희(申禧)와 더불어 즐기며 살았다.

풍호정은 조선 세종 14년인 1414년에 건립되었다. 정자의 왼쪽에는 관리인의 주거건물인 주사(廚舍)가 있는데 풍호정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는 대청방, 양쪽은 온돌방으로 전면 반 칸은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놓았고 온돌방의 측면에는 쪽마루를 달았다.

풍호정기에 따르면 정자는 숙종 9년인 1683년에 중수했고 1947년에도 중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풍호정은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정자 오른쪽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신지의 후손 신예남(申禮南)과 부인 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雙節碑閣)이 있다.

풍호정 주사는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이다. 중정이 하늘로 열려 있는데 마치 얕은 연못과 같은 느낌이다. 중정 쪽으로 개방된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익사와 연접한 온돌방이 자리한다. 온돌방의 대청 쪽에는 아주 낮은 외짝세살문을 달았고 측면에도 외짝세살문을 두어 외부에서 직접 출입하기에 편하게 하였다.

대청의 오른쪽에는 고방을 두고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고방의 바닥은 흙바닥으로 경상도 북부지방의 오래된 민가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는 요소다. 고방 옆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대문과 연결되는 마루 1칸이 있다. 마루는 외부 쪽에 궁판을 끼운 정자살문을 세워 폐쇄시켰고 중정 쪽은 시원하게 개방했다. 대문 옆으로는 외양간이 부엌과 연결된다. 외양간 상부에는 수장 공간을 두었고 아래는 판벽으로 처리했다. 풍호정 주사는 경북 북부지방의 서민 주거를 살필 수 있는 건축물로 1994년 9월29일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92호로 지정되었다.

풍호는 공자의 제자 증점이 말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쐰다’는 이야기에서 따왔다. 그는 ‘기수는 멀고 무우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기수와 무우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더라’고 했다. 풍호정 아래에는 반변천이 흐르다 깊이 감도는 소(沼)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먼 시선이 비봉산(飛鳳山)에 닿고, 왼쪽에는 작약산(芍藥山)이 솟아 그 줄기가 천 너머로 드리워졌고, 정면의 하늘 아래엔 광덕산(廣德山)이 빛난다. 주변은 웅장한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른쪽 뒤편에는 200년 된 소나무가 긴 가지를 늘어뜨린 채 말간 얼굴로 서 있다. 나무는 150년 전 어느 겨울날 폭설로 인해 윗가지가 꺾였으나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나무의 그러한 기개가 구한말 평산신씨 후손들의 의병정신으로 이어졌다고 여긴다. 풍호정과 풍호정 주사는 풍호 신지의 후손인 평산신씨 장절공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2.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6호 추현 상두소리

합강의 북서쪽에 추현리가 있다. 가래나무가 많고 높은 고개가 있어 가래나무 추(楸)자와 고개 현(峴)자를 써서 마을은 추현리, 고개는 가랫재라 했다고 한다. 영등산(嶺登山)의 남쪽 사면과 고산(孤山)의 북동 사면이 만나는 계곡을 따라 좁고 길게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의 완만한 구릉지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자연마을로는 하고산, 상고산, 가래두들, 추현마을 등이 있으며 평산신씨 집성촌으로 각각 10여호씩 모여 산다. 반변천 물굽이를 내다보는 하고산 마을에 추현 상두소리 전수관이 있다.

상두소리는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향도꾼 혹은 상두꾼으로 불리는 상여꾼들이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일명 만가(輓歌), 향도가, 향두가(香頭歌), 행상소리, 회심곡(回心曲), 상여메김소리, 옥설개, 설소리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노랫말은 지역에 따라 다르나 비슷한 내용의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도 적지 않다.

농촌에서는 초상이 나면 마을사람들이 서로 협동해서 장례를 치렀고 또한 마을사람들이 상여꾼이 되어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상여 행차를 보는 일도, 상두소리를 듣는 일도 흔치 않다. 추현리의 상두소리는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구전민요로 지금도 전승되고 있으며 1997년 3월17일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만가는 세 가지로 분류 되는데 축원하는 축원만가, 상여가 나갈 때 하는 출상만가, 무덤을 만들 때 하는 성분만가로 나눌 수 있다. 추현 상두소리는 축원만가가 없는 대신 희귀한 ‘대도둠 소리’가 있고, 출상만가인 상여소리가 있으며, 봉분을 다지면서 부르는 ‘덜구소리’가 있다. 대도둠 소리는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에 상가에서 하는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소리의 사설은 죽은 이의 생애와 자손의 활약상 등이 상례의 진행과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엮어진다. 상여소리는 죽은 자가 저승길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지만, 대도둠 소리와 덜구소리에서는 자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서 작별을 고하게 하는 과정이 등장한다.

추현 상두소리의 선소리꾼은 신상경(申相京)이다. 그는 1926년에 충북 단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예천군 상리면에서 보냈고 일곱살에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갔다고 한다. 22세에 귀국한 그는 예천의 용문면 금당실(金塘室)에서 1년 반, 상리면 고항리에서 7년, 지보면에서 2년간 살았고 이후 강원도 원주로 가서 4년간 농사지으며 살다가 부친의 고향인 청송 진보면으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진보면 부곡리에서 거주했고 1990년경에 추현리로 이사 왔다. 그는 예천에 살 때 상두소리를 익혔고 47세 때에 가래두들 장례에 초청되어 처음으로 상두소리를 불렀다 한다.

신상경의 노래는 백세를 못 살고 떠난 고인에 대한 아쉬운 정과 가족과의 사별, 죽음은 어느 누구도 못 면한다는 것, 묘를 명당터에다 잡았으니 자손들이 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내용, 상주들의 딸과 사위·친손자·외손자를 불러들이면서 노잣돈을 소재로 재미있게 메김구를 엮어 간다.

‘에이이 간다 간다 나는 간데이/ 부데 부데 잘 있거라/ 에이여/ 북멍선아 몰더두나 대문 밖이 하적일데/ 에이여 이후후후/ 아이고 아이고 우이 갈꼬/ 에이여’ 이것은 대도둠 소리다. ‘북망산이 멀다드니 너화넘차 너허호/ 너호 너호 너화넘차 너허호’ 이것은 상여소리다. ‘어허시야/ 어허시야/ 우리 아들 어데 갔노야’ 이것은 상여가 가파른 곳을 오를 때의 노래다. ‘어허 덜구여/ 어허 덜구여/ 덜구꾼은 여덟인데/ 어허 덜구여/ 나까진 아홉이라/ 어허 덜구여’ 이것은 덜구소리다.

구슬프게 소리 잘 했던 신상경이 세상을 떠난 뒤 현재는 신영국이 추현 상두소리 보유자가 되어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 문화재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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