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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4] 알고도 몰랐던 SF, 우리 곁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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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지기자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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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장르 한국 SF소설 ‘대반전이 시작됐다’

SF를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구세대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더해 SF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미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SF를 알고 아마도 나이도 젊은 사람들은 SF를 ‘과학소설’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들의 경우 그냥 SF라고 부르는 걸 선호한다.


2000년대초까지 작가군 2명뿐
현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
앤솔러지·장단편 꾸준히 출간
과학탐구서 인간심리까지 다뤄
다채로운 작품세계에 주목해야



과학과 소설을 뜻하는 말을 합친 ‘Science Fiction’을 줄인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 부르게 된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필자와 이름이 같은 서울 SF 아카이브 대표 박상준 선생의 의견을 따르면, 일본에서 판타지와 SF를 함께 싣는 잡지가 판타지 즉 공상소설과 SF 곧 과학소설의 두 장르를 함께 드러내는 제목으로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제호를 잡았는데, 이 잡지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SF를 공상과학소설로 지칭하는 오해가 생겼다 한다. 이런 연유를 알았든 몰랐든, 이러한 오해가 풀려서 지금은 SF를 과학소설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SF에 대해 잘 알든 모르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SF를 사랑한다. 이 구절을 읽는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근거를 제시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영화의 Box Office 순위를 보면 상위 10위 내에 SF 영화가 3~4편씩 올라와 있는 것이 확인된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쥬라기 공원, 혹성 탈출 등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나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어벤저스, 판타스틱 4, 로보캅 같은 히어로물 시리즈 등은 물론이요,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킹스맨 등 첩보물 시리즈 또한 SF다. ‘A.I.’나 ‘아바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인셉션’ ‘그래비티’ ‘마션’ ‘인디펜던스 데이’ 등이 SF임은 물론이다. 이런 SF 영화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확인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SF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더해 한 가지를 더 지적해 두자. 문화생활에서 영화 관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가구가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지출하는 비용 중에 영화 관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이후 80%를 넘고 있다. 이것이 가리키는 사실은 이렇다. 한국인의 문화생활에 있어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영화 관람이고, 그러한 영화 중 30~40%가 SF이므로, 본인이 SF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든 아니든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이미 SF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SF 영화 애호가들이 SF 문학까지 잘 안다고는 하기 어렵다. 더 좁혀서 우리나라 작가가 창작한 SF 즉 한국 창작 SF 소설을 얼마나 읽었을까 하면 어떤 의미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 없다. 적지 않은 작가가 SF를 쓰지만 한국 창작 SF 작품집들이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작기 때문이다. 사정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SF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호는 분명하며 따라서 한국 창작 SF에 대한 잠재적 수요 또한 적지 않다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SF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은 대단히 미미한 편이라고 말이다.

사정이 이러했는데, 최근 들어 이러한 상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상징적인 사건은 김초엽의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이 2019 한국일보 문학상 본심 대상작 10편 중의 하나로 선정된 일이다. 김초엽은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이공계 인재로서,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예 작가다. 한국 창작 SF의 상황 변화를 알리는 한 가지 사건이 더 있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으로 국내외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조남주가 장편 ‘사하맨션’(민음사, 2019)으로 SF를 선보인 것이다. 일찍이 박민규가 두 권짜리 소설집 ‘더블’(창비, 2010)을 펴내며 작품의 반을 SF로 채운 적은 있지만, 일반 문단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SF를 쓰는 경우는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김초엽과 조남주가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평지돌출 식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어도 한국 창작 SF를 써내는 작가들이 그동안 꾸준히 노력해 왔고, 그러한 노력을 뒷받침하는 여건의 변화 역시 마련되어 왔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SF를 써서 원고료를 받고 작품을 게재할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었으며 SF 관련 문학상도 없었다. SF를 쓰는 작가들이 모여 ‘환상문학 웹진 거울’과 같은 동인을 이루거나 ‘HAPPY SF’ 같은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며 동인 작품집을 스스로 출간하는 정도였다. 이들 작가를 지원하는 문학상이라 해야 한국과학문화재단과 동아일보사가 주관하여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세 차례 진행한 ‘과학기술 창작 문예’가 유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5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아태이론물리센터의 월간 웹진 ‘크로스로드’가 한국 창작 SF 작품에 제대로 된 고료를 주며 월 1회씩 작품을 게재해 오고 있으며, 월간에서 계간으로 다시 웹진으로 변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7년부터 2012년까지 SF 중심의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이 작가들의 숨통을 틔워 준 바 있다. 근래에는 여기에 더하여, 소설은 물론이요 영상과 만화, 웹툰 등을 대상으로 하는 ‘SF 어워드’, 2천300만 원의 상금으로 중단편 및 장편소설을 선정하는 ‘한국과학문학상’, 청소년 SF를 발굴하는 ‘한낙원 과학소설상’ 등이 4~6년째 지속되고 있다.

한국 창작 SF가 맞은 최근의 상황은 가히 르네상스라고 할 만하다. 2000년대 초까지 복거일과 듀나밖에 없다시피 했던 작가군에, 김보영, 김창규, 박성환, 배명훈 등이 가세하여 SF 문학계의 틀을 갖춘 뒤, 지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러 출판사들이 다양한 앤솔러지는 물론이요 단편집과 장편소설 등을 꾸준히 출간하여, 한국 창작 장르문학 중 오직 SF만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SF 블록버스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발표하는 창작 SF에도 관심을 기울여 볼 일이다.

한국 창작 SF의 세계는 실로 다채롭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과학적 탐구 맥락이 강한 정통 하드 SF에서부터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헤쳐 나감으로써 일반문학과의 차이를 말하기 어려운 경우까지 폭이 넓다. 순수하게 SF적인 소설도 있지만, 판타지나 좀비 등 인접 장르와 결합된 SF도 풍요롭다. 숨가쁘게 읽어 나가는 재미를 주는 SF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천착하는 묵직한 SF가 공존하고 있다. 문학 일반이 그러하듯, 재미를 주는 작품과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함께 한다. 따라서, 굳이 SF라 해서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할 일이 아니다. 좋은 작품은 훌륭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 일반문학이라 해서 혹은 SF라 해서 좋은 것이 아닌데, 한국 창작 SF의 경우도 정확히 이러하다.

한국 창작 SF의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로,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조남주의 ‘사하맨션’을 간략히 언급하며 글을 맺는다. 김초엽의 소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고향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역설적인 상황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우주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뻔한 줄 알면서도 자신의 바람을 실천해 내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진실을 제시하고 있다. 조남주의 소설은 기업이 지배하는 도시국가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어쩌면 이미 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회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속에서 이류, 삼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인간 삶의 진정한 모습을 환기하고 있다. 굳이 SF라고 전제할 필요가 없는 이러한 소설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한국 창작 SF의 한 특징을 보여 준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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