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이제는 봄?

  • 김수영
  • |
  • 입력 2020-05-02   |  발행일 2020-05-02 제23면   |  수정 2020-05-02

코로나19가 여태껏 보지 못한 많은 풍경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꽃이 버림받은 봄 풍경이다. 배춧값, 뭇값이 폭락해 밭을 갈아엎은 모습은 종종 봤지만, 꽃밭을 뒤집어엎는 것은 보질 못했다. 그런데 전국 곳곳에서 꽃밭을 갈아엎는 일이 연거푸 벌어지고 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밭을 트랙터들이 무참히 짓밟고 뒤집어엎는 광경은 참 시린 봄을 느끼게 한다. 이 역시 코로나가 가져온 아픔이다.

제주도에서 노란 유채꽃밭이 사라졌다. 매년 3~4월이면 상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유채꽃밭이 황무지로 변했다. 코로나가 확산하자 한 달여 전 일찍 파쇄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삼척시도 비극을 맞았다. 매년 열었던 유채꽃 축제를 취소하고 유채꽃밭을 갈아엎었다. 바깥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자 꽃밭 자체를 없애버리는 고육지책이다. 전남 구례군 산수유 마을로 꽃구경하러 갔다가 일행 5명 중 4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꽃놀이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오지 말라 해도 오니 갈아엎었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라는 관계자의 말에서 왜 이 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만이 아니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연기되면서 화훼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화훼농가 매출이 반 토막 났고 판로가 막힌 일부 농가는 정성스럽게 가꾸던 꽃밭을 갈아엎었다. 화훼 농가 지원을 위해 3월14일 화이트데이 때 꽃을 선물하자는 '花이트데이' 이벤트, 사회복지시설에 꽃 화분 보내기 등을 통해 꽃 소비촉진 행사를 벌였지만, 화훼농가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고 1천명 가까이 발생했던 코로나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명 안팎으로 뚝 떨어졌다. 5일까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면 생활방역체계로 갈 가능성도 커졌다. 코로나 때문에 그지없이 황량해진 봄이 이제는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듯하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처럼 코로나로 '달력 속에 박제돼 있던 봄'이 이제 달력을 박차고 나올 태세다. 꽃향기 맡을 수 있는 봄이 기다려진다. 김수영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