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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음성군 ‘철(鐵)박물관’·진천군 ‘종(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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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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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키워내는 쟁기, 생명 파괴하는 칼, 평화 알리는 종소리 ‘삶과 철 이야기’

철박물관 입구.
종박물관 전경.
4년 전, ‘무현금(無絃琴):전통과 현대의 조우’라는 타이틀로 이색기획전이 열렸다. 오행의 금(金)사상에 근간을 둔 ‘전통 장인과 현대 예술가들의 컬레버레이션’이라는 획기적 시도였다. 너무나 낯선 조건들이라 한데 녹아들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놀라운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그야말로 ‘줄 없는 거문고 소리가 마음을 울려 심금에 가 닿는다’는 무현금의 마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 현장이 바로 5년 터울로 태어난 충북의 음성 철박물관과 진천 종박물관이다.


‘담금질’의 교훈을 얻게 될 ‘음성 철 박물관’

쇳물을 운반하는 손잡이, 후크(Hook).
국내 최초의 ‘전기로’(1966~1980).
국내 최초‘전기로’ 쇳물 운반 ‘후크’
바늘·자물쇠·경첩·호미·가래·국수틀
엿장수 가위소리 들리는 듯한 옛추억
생활속의 철·예술 등 다채로운 전시



기원전 1천200년경부터 700여 년 동안을 철기시대(鐵器時代)라 부른다. 고고학에서 선사시대를 분류하는 마지막 단계다. 하지만 아직도 철을 ‘산업의 쌀’이라 부르니 현대 역시 철기시대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철박물관은 단순히 ‘회고취미’를 찾는 곳이 아니다.

철박물관은 ‘상상 이상의 철(iron beyond imagination)’을 슬로건으로, 철을 소재로, 철문화를 주제로, ‘철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재인식하게 한다’는 것을 미션으로 2000년에 개관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집행이사로도 활약하는 장인경 관장은 동국철강 창업자 고(故) 장경호 회장의 손녀. 박물관이 제 목소리를 단단히 내는 데는 그 이유가 분명함을 알겠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현 박물관 자리는 고려시대 몽고군을 무찌른 철제무기를 생산한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있던 충주와 멀지않고, 부지 마련이 그나마 어렵잖아 낙점됐다.

철박물관의 드넓은 정원에는 국내 최초의 전기로(電氣爐), 계근대, 그리고 쇳물을 운반하는 거대한 손잡이인 후크(hook)가 근대 유물의 대표격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박물관 전체에 철의 역사에서부터 철을 만드는 과정, 생활 속의 철, 철의 재활용, 철과 예술 등 다채로운 철 이야기가 담겨져 ‘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임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인류가 처음 사용한 철은 ‘운석’!” 박물관 도록을 들추며 이 한 문장에 기가 꺾였다. 몇 만 광년을 불타며 날아온 별똥별에서 우리의 문명이 시작되었다니. 원소기호 Fe. 원자번호 26번, 녹는점 1천535℃. 별들의 핵융합반응으로 생겨난 금속원소. 지구의 35%를 차지하는 주요한 원소. 적어도 철박물관을 찾기 전까지 철은 내게 그저 원소기호로만 존재했다.

오늘의 세계는 왜 불평등한 모습이 되었을까. 평화를 알리는 종소리와 잔인한 전쟁의 포성, 생명을 키워내는 쟁기와 생명을 파괴하는 칼, 역사는 철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인류가 꿈꾸는 세상에는 언제나 철이 있었다. 철 위를 거닐고, 철에 기대고, 철 속에 머물러 살고 있지 않는가. 철은 가장 뜨거운 곳에서, 가장 강인한 정신으로 태어나 가장 오랜 역사를 만들고 가장 값진 삶을 일구었다. 그러는 사이 더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철을 파괴의 도구로 만들어 버렸고,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오히려 고맙게도 철로 지구 온난화를 해소하고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뜨거운 용광로의 열기와 차갑고 거칠며 무겁기만 한 물성이 아련한 삶의 향기로 변한 전시실에서는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있었나’ 싶은 물건들이 옛 기억에 실려 나를 향한다. 바늘, 가위, 자물쇠, 경첩, 낫, 호미, 쟁기, 가래, 국수틀, 참기름틀, 붕어빵기계, 빙수기계, 고드랫돌, 양철냄비, 그리고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夫蘇)가 불을 발명했다는 신화에서 이름 붙었다는 부시까지. 그리고 그 틈새에서 엿장수 가위소리도, 놋그릇을 ‘스뎅(?)그릇’으로 바꾸던 어머니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마블의 영화 ‘아이언 맨’이 히트를 치면서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지만, 다리미를 일본식 발음 ‘아이롱’이라 불렀던 기억도 떠올랐다.

오늘, 누구나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담금질’되어 있을 것 같은, 낡았지만 낡지 않은 철박물관을 다녀왔다. 철박물관에서는 언제나 세상일에 달아 오른 마음을 스스로의 망치질로 식혀야 마땅하다. 아직도 ‘철기시대’이기 때문이다. 애써 만든 24쪽의 철박물관 체험지가 내공이 여간 아니다. 만일 어린이와 동행한다면 더욱 ‘철’들게 되는 박물관이 될 것 같다.

▨ 음성 ‘철(鐵)박물관’ www.ironmuseum.or.kr


필연적 인연으로 세워진 ‘생거진천 종 박물관’

주철장 원광식(주요무형문화재112호)이 재현한 성덕대왕신종.
비천상을 돋을새김할 거푸집을 만드는 모형.
4C 추정 고대 철 생산 유적지 발견
밖에서 두둘겨 울리는 농밀한 소리
아름다운 울림에 명성 떨치는 ‘범종’
신비로운 금속공예 결정체·과학 산물


충북 진천 석장리는 국내 최초, 4세기쯤으로 추정되는 고대 철 생산 유적지가 발견된 곳이다. 이런 유서로 진천 군립(郡立) 종박물관이 2005년 문을 열었고, 2012년에는 주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 원광식 장인이 지닌 기술을 일반인도 접하게끔 전수교육관도 개관되었다.

종의 탄생, 범종의 역사로부터 성덕대왕신종 주조과정, 한국종의 비밀, 세계의 종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전시관을 따라가다 보면 종으로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전통미학 그리고 우리의 과학까지도 가늠할 수 있음에 놀라움을 더한다. 한국범종의 역사, 소리의 신비, 합금의 비밀까지 한자리에서 알게 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종 11기 중 5기가 일본에 있는 내력, 세계의 종소리로 피치와 템포를 분석해 만든 공식에 대입, 최고의 화음값을 얻은 사연, 독특한 음통과 일정한 배열의 음향학적 설비를 갖추고 있는 우리 종의 과학성, 우리 종의 복잡다단한 비밀을 다 알려주는 곳이 바로 진천 종박물관이다.

한국종을 비롯한 동양의 종들은 밖에서 두들겨 소리를 낸다. 공기를 울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대신 서양종은 안에서 울리기 때문에 밖으로 들리는 소리가 범종보다 농밀하지 못하다. 아우성처럼 들린다. 종소리로 동서양의 차이를 해석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범종은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최대로 커지는 주기적인 음의 변화(맥놀이)가 계속되는데, 종의 좌우균형이 맞지 않으면 맥놀이 또한 불완전하게 된다. 그래서 종을 치면서 음의 변화가 완벽해질 때까지 종 안쪽을 깎아낸다. 물론 어디를 얼마만큼 깎아내야 완벽한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는 것도 ‘구조진동해석’이 적용되는 ‘과학’이지만, 깜깜한 종 안에서 구도자의 마음으로 일승원음을 찾아내는 장인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범종의 맨 위에는 우리 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인 음통(音筒)이 있어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오고, 지옥중생까지 깨우려 도리천을 울리는 범종의 신비는 이러한 과학의 산물이다. 종박물관은 그 범종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독특한 형태와 주금술,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우리 범종은 ‘한국종(Korean Bell)’이라는 학명(學名)을 얻게 되었다. 용뉴에서부터 종신의 각 부분에 이르기까지 총집합된 우리 금속공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범종. 독일에서 온 어느 노학자는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을 보고 “이것만으로도 세계적인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나는 ‘한국의 범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만난 소중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종박물관 앞에 서니 그 만감의 기억들이 풀려나왔다. 새벽예불 종송으로 운문사의 새벽공기를 갈랐던 낭랑한 아미타경 독송, 범종소리를 녹음하느라 작대기로 무논을 치며 개구리 울음을 잠재우던 일, 한쪽 눈을 실명시킨 쇳물과의 질긴 인연 원광식 장인, 천상 종쟁이 김동국 장인, 맥놀이를 정리하고 성덕대왕신종 소리를 전국에 보급한 국립극장 김용국 과장, 종박사라 부르며 존경해마지 않았던 금속공학자 염영하 교수, 그리고 만나 뵐 때마다 “지극한 도는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고, 귀로 들어서는 들을 수 없다”며 성덕대왕신종 명문을 첫머리부터 외시던 고청(古靑) 윤경렬 선생의 기억까지. ‘생거진천(生居鎭川)’ 종박물관이라 그런지 유독 새삼스러웠다.

이곳을 찾게 되면 누구나 ‘생거진천대종각’에서 고래 모양의 당목으로 대종의 음관을 크게 한번 울려보고 종박물관으로 드시길. 그리고 우리 종의 현묘한 소리를 온 가슴에 담아두시길.

▨ 진천 ‘종(鐘)박물관’ www.jincheonbell.net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 김선국(사진가)


“쇠 연원·소리의 비밀…가슴 가득 채운 시간”

하루면 너끈히 만날 수 있는 서로의 거리는 승용차로 40분, 40㎞ 남짓. 두 박물관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철기시대’를 담백하게 느낄 수 있는 그곳은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누항(陋巷)의 시간을 끊임없이 되살리면서도, 다가올 미래는 더없이 아름다울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곳에서 그 아득한 쇠의 연원과, 그 쇠로 만들어 전해지는 모든 소리의 비밀로 가슴을 가득 채우고 왔으므로,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종소리는 모두 내가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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