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숨은 멘토 ‘R&D지원기관’

  • 홍석천
  • |
  • 입력 2012-08-11 08:22  |  수정 2012-08-11 09:14  |  발행일 2012-08-11 제11면
中企에 첨단장비·우수인력 등 제공
신기술 개발·사업화전략 수립 도와
20120811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중소기업 제품 개발의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터.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연구개발의 정확도를 높이고,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슈퍼컴퓨터는 가뭄에 단비와 같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1 대구시 북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엔유씨전자는 국내 녹즙기 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주방가전업계의 선두주자다. 최근엔 유명 탤런트를 모델로 내세워 선보인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외진출에도 나서 이른바 잘나가는 업체다.

하지만 엔유씨전자가 항상 이렇게 잘나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대 초반 발생한 특허분쟁이다. 당시 주력상품이던 녹즙기가 특허분쟁에 휘말리면서 엔유씨전자는 회사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기도 했다.

#2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자동차 구동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A업체는 최근 신제품 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창립 이후 한 세대가 지나도록 성장성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지만, 기계식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의 자동차 트렌드는 전자화에 따라 기계식 자동차 부품이 모터를 기반으로 한 전자식 부품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그런데 A사의 기술력은 기계식 부품에 집중되다 보니 자동차 부품의 전자화 열풍에 뒤처진다는 생각에 사장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이들 회사의 경영인이라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보편적 해결책인 특허 전문 변호사를 통한 소송전을 준비하거나(엔유씨전자), 전자 관련 연구인력을 채용해 기술연구소를 확대할 수 있다.(A업체)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중소기업인 두 회사에 비용이나 리스크 부분에서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두 기업의 CEO는 어떻게 이런 위기들을 타개했을까.

20120811
대구시 달서구 호산동 대구융합 R&D센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연구원 대구경북연구센터내 지능형자동차 실험 시스템 (왼쪽)과 한 연구원이 이곳에서 영상기반 지능형 자동차부품 검증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 <자동차부품연구원 제공>

◆ 중소기업 성장 숨은 도우미 R&D 지원기관들

이들의 해법은 바로 지역의 R&D 지원기관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엔유씨전자는 특허분쟁에 휘말린 상황에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대구경북지원을 찾았다. 사연을 접한 KISTI 대구경북지원은 엔유씨전자의 소송에 필요한 특허정보를 찾아 제공했다.

엔유씨전자와 KISTI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엔유씨전자는 특히 이후에도 KISTI를 신성장 경영 멘토로 활용한다. 신제품 개발을 위한 시장동향 자료를 제공받아 사업화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연기 없는 그릴이 대표적이다. 또한 원액기의 착즙률을 높이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KISTI가 보유한 국내 하나밖에 없는 슈퍼컴퓨터를 시뮬레이션에 활용해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자동차부품업체인 A사는 자동차부품연구원 대구경북연구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능형 자동차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역 굴지의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사업에 A사도 동참하면서 개별업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연구과정이나 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 수준의 지역 업체들이 수백억원이 소요되는 연구개발비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면서 “자동차부품연구원의 첨단 장비와 우수 인력의 도움이 있어 자동차부품업계의 트렌드인 전자화 융합화에 도전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 대구·경북에만 46개 연구지원기관 활동

중소기업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비용은 2005년 3조9천억원에서 2010년 8조6천억원으로 해마다 15%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 R&D 비용 증가율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연구개발의 성과를 사업화하는 능력과 이에 수반되는 기술력은 여전히 대기업보다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연구원의 1인당 R&D 비용은 대기업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신기술 개발과 이를 통한 사업화 성공률을 높이는 것인데도 전문인력의 부족과 재정적 한계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줄 수 있는 것이 R&D 지원기관이다. 이들 기관들은 관련 업종의 개별 중소기업 신기술 개발에서부터 보유 기술의 분석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진단하는 한편 사업화 전략 수립도 지원한다.

한마디로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사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대구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공 연구기관은 모두 46곳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지역의 선도산업을 대변하듯 자동차·기계부품 관련이 가장 많았고, 전기전자(IT), 섬유·패션 연구기관이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지역의 유력산업으로 육성중인 바이오·헬스 관련, 차세대에너지 관련 연구기관들도 눈에 띄었다.

◆ 차·기계부품 관련 기관 가장 많아

자동차·기계부품 분야에서는 대구기계부품연구원(DMI)이 가장 눈에 띈다.

2001년 대구시와 지역기업의 출연으로 출발한 대구기계부품연구원은 올해 6천여건의 시험평가 지원 실적과 250개의 중소기업을 핵심관리하고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 지원에 있어서도 지난해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145건을 수행 중이며,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도 10건에 달한다.

자동차·기계부품 분야 연구기관 중 전국 규모의 기관으로는 자동차부품연구원이 있다. 대구시 달서구 호산동 성서 4차산업단지에 있는 대구경북연구센터는 자동차부품의 융·복합화 사업과 함께 전기자동차 등 자동차의 모든 분야에 대한 연구지원을 하고 있다.

지역 차부품업체 기술지원은 물론 지능형자동차 상용화 연구나 파워트레인 부품 핵심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지역 지능형·그린카 로드맵 작성도 담당하고 있다.

이 밖에 경북차량용임베디드기술연구원이나 대구가톨릭대 자동차부품디지털설계·생산지역혁신센터, 그리고 경일대 자동차부품시험지역혁신센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대경권 지역본부도 자동차·기계부품 관련 지역 중소기업의 기술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또한 IT 관련 분야 연구소도 적지 않다.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이나 대구대 유비쿼터스신기술연구센터,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대경권 연구센터 등은 IT관련 중소기업 내지는 벤처기업의 기술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통업종인 섬유·패션과 관련해서도 경북천연염색산업연구원에서부터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섬유개발연구원, 섬유기계연구소, 염색기술연구소와 패션산업연구원 등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활동 중이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기자 이미지

홍석천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