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신드롬’ 그 현장을 찾아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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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07   |  발행일 2014-02-07 제34면   |  수정 2014-02-07
성지가 된 방천시장 350m 벽화길…주말 하루 2천명 순례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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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벽화길을 찾은 사람들. 요즘 주말엔 2천명 이상이 몰려들어 김광석 특수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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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시장 내 주점 백두대간에서는 매달 넷째 수요일 저녁 김광석을 추모하는 콘서트를 연다. 지역 통기타 동호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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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광석 벽화길 중간 쌈지공원에 들어선 김광석의 실제 크기 동상. 지역 미술인 손영복씨의 작품.


지난 1월22일. 탄생 50주년을 맞은 고(故) 김광석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음악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매년 1월은 ‘김광석의 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난 것은 22일, 타계한 것은 6일이기 때문.

작년엔 김광석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만 세편이 제작됐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사례가 없다. 한 가수를 위해 동시에 세편의 뮤지컬이라니…. 그의 음원이 뮤직차트의 상층부를 주름잡는다. 작년 봄 ‘그날들’에 이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즌 2가 지난달 26일까지 공연되고, 또 다른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가 전국 투어 중이다.

그의 18주기 기일인 지난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는 김광석추모사업회(이사장 김민기)가 주최한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4’가 열렸고, 8일엔 대구 경북대에서 이 무대가 다시 마련된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1995년 8월31일 김광석이 1천회째 소극장 전국투어 콘서트를 한 곳이다. 지금 그 입구 벽에 흉상이 마련돼 있다.

안방극장도 김광석 바람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18일에는 공교롭게도 김광석 관련 프로그램 두 편이 동시에 방영됐다. 하나는 KBS 2TV ‘불후의 명곡2- 전설을 노래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모창가수와 CD로 부활한 고인이 노래 대결을 벌인 종합편성채널 JTBC ‘히든싱어2’ 김광석편이었다. 이에 앞서 MBC도 작년 8월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김광석의 삶을 조명한 바 있다.

최근 김광석이 생전에 남긴 일기와 메모 등 육필원고를 토대로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에세이’(예담출판사)가 출간됐다. 임종진 등 몇 명이 김광석 평전류를 펴냈지만 고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지난달 22일 오후에는 벽화길(대구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김광석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요즘 ‘아버지 막걸리’ ‘파이팅’ 등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통기타 가수 채환씨가 공연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JTBC 히든싱어 김광석편 결승에 올라 내뱉은 한 마디 때문. “만약 우승한다면 상금 2천만원을 갖고 활짝 웃고 있는 김광석 동상을 김광석 벽화길에 하나 더 세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900여회 이상 ‘희망을 파는 콘서트(희파콘서트)’로 전국투어 중이다. 김광석의 1천회 소극장 신화를 추격하고 있다. 제1회 희파콘서트가 열린 곳은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이때 전부 김광석 노래를 불렀다.

40∼50대부터 대학생까지
온종일 대표곡 흘러나오는
스토리길 걸으며 감정이입
인근 주점은 팬들 아지트
정기적 콘서트 여는 곳도

◆김광석 성지로 둔갑한 방천시장 벽화길

지난 2일 벽화길을 찾았다.

인파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한산한 골목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많을 때는 하루 2천명 이상 몰린다.

2014학번 성균관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계열 학생 11명은 순전히 이 벽화길을 보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내려왔다. ‘서른 즈음에’를 잘 부르는 통기타 애호가 심하영씨(21)가 이날 나들이를 주도했다. 김광석을 닮은 이기호씨(20)는 “이 길에 오니 정말 대구가 김광석의 고장이란 게 실감난다”고 토로했다.

수성교 동쪽 끝 골목입구부터 송죽미용실까지 조성된 350m 벽화길. 온갖 낙서와 김광석 스토리가 있는 벽화가 관광객을 압도한다. 김광석을 모르는 사람도 이 벽만 정독하면 김광석이 어떤 존재인지 알도록 시시콜콜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벽화길 중간에는 사랑을 엮어주는 프러포즈 자물쇠도 있다. 상인회에 문의하면 행운의 자물쇠를 구입할 수 있다.

상인회 수다방에선 오전 11시~ 오후 8시에 20여개의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김광석의 대표곡을 흘려보낸다. 너무 일률적이라서 생동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 오면 다들 김광석처럼 통기타를 치고 싶어한다. 그 심리를 엿본 관계자들이 만든 통기타 레슨 안내 유인물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 길을 공공예술적으로 유지·관리하기 위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작가회(가칭)’가 곧 발족될 모양이다. 2009년 11월 죽어가던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벽화길 태동의 첫 단추였다. 문화기획사인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 조각가 손영복씨 등 30여명의 작가가 구역을 정해 2011년부터 벽화길을 마련했다. 현재 벽화 등 50여점의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됐다. 골목 자체가 거대한 포토존으로 변모됐다. 초창기 예술감독을 맡아 벽화길 만들기를 진두지휘한 손영복씨는 김광석 동상을 2개 만들었고, 아직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조만간 김광석 관련 홈페이지도 만들 계획이다.

대구시 중구청은 2011년 8월 김광석의 음악을 담은 영화음악제를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 ‘제1회 김광석 노래부르기대회’를 열었다. 2012년 10월에는 전국의 김광석 팬클럽 및 유명가수의 공연을, 2013년 10월엔 전국 버스커의 김광석 노래부르기 경연대회를 선보였다. 향후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쌈지공원을 야외공연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광석 음악회 전문 주점도 생겨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 거리는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김광석의 정서를 잘 이해하는 40~50대의 성지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벽화길을 둘러본 뒤 어김없이 허한 맘을 달래기 위해 근처 주점에서 김광석 얘기를 안주 삼아 술추렴을 한다. ‘대한뉴스’는 투뿔 갈비살로, 방천식당·동곡막걸리·백두대간 등은 막걸리집으로, 최근 문을 연 이자카야풍의 레스토랑인 ‘바라지’는 빈티지 인테리어로 사랑받는다. 특히 등산 아이템을 갖고 ‘백두대간’이란 술집을 연 김승국씨가 요즘 부쩍 바쁘다. 백두대간이 김광석 팬들의 아지트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천사노래예술단 대표인 김진덕씨(49)는 매달 넷째 수요일 오후 8시부터 2시간 동안 이 술집에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열기 위해 손영찬 황무지 이규언 이정후 정의호 등 지역 통기타가수들과 의기투합했다. 서범기씨(37)도 매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7시부터 김광석 타임을 갖는다. 그는 지난해 4월 벽화길에 빠져 친구 정승현씨와 버스킹을 시작했다.

방천시장 상인회가 적극 나서 공연할 수 있는 포인트까지 마련했다. 시장 중앙부 네거리 모퉁이다. 지난가을부터 포크 듀엣 ‘다락’(구본석·김강주)이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부터 거기서 공연하고 있다.

근처 가게도 이참에 김광석 콘텐츠를 십분 이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입주 예술가와 잘나가는 상인 사이에 ‘불편한 경계’가 생기고 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김광석 보리밥 뷔페집에서는 김광석의 대표곡을 메뉴로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불쑥 ‘김광석이 태어난 데가 방천시장’이라고 말을 꾸미려는 조짐도 보인다. 심지어 관련도 없는 ‘김광석 단골집’이란 간판까지 등장한다. 자기 업소가 김광석 관련 카페란 듯 벽화길 초입에 대담하게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한다.

최근 벽화길 중간에 있던 한 방앗간은 본업보다 특수를 겨냥해 반짝 호떡집을 열어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벽화에 세 들어 사는 남자’로 불리는 시인 정훈교는 최근 벽화길 바로 옆에 ‘시시콜콜(詩詩CallCall)’이란 작업실을 열었다. 정 시인은 김광석 관련 시 한 편을 벽화길에 기증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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