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과서에 없는 일제 침략史 캐는 ‘일본의 양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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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33면   |  수정 2014-10-24
동학 창시 최제우 순도(殉道) 150주기 맞아 역사기행차 대구에 온 日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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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츠카 아키라 전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가 수운 최제우 순도 150주기를 맞아 일본 내 동학연구모임 회원 40명과 함께 대구에 있는 수운의 순도지와 옥사 등을 답사했다. 대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최제우 나무’ 아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카츠카 교수와 회원들.

반세기 걸쳐 日 침략사 정면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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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츠카 아키라 교수

日의 동학농민군 학살 규명 기여
“동학은 19세기 대표적 민중운동
면면히 계승한 대한민국에 감동
동학답사는 역사진실 알리는 일”

양심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변별하는 도덕적 가치다.

지난 19일,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나카츠카 아키라 전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85)가 수운 최제우 순도 150주기를 맞아 지난해에 이어 일본 내 동학연구모임 회원 40명과 함께 대구에 있는 수운의 순도지와 옥사 등을 답사했다. 나카츠카 교수는 오사카 출생으로 1953년 교토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학생시절 그는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었다. 미국 점령군으로부터 일본의 독립을 요구하다 30여명의 동료와 함께 7개월간 정학을 받아 1년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그 이유로 졸업 후 5년간 취업을 하지 못했으나 나라여자대학에 있던 ‘야마베 겐타로’의 덕분으로 63~93년 나라대 교수로 재직했다.

나카츠카는 반세기에 걸쳐 근대일본의 조선 침략사 등을 연구한 사학자로, 한·일관계의 진실규명을 위해 매진해왔다. 그는 특히 근세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야만적 행위로 규정짓고, 아직도 이런 사실을 숨기면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 나카츠카 교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직시했을 때 한·일 우호교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동학에 대해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민중운동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올해 제7회 녹두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전남도립도서관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일본의 근·현대사 자료 1만5천여점을 무료로 기증하기도 했다.

이날 나카츠카 교수를 만나 동학과 한·일근세사 및 한·일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역은 박맹수 교수(59·원광대 원불교학과)가 맡았다. 박 교수는 나카츠카 교수와 함께 동학에 대해 공동연구를 해오고 있다.

-대구방문은 두 번째로 알고 있다. 동학 교조 최제우 선생 대구 순도길을 답사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대구에 오기 전 경주 남산의 신라유적과 수운 최제우 선생이 깨달음을 얻은 구미산 용담정을 둘러봤다. 동학사상이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사상적 기반과 뿌리 위에서 동학사상이 태동됐다고 본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성과다. 대구와 경주는 동학사상의 뿌리이면서 머리다. 그런 가운데 대구는 동학사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경주는 수운 선생이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서 이미 성역화가 진행되었으나 대구는 수운이 순도한 중요한 곳인데도 아무런 표식조차 없다.

“안타깝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치열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는 11월 경북대에서 동학관련 세미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랫동안 근세 한·일관계사를 연구한 걸로 알고 있다. 누구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나.

“1960년대 초, 청·일전쟁을 연구하면서 야마베 겐타로 선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일본이 천황제국가라는 전제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야마베 선생은 20년대부터 사회운동에 투신해 온 분으로 대단히 자유롭고 활달했다. 그분은 일본이 패전 직후 나를 포함한 젊은 연구자에게 학문을 하는 두 가지 원칙을 가르쳐주었다. 첫째는 일본근대사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무엇보다 조선(남북한 통칭) 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불가결하며, 둘째는 천왕제 아래 출판된 사료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한 부분이 많아서 신뢰할 수 없으니 1차 사료를 통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야마베 겐타로는 어떤 인물인가.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요, 진보적 역사가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져 내린 조선 민중의 삶이 과연 일본의 주장대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었는지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저술한 ‘일본의 식민지 조선통치 해부’를 출간한 지식인이다. 이 밖에 ‘일제통치하의 한국근대사’ ‘한일병합소사’ 등의 책을 저술했다.”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스승이 가르쳐 준 원칙대로 1차 사료를 찾다가 1994년 후쿠시마 현립도서관 내 사토문고에 소장돼 있는 일본참모부 출간 ‘일청전사(日淸戰史)’ 초안을 발견했다. 그 초안 속에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이 경복궁을 불법으로 점령한 사실이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이후 97년 일본에서 ‘역사의 위조를 밝히다’(한국번역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라는 책을 냈다. 이후 지난해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 박맹수 교수와 함께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또 하나의 청·일전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동학농민군 진압전담부대로 차출돼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당시 국제법과 조선의 국내법을 어기면서까지 동학농민군을 무참히 학살한 ‘전원살육 작전’의 실태를 밝혀낸 것인데, 2012년에 발견된 일본군병사의 종군일지에 근거한 것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1997년 홋카이도 대학의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와 함께 홋카이도대에 유학 온 박맹수 교수를 삿포르시에서 처음 만난 게 인연이다. 그 만남을 계기로 2001년 전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의 21세기적 의미’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발표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그 학술대회에서 오랜 기간 동학을 연구해 온 한국학자들의 연구발표를 들을 수 있었으며, 전북도내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동학의 정신이 현대 한국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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