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망개떡’ 한 입이면 열 부자 부럽지 않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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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35면   |  수정 2016-10-28
■ 푸드로드 경남 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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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감싼 짭짤한 망갯잎이 인상적인 망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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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건너왔지만 경상도버전으로 변형된 의령 온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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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소바 전도사’로 불리는 화정소바의 김선화 사장.

멥쌀 갈아 찐 뒤 팥소 넣어 빚은 망개떡
국밥·소바와 함께 의령 대표음식 3인방
떡 감싸는 청미래덩굴은 성병에 특효

3代 가업 잇는 전통시장 내 의령망개떡
국내 최초로 망갯잎 염장보관법 완성
사계절 소비자에 쫀득한 망개떡 선봬

메밀사리에 멸치국물과 고명 ‘의령소바’
장터 잔치국수 형태로 향토음식 입지


소고기국밥과 더불어 의령의 대표음식 3인방으로 꼽히는 것은 망개떡과 의령소바다.

망개떡은 크게 세 가지 유래가 있다. 가야국에서 백제에 혼례식으로 보낸 품목 중 하나라는 것,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이 떡을 전쟁식으로 먹었다는 것, 떡갈나무 잎으로 싼 일본의 ‘가시와모찌’와 비슷해 일제강점기 의령으로 유입됐을 것이란 설이다. 이제 의령은 최강의 망개떡 고장이다. 군 초입에 망개떡 조형탑이 서있다. 한우산 정상에도 망개떡마케팅 일환으로 망개떡 먹는 도깨비 등 망개떡 설화원을 만들었다.

얼마 전 서울 호원아트홀에서 뮤지컬 ‘홍의장군 곽재우’ 관람객을 대상으로 망개떡 무료시식 및 홍보행사를 했다. 의령문화원은 지난해 ‘의령의 언어와 문화 1’ 시리즈 일환으로 ‘의령소바와 의령망개떡’이란 책까지 펴냈다. 망개떡이 의령군 특산품이 될 수 있었던 건 군내에 유달리 ‘청미래덩굴’이 많아서다. 특히 자굴산에는 군락지가 사방에 널려있다. 의령읍 하리 수암마을은 일명 ‘청미래마을’로 불리는데 농촌체험객을 상대로 망개떡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1년 의령망개떡을 ‘지리적표시제 등록 제74호’로 지정한다. 비로소 의령이 ‘망개떡 1번지’로 급부상한다.

망개떡은 멥쌀을 갈아서 쪄 낸 후 팥소를 넣어 빚은 떡을 연밥처럼 청미래덩굴 잎으로 감싼 것이다. 사람들은 떡보다 ‘망개’를 더 궁금해한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로 부른다. 자연, 그 잎은 ‘망갯잎’, 잎으로 싼 떡은 ‘망개떡’이 된다. 청미래덩굴은 황해도에서는 ‘매발톱가지’, 강원도에서는 ‘참열매덩굴’, 전라도에서는 ‘종가시덩굴’ 등으로 불린다. 여러 고장에 여러 떡이 있지만 잎사귀를 붙여 내는 떡은 흔치 않다. 전남 영광의 명물인 ‘모시떡’은 모싯잎을 갈아 쌀가루에 섞어 사용한다.

북한에는 잎을 이용한 떡이 몇 개 있다. 멥쌀가루를 익반죽해서 납작하게 빚어 뽕잎을 맞붙여 찐 ‘뽕떡’, 들깻잎을 싸서 찐 ‘깻잎떡’, 좁쌀가루를 익반죽하여 갸름하게 빚어서 가랑잎에 싸서 찐 ‘곱장떡’, 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여 조금씩 떼어 가랍잎으로 찐 다음 콩고물을 묻힌 ‘가랍떡’ 등이 있다.

청미래덩굴은 특히 성병에 특효가 있단다. 여기에 얽힌 설화가 있다. 어떤 사내가 외간 여자와 놀아나다가 성병에 걸린다. 아내는 남편을 산으로 쫓아버렸다. 사내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 이런저런 식물을 먹던 중 우연찮게 청미래덩굴 뿌리(일명 ‘토복령’)를 삶아 먹었는데 효과를 얻었고 덕분에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몹쓸 사내를 집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고 해서 일명 ‘산귀래(山歸來)’ ‘신선이 남긴 음식’이란 의미로 ‘선유량(仙遺糧)’ 등의 이름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도 이 떡이 유통됐다. 상인들은 유리통 안에 떡을 넣고 찹쌀떡 장수처럼 골목을 돌아다녔다. 어릴 때 대구시 서구 원대동 골목에서 유리통 안에 들어 있는 윤기 흐르던 그 떡을 군침만 흘리며 본 적이 있다.

◆떡방앗간에서 태어난 망개떡

현재 의령군에는 임영배씨의 ‘의령망개떡’, 전연수씨의 ‘칠곡 토속식품’ 등 10여 개 브랜드가 있다. 이로 인해 <사>의령망개떡협의회까지 탄생하게 된다. 원조 격인 ‘의령망개떡’은 전통 스타일을 고집하고, 92년 후발주자인 ‘칠곡 토속식품’은 컬러떡과 다양한 팥소를 개발하는 등 퓨전 스타일을 정착시켰다.

의령 전통시장 내에 있는 ‘의령망개떡’은 토박이에겐 ‘남산떡방앗간집’으로 통한다. 현재 70세인 임영배씨가 대표로 있고 그 아들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선 그런대로 형편 좋게 살았다.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경제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임씨는 부모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떡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묵공장을 차렸는데 하필이면 공장 부지가 떡방앗간이었다. 운명이다 싶어 어묵과 떡을 병행했다. 하지만 10년간 어묵공장의 기름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설상가상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결국 망개떡에 올인한다.

가장 큰 난관은 망갯잎 확보였다. 겨울에는 잎을 확보 못한다. 잎은 매년 6월20일부터 따기 시작해서 8월 초순까지 딴다. 너무 부드러워도 너무 작아도 안 된다. 8월이 넘어가면 잎에 벌레가 생겨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잎을 따 와도 갈무리하는 법을 몰랐다. 말려서 사용해 보았지만 염장이 가장 효과적이란 걸 알았다. 염장한 덕에 향도 더 짙어지고 불순물까지 제거할 수 있었다. 소금물의 삼투압 효과로 잎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파리 염장법은 깻잎장아찌에서 착안했다. 소금의 양 조절이 관건이었다. 창고에는 대형 고무통이 수십 개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8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망갯잎 염장보관법’을 완성해낸다. 사계절 잎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염장한 잎은 사용 전 한 번 더 삶아낸다. 그래야 소금기가 제거된다.

망개떡은 찌는 떡인 동시에 빚는 떡이다. 더 좋은 식감을 위해 가래떡처럼 반죽을 뽑은 뒤 재차 롤러에 밀어넣어 납작하게 뽑아낸다. 시행착오 끝에 멥쌀 100%로 찹쌀보다 쫀득하고 말랑한 피를 만들 수 있었다.

공방 안에서 10명의 할매가 사월초파일 연등 만들 듯 모여 앉아 떡을 만들고 있다. 피를 정사각형으로 잘라 팥소를 올려 두 번 접어 잎 위에 올려놓으면 떡이 꽃처럼 피어난다.

◆의령소바 3인방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의령의 대표 국수가 있다. ‘의령소바’다. 어떤 이는 ‘일본식 잔치국수’ ‘의령식 냉면’ ‘의령식 막국수’로 부르기도 한다. 언뜻 보면 밥에 장국을 붓고 찢은 닭가슴살, 달걀지단, 빈대떡 등을 올린 ‘평양온반’ 같다. 그 온반에서 밥 대신 메밀 사리를 넣으면 의령소바가 될 것 같다.

소바는 일본의 전통 메밀국수. 광복 이후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기술 전수자는 부림면 신반마을 어느 할매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할매의 레시피가 현재 의령소바의 전신인 셈. 의령소바는 일본 스타일과 많이 다르다. 면을 쓰유에 적셔 먹지 않고 삶아낸 면에 멸치로 우려낸 뜨거운 국물과 각종 고명을 얹은 것이다. ‘장터 잔치국수 스타일’이다.

제면 방식도 냉면·막국수 등은 사출기를 통해 수직으로 뽑아내지만 의령소바는 예전 대구식 국수처럼 롤러를 통해 수평으로 뽑아낸다. 일본 소바를 모티브로 출발했지만 이젠 의령 향토음식이 돼버렸다.

의령전통시장에 3인방 소바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두 집은 본점만, 한 집은 체인사업에 명운을 걸고 있다. 맏형 격인 ‘다시식당’과 둘째 격인 ‘화정소바’는 ‘본방사수’다. 화정소바 바로 옆에 있는 ‘의령메밀소바’는 가게 앞에 포토존을 만드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한다. 박현철 대표는 아내와 함께 온메밀 소바 육수와 메밀면을 개발해 2011년 지금 본점 자리로 이전했다. 현재 대구 등 전국에 100개 이상의 가맹점을 갖고 있다.

맛의 전통은 ‘다시식당’과 ‘화정소바’에 더 실린 것 같았다.

다시식당의 ‘다시’는 ‘우려낸 국물’을 가리키는 일본 요리용어이며 ‘다시 시작하자’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광복되던 해 현재 김막내씨의 큰언니인 고 김초악씨가 문을 열었다. 신반마을의 그 소바 할매한테 기술을 배워 오픈했다. 실제 큰언니 위에 사부가 있었다. 바로 의령에서 제일 먼저 냉면을 선보인 어머니였다. 메밀가루에 사용할 전분이 의령에는 없어 부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초창기엔 냉면 고명으로 밤, 배추김치 등도 올렸다. 무 대신 배추김치를 올린 냉면은 의령만의 특징이다. 김씨 어머니의 냉면과 원조 소바 할매의 레시피가 섞이면서 현재 소바 스타일이 탄생하게 된다. 소바용 간장소스는 초창기에는 뼈를 넣고 곤 뒤 물을 더 넣어 무척 심심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진하다. 현재 김막내씨의 아들과 올케 이귀섭씨가 함께 가게를 돌보고 있다.

79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화정식당’을 찾아 맛을 봤다. 면발·멸치다시·고명이 홍탁삼합처럼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최근 먹어본 국물 중 가장 심플하면서도 울림도 컸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인데 김선화·이종선 사장 부부의 의령소바에 대한 애착심이 가장 커 보였다. 기술은 2년 전 작고한 김씨의 어머니(심남순)에게서 이어졌지만 결국 부부의 시행착오 끝에 이 집만의 레피시가 구축된다.

원래 현재 소바는 어머니가 화정면 상일리 보천부락 고향집에서 평소 해 먹던 음식이다. 화정면의 ‘화정’은 뒤에 상호로 굳어진다. 처음에는 호구지책으로 의령시장 한구석에서 그릇을 팔았다. 너무 안 돼 다른 돌파구를 찾은 게 바로 소바였다. 처음엔 소바가 아니라 메밀국수를 팔았다.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소바 스타일로 돌아서면서 호경기를 맞는다.

너무나 양심적인 김씨가 레시피를 다 공개했다. 끈적함을 위해 밀가루 6에 메밀가루를 4 정도 배합한다. 고명용 소고기는 비계가 거의 없는 홍두깨살만 고집한다. 이 고기를 조선간장과 진간장을 섞은 데 넣어 4시간 정도 졸인다. 너무 졸이면 육질이 허벅해지고 부족하면 질겨진다. 이 감각을 잡는 게 너무 힘들었다. 면발을 삶는 면수통도 오전·오후용 두 개가 있다. 제대로 된 냉면집에는 고기 삶은 물인 ‘온육수’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소바집에는 면을 삶은 물인 ‘면수(麵水)’가 필수적이다. 일본 소바 마니아는 그 면수에 쓰유를 섞어 디저트로 마시기도 한다. 여기도 면수 관리에 만전을 다한다. 보통 150인분의 면을 삶으면 물이 뻑뻑해진다. 그럼 다른 면수통으로 삶아야 된다. 삶을 때는 3분 정도 삶은 후 찬물을 보충해가며 삶아야 된다. 다시를 뽑을 때 사용하는 멸치도 보관을 잘못하면 부패하기 때문에 건조기에서 잘 말려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온소바·냉소바·비빔소바가 메인 메뉴다. 대다수 온소바를 즐긴다. 아들은 물론 두 딸과 두 사위까지 이 가게에 올인했다. 국물을 마시면서 훔쳐본 가족의 단란한 정경이 국수보다 더 각별해 보였다.

간단해 보이는 국수 만들기, 하지만 직접 해보면 첩첩산중. 모든 과정을 체득하기까지 이들의 나날은? ‘면벽(麵壁) 정진’이었겠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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