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대구경북을 바꾸다] <중> 포항·경주 그날의 교훈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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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1   |  발행일 2018-01-11 제7면   |  수정 2018-01-11
“불합리한 재난 지원금 기준, 주먹구구 구호소 운영 개선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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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이재민들이 대피소에 모여있는 모습. 지진 발생 5일 뒤 텐트와 칸막이 등이 설치돼 이재민의 사생활은 보호받았지만 모호한 구호소 입퇴소자 구분 기준, 구호물품 부족, 내진설계 미비 등의 문제가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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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덮친 집마당엔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시름에 잠겼던 피해 주민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지진의 상처도 매일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그날의 가르침은 아직 남아 있다. 두 번의 교훈은 지역 곳곳에 남아 자연재난에 대비하는 꽃으로 피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영남일보는 되풀이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경주·포항 지진에서 지적됐던 문제들을 되짚어봤다. 이 같은 일들이 반복돼선 안된다.

경주 부지리 등 파손 주택주민
7가구 외 상당수 지원 못 받아
현행법 파손기준 추상적 명시
3등급 분류서 더 세분화 필요

사생활 보호도 안되는 구호소
입퇴소 기준 미비 등 ‘도마 위’

지진 취약 필로티 공법 건축물
액상화 현상 대책마련도 필요


◆재난 지원금 논란 수면 위로

경주 지진은 지진에 대한 사전 대비가 전혀 없었던 우리 사회에 울리는 경종이었다. 2016년 9월12일 오후 7시44분 경주 남남서쪽 9㎞ 지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에 이어 오후 8시32분 경주 남남서쪽 8㎞ 지역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났다.

당시 크게 논란이 됐던 건 재난 지원금. 지진으로 함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주민이 재난 지원금을 받지 못해 지급 기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은 1년 반이 넘도록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지난해 12월29일 진앙지와 가장 가까운 마을인 경주 내남면 부지리를 찾았다. 이 마을의 주민 상당수는 당시 지진으로 크고 작은 주택 파손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재난 지원금을 받은 가구는 부지리 전체에서 7가구에 불과했다.

진앙지인 내남초등과 가장 가까운 이순필씨(71)의 집은 지진으로 거실 콘크리트벽 이음새가 갈라져 앞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수리비용을 들일 수 없어 테이프로 임시처방만 해 놓은 상태.

새마을사업 때 지었다는 김종순씨(73)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담장이 무너졌고 화장실 타일이 떨어져 깨졌지만 재난 지원금은 못 받았다.

“아이고, 말도 아니었어요. 첫 지진엔 괜찮다가 두 번째에 깨지고 부서졌더라고. 그때는 지원금 안 주면 안 주는가보다 이카고 말았는데 인제는 (지원금 못 받은 걸) 후회한다 아입니꺼.”

설령 ‘운 좋게’ 지원금을 받았다고 해도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반응이다. 집 내외부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은 하순열씨(64)는 “나라에서 나온 돈이라고는 190만원(국민성금 90만원 포함)이 전부다. 뽈(볼)에 붙은 밥풀이지. 총공사비만 600만원 정도 나왔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마을 주민들은 지진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며 재난 지원금의 현실화와 명확한 기준 설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지원금 논란은 지난해 발생한 포항 지진 이후에도 반복되고 있었다. 손병도씨(57·포항 북구 흥해읍)는 “현행법이 주택파손 기준을 너무 추상적으로 명시하고 있어요. 기준이 불확실하니까 금이 한 줄 있어도 소파, 열 줄 있어도 소파, 잣대가 없는 거죠. 주택파손 기준을 현행 3등급에서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먹구구 이재민구호소…포항 지진

포항 지진에서는 특히 이재민 실내구호소의 미흡한 운영이 수차례 입방아에 올랐다. 초기 운영과정에서 한동안 이재민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것을 비롯해 여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구호소조차도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았다. 준비 미흡으로 이재민은 구호소를 여러 번 옮겨다녀야 했고 입·퇴소 기준 미비, 편의시설 부족 등도 문제로 거론됐다.

지난 2일 포항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지진 피해 주민들은 구호소의 미흡한 운영에 대해 입 모아 말했다.

한미장관맨션 피해주민대표 김홍제씨(59)는 “구호소 운영이 전반적으로 즉흥적이었다. 경주 지진 이후 1년이 지나도록 포항시가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구호물품 부족은 물론이고 구호소 운영·관리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부실했다”며 열을 올렸다.

구호소 입·퇴소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다는 불만도 있었다.

정모씨(43)는 “아파트가 위험판정을 받기 전 공무원들이 구호소에 있던 피해 주민을 찾아가 집에 돌아가라고 회유했다. 이에 집으로 간 사람들이 있는데 이후 아파트가 위험판정을 받고 다시 구호소로 왔지만 안 받아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모씨(46)는 “체육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10명은 족히 되는데 아동용 약이 없다”면서 “보건소 내방 진료 때 7세 딸이 약을 받았는데 삼키지도 못하는 알약을 5알 줬다”며 구호소에 아동용 상비약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구호소 관련 지적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피해 복구과정이 장기화되면서 구호소를 둘러싼 문제점이 많이 거론됐다. 구호소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데에 뜻을 모으고 있다. 올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주차면수 확보를 위해 시행된 필로티 공법의 건축물이 지진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또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 액상화지도 제작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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