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이병창씨가 대구·경북민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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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1   |  발행일 2018-01-11 제7면   |  수정 2018-01-11
“지역민들 새해 안심하고 안전하게 지냈으면…”
포항 이병창씨가 대구·경북민에게 보내는 편지

대구·경북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 살고 있는 이병창입니다. 많은 분께 글로 인사드리려니 쑥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세살 때 망천리로 온 후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마을은 15년 전만 해도 동(洞)제사를 지냈을 정도로 평온한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15일이지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 지진이 망천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흥해읍 일대가 초토화됐습니다. 주민들은 지진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2016년 경주 지진 때도 포항에서 진동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크게 동요하진 않았습니다. 옆집 일처럼 생각했지요. 아마 많은 대구시민, 경북 타 지역민들도 여전히 지진에 대해 무감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피해를 입거나 이웃이 겪는 피해를 보지는 못했으니까요.

지진이 나던 날 저는 마을 게이트볼장에 있었습니다. “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엔 게이트볼 채를 잡고 있다가 넘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앞집의 기와가 우수수 떨어졌고 눈앞에 보이던 8층짜리 건물은 45도 정도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큰 지진을 겪기 전까지는 지진이 나면 땅만 흔들리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직접 느껴보니 ‘지진만큼 무서운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6·25전쟁 때보다 더 겁이 났습니다.

지진 이후 흥해읍 주민들은 큰 경각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지진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대피요령을 떠올립니다. 지진이라는 것에 당부가 있겠습니까마는, 될 수 있는 한 긴장을 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대비책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지진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지 말고 대피요령을 외우고 행동하길 바랍니다.

더불어 국가와 지자체에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포항 지진으로 북구 일대에는 안 흔들린 집이 없었습니다. 힘이 들겠지만 가가호호 안전점검을 정부가 책임지고 해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우리 대구·경북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가뭄으로 농사도 쉽지 않았고 연말엔 지진 때문에 큰 피해도 입었습니다. 무술년 새해에는 우리 지역민들이 그저 안심하고 안전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2018년 1월2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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