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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없는 반시로 가공, 곶감 같은 식감 ‘감말랭이’…농가 효자 ‘한재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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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박성우기자
  •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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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와인 못지않게 사랑 받은 ‘감말랭이’. 1990년대 후반 매전면 상평마을에서 전국 최초로 가공을 시작했다.
꼭지와 껍질을 자동적으로 깎아주고 있는 반시 자동박피기. 감말랭이 원조마을 김정오 이장의 아내 김태숙씨가 감깎기를 시연 중이다.
1998년 세워진 매전면 상평리 감말랭이원조마을 표석.
화가 출신인 한재미나리사랑가든 서대우 대표가 삼겹살이 가미된 미나리를 살짝 데쳐 보이고 있다.
청도읍성 바로 옆에 있는 한옥카페 ‘꽃자리’의 명물인 감말랭이팥빙수.
감과 복숭아로 만든 청도읍성수제맥주.
◆청도반시 이야기

청도반시는 왜 씨가 없을까? 2002년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도지역은 암꽃만 맺는 감나무 품종이 많고 수꽃을 맺는 감나무가 거의 없어 수정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도의 감나무는 씨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분지모양의 산간지형인 청도는 감꽃의 개화시기인 5월에 안개가 짙어 벌의 수분활동이 어렵다. 높은 산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다른 지역의 감나무 수꽃가루가 자연 유입되기도 어렵다. 수꽃 나무들은 산을 넘지 못해 번번이 암꽃 나무에게 이르는 길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청도에서도 씨가 맺히는 일명 ‘돌감’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돌감의 대척점에 ‘물감’도 있었다. 물감은 서리가 내리기 전 반시를 일컫는다.

감의 활용법은 다양하다. 팔월감은 ‘파라시’라고 해서 감물염색(시염)의 좋은 재료다. 2008년 10월6일은 청도군에서 700m 가까운 천에 감물 염색을 들여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시염패션공모전도 전개하고 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청도반시 염색디자인 공모전이다. 매전면 상평리 폐교된 관하초등학교 자리에 감물옷 전시·판매장이 들어섰다.


지형 영향 암꽃 감나무 ‘씨없는 반시’
반시 염색디자인…감물옷 전시·판매

매전면, 전국 첫 감말랭이 가공 시작
아열대 탓 갈수록 수확기 점점 빨라져
꼭지·껍질 자동기계 작업·인공 건조
마을이장 김정오씨 감말랭이 전도사
얼기전 재빨리 따야…일손부족 어려움

한내천 밭뙈기 늘어선 비닐하우스
서리 내려야 제맛내는 가을 미나리
1994년 최초 ‘무농약재배품질인증’
돈 된다는 소문 나자 귀농인도 증가
20년 전보다 재배지 폭등 ‘금나리’


서리맞기 전의 생감은 홍시 조건을 갖춰 서둘러 출하된다. 생감을 따서 대량으로 시장에 낼 경우는 대부분 홍시로 만들어 판다. 생감을 홍시로 만들 때 관계자만 아는 스킬이 있다. ‘감 연화촉진제’라는 약을 사용한다. 먼저 약을 감상자 밑에 넣고 그 위에 생감을 차례로 쌓아 올린다. 쌓은 감 위에 속 덮개를 고정한 후 바깥뚜껑을 닫는다. 뚜껑을 닫으면서 갈라진 틈새는 테이프를 붙여 막는다. 이렇게 작업된 감은 상자 속 온도에 따라 익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 작업 이후 대개 4∼5일 지나면 상자 속의 감은 보기 좋고 맛있는 붉은빛 감이 된다.

2011년 청도반시는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돼 보호받고 있다. 참고로 일반 감보다 두 배 이상 큰 대봉감은 전남 하동군 악양면과 영암군 금정면이 특산지. 단감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그리고 곶감은 상주와 경남 산청이 알아준다.

◆감말랭이마을

감와인 못지않게 사랑을 받은 건 ‘감말랭이’. 1990년대 후반 매전면 상평마을에서 전국 최초로 가공을 시작했다. 지금 40호가 거의 감말랭이를 취급한다. 1998년 원조마을 표석비까지 세웠다. 그래서 그런지 매전면 가로수는 전부 감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은 수작업으로 하다가 나중엔 수동식, 이젠 자동기계가 꼭지도 따고 껍질까지 매끈하게 깎아준다. 이어 크기에 따라 2~6등분 한다. 한 대 500만원짜리 감깎는 기계를 돌리려고 해도 3~4명이 팀을 이뤄야 일이 제대로 굴러간다.

수확한 청도반시는 감 특유의 떫은 맛을 없애는 탈삽과정에 들어간다. 곰팡이 방지를 위한 훈연 및 숙성·건조과정을 거치면 감말랭이가 완성된다.

원래 감말랭이 기술을 보급한 주인공은 대통령상까지 받은 작고한 박성길씨. 그가 15년 정도 말랭이로 재미를 보자 현재 이장 김정오씨(74)도 뛰어들었다. 이젠 이장이 ‘감말랭이 전도사’로 불린다.

매전면으로 가는 길은 온통 반시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단풍잎보다 더 고혹했다. 이장댁을 방문한 날. 평생 감말랭이 외길을 걸어온 아내 김태숙씨(69)가 산으로 감을 따러가고 없는 이장을 대신해 상평리 감말랭이 스토리를 들려줬다. 그녀는 대장암 수술 때문에 제대로 거동하지 못한다.

“아열대 탓인지 갈수록 감 수확기가 당겨지고 있네요. 열흘 안에 재빨리 따야해요. 얼어버리면 감말랭이로 가공하기 힘들어져요. 그런데 일손이 너무 부족해요. 아마 지금쯤 길에 돌아다니는 반려견도 모두 감밭에 가 있을 겁니다.”

그녀는 47년전 동구 반야월에서 여기로 시집왔다. 매전면이 지금처럼 반시 천지가 된 건 아니다. 일반 사과농사가 잘 되지 않아 대체작물로 기용된 게 반시였다.

예전에는 수확 시기가 늦었다. 첫눈이 올 즈음인 11~12월이 적기. 처음에는 팔지 않았다. 단지 안에 넣어놓고 홍시로 즐겨 먹었다. 내다 팔 것도 없었다. 모두 자가 소비였다.

시집 올 무렵 40주의 감나무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산에 40그루, 밭에 30그루, 집안에 5그루가 있다.

감말랭이는 초대박을 쳤다. 그래서 철이 되면 상인들이 수매하러 여길 들락거린다. 길거리마다 수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한창 때는 반시 하나가 하드 하나 가격이었다.

물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이파리는 쉽게 진다. 예전에는 자연 건조했는데 이제는 29~30℃ 건조실에서 인공적으로 건조해 판다. 그게 더 위생적이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소독을 위해 껍질을 깎아낸 뒤 황을 가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흑변할 우려가 있다.

독거노인은 감을 딸 수 없다. 그래서 일손을 사야 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렇게 일을 하면 남성은 일당으로 12만원을 받는다. 중참·점심까지 따라 나온다. 그 돈도 없으면 그냥 따지않고 묵힌다. 그럼 자연스럽게 떨어진 홍시가 길거리를 칠갑하게 된다.

갈수록 말랭이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어르신들이 직접 감말랭이를 만들고 그걸 자식을 통해 직판하고 있는 탓도 있다. 그럼 이장 같은 감말랭이 전업농가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 아는 처지인데 말랭이 그만 만들라고 정색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장 부부는 이래저래 속이 탄다.

◆청도 한재미나리

청도 한재미나리의 명성 때문에 가려진 나물이 있다. 바로 ‘횟집나물’이다. 그 나물에는 정작 회는 없다. 재료는 간단하다. 콩나물, 무청, 채썬 콩잎과 콩가루만 있으면 된다. 콩나물과 무청, 봄에 딴 어린 콩잎은 삶아서 준비한다. 콩은 볶아서 콩가루를 낸다. 준비한 재료와 된장을 넣어서 무친다.

숯불구이 전문 ‘목장원가든’에서 집중적으로 횟집나물을 냈지만 이젠 타산이 맞지 않아 내지 못하고 있다. 청도가 잘 살려내야 할 향토음식이 아닌가 싶다.

청도 한재미나리. 이른 봄 한철 반짝하고 지고만다. 달성군 가창 정대미나리는 비교적 한재미나리보다 유통 기간이 길다. 그럼 한재미나리 관계자는 철이 지나고 나면 뭘 하며 살아갈까?

지난 20일 찾은 한재골은 한적했다. 화악산과 남산을 낀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한내천 양쪽 비탈진 밭뙈기에 층층이 줄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가 가을햇살에 은물결치듯 했다. 하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제철은 꽃샘추위와 이른 봄이 교차되는 시기인 2월부터 3개월여간. 그때 이 일대는 피란민촌을 방불케 한다. 식도락가들이 몰고 온 차량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재골 초입인 초현리부터 상리까지 5㎞ 도로는 거의 주차장이다. 13년전 귀촌해 ‘한재미나리사랑가든’을 운영하며 화실을 두고 서양화 작품을 하고 있는 서대우씨(52). 그는 “평일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찾아올 뿐 거의 한산하지만 주말에는 북적인다”고 말했다.

벗겨진 비닐하우스 안에는 새파란 미나리가 한창이다. 1월말~5월초는 하우스에서 봄미나리가 나온다. 5월에는 노지 봄미나리가 파종돼 6월말쯤 수확된다. 일조량이 풍부한 여름에는 15~30일 정도면 재배된다. 수확량은 많지 않지만 가을에도 미나리가 재배된다. 한재미나리도 연중 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고칼슘 기능성 미나리를 생산하는 한재세미칼미나리 대표 박기호씨(66)는 “서리가 내려야 가을미나리가 제맛이 난다”고 했다.

한재미나리가 상품화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중반쯤. 당시 박씨를 포함한 몇 농가가 미나리를 재배해 청도농협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명성이 자자해진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경매가가 싫어 출하를 중단했다. 가격을 농가에서 정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산자가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한재에서만 유효하다. 1994년 최초로 전국에서 무농약재배품질인증까지 받았다. 2016년 기준, 한재에서 미나리 재배농가는 130호. 재배면적 80㏊. 생산량 1천180t. 한해 총수입은 106억2천만원. 대부분 억대농가다. 미나리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자 귀농인도 크게 늘고 있다. 20여년전 3.3㎡(1평)에 5천원 채 하지 않던 밭뙈기가 3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단다. 더 이상 땅이 없자 초입마을인 초현리까지 생산벨트가 내려 올 정도다. 13년전만 해도 서너집에 불과하던 식당도 현재 30여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미나리 작업장 150여곳 중 고기를 사들고 가면 미나리를 먹을 수 있는 곳까지 합하면 모두 130여곳. 미나리가 아니라 ‘금나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박성우 parks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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