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장 소껍데기국밥·청도장 옻닭·역전 추어탕…식도락가 찾는 ‘추억의 맛’

  • 이춘호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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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6   |  발행일 2018-10-26 제34면   |  수정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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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코디미타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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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장 한편에서 만난 추억의 빨랫비누. 나흘간 건조된 뒤 장날 팔려나간다.

전유성보다 먼저 청도에 온 유명 가수가 있었다. 가을이면 생각나면 낭만파 포크뮤지션, 가수 이동원이었다. 그는 운문사의 풍광에 반해 그대로 화양읍에 눌러 앉아 버렸다. 그러다가 그도 소리소문없이 송창식이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으로 가버렸다.

전유성은 청도에서 죽이 맞는 패션디자이너를 만난다. 대구 패션디자이너 1세대격인 최복호다. 최복호도 전유성 못지않은 식도락가. 돼지국밥에 소주 한 잔도 그가 입에 대면 ‘패션푸드’가 된다. 풍각면 남산리 공원형 리조트인 군불로 근처 과수원 부지에 ‘펀앤락’이란 숲속 패션카페 겸 패션문화연구소를 열었다. 그 이전인 2000년 각북면 오산리 비슬문화촌에서 지역 첫 전원형 음악회가 태동된다. ‘국밥뒤풀이’로 유명한 게릴라 스타일의 음악회 ‘비쓸락’이다. ‘비오는 날의 쓸쓸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음악회’란 의미다.

그 흐름이 펀앤락 추억의 음악회와 꽃자리 음악회로 연결된다. 최복호는 최백호, 유열, 노사연, 정훈희 등 추억의 포크싱어를 연이어 출연시키면서 그 공간을 점차 글램핑장으로 변모시켰다. 주렁주렁 달린 사과도 수확하지 않고 가능한 늦게까지 방치해뒀다. 가지에 달린 사과가 먹거리 이상의 볼거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둘이 손잡고 만든 산책길이 있다. ‘청도 몰래길’이다. 펀앤락에서 성곡댐이 있는 풍각면 성곡리 코미디 철가방 극장으로 이어지는 2㎞ 남짓한 ‘토크로드’.

펀앤락∼철가방극장 이어지는 산책길
전유성·최복호가 만든 ‘청도 몰래길’
새마을운동 신도리 관광지로 변모중

풍각장 50년 자리지킨 국밥집아지매
진한 사골육수, 곱창 등 5가지 내장류
청도장터, 해송·뼈해장국·2대국밥집
주막집에서 약옻닭 변신한 여정식당
13가지 약초 사용…친정 레시피 응용
닭기름 냄새 나지 않아…국물은 ‘약’

청도역 앞 9개업소 모여 추어탕 거리
미꾸라지 쓰지 않고 개천 잡고기 사용
3대째 이어 맛 원형 유지하는 의성식당
이서교 고향추어탕은 미꾸라지 사용



◆새마을운동 발상지 신도리

둘을 생각하면 키득키득 자꾸 웃음이 난다. 그 웃음을 주물거리며 청도역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한민국 새마을운동 1번지 청도읍 신도리로 향했다. 신도리가 가까워지자 상록수처럼 펄럭이는 새마을운동 깃발이 가로수처럼 나그네를 반긴다.

신도리는 한때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와 새마을운동 원조 시비를 벌였다. 행정소송 결과 청도가 원조란 판결을 받게 된다. 신기리에는 지금은 사라진 간이역이 있었다. ‘신거역’이다. 경부선 하행선 368.4㎞ 지점이다. 이 역을 위해 김봉영씨를 리더로 해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1967년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이 된다. 하지만 2007년 6월 하루 이용객이 10명 이하로 격감하는 바람에 철거된다.

현재 이 마을은 관광지로 변모 중이다. 마을 입구에 낯선 열차, 그리고 모형 간이역이 하나 서 있다. 그 열차는 대통령 전용열차다. 1926년 덕혜옹주도 이용한 이 열차는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리모델링된다. 이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지방순시 때 이용됐다. 현재 마을에 있는 건 복제품이다.

◆청도의 국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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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장 대표 소머리국밥집인 ‘해송식당’의 국밥.



새마을운동 옆에는 어김없이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앉아 있기 마련. 청도만의 국밥은 어디에 있을까? 국밥을 만나야 비로소 청도추어탕도 힘을 받게 된다.

풍각장 한편에 소머리국밥집이 있다. 사람들은 풍각장 국밥을 ‘소껍데기국밥’이라 부른다. 청도군 풍각면 송서3리 풍각시장(1·6일장). 원래 시골장 국밥집 주인 이름은 모르는 게 약이다. 그들에겐 ‘국밥집 아지매’라 해야 딱이다. 여기도 간판이 없다. 그냥 번지 없는 국밥집이다. 50년 이상 늘 당산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으니 가게 자체가 간판인 셈. 1995년엔 82세로 작고한 김딸막 할매의 맏며느리 김소쌍분과 남편 강용달이 거기를 지키고 있다.

이 집은 추억의 장국 원형을 지키고 있어 전국의 식도락가들도 투어식으로 찾아온다. 여기는 곰탕 계열이다. 사골로 기본 육수를 만들고 정육과 소양 등 각종 내장을 갖고 감치는 육즙을 빼서 섞는다. 육수에 기름이 농밀하게 고여 있다. 그런데 느끼하지 않다. 여긴 뼈보다는 고기에 포인트를 둔다. 내장류는 소양·곱창·허파 등 5가지. 여느 장국집과 다른 건 무말랭이 같은 소머리 껍질을 잘 썰어 넣어준다는 점이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정종과 생강 등도 넣지 않는다. 조미료통도 없다. 반찬은 깍두기 딱 하나뿐. 육수가 진해 평일에도 외지에서 국을 사러 온다. 초창기부터 사용해 검은 기름때 묻은 국자 담는 그릇도 골동품처럼 보인다. 5일장이라지만 부부는 늘 고기를 장만해둬야 한다. 장날에는 오전 2시부터 국을 끓이고 오전 10시~오후 2시에 가장 붐빈다.

청도장(4·9일)을 하루 앞둔 대낮이다. 국밥집은 전날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 현재 청도장에 산재한 국밥집은 ‘해송식당’ ‘뻐꾹이식당’, 2002년부터 감자탕을 끓이고 있는 ‘청도뼈해장국’, 선지국밥을 잘하는 ‘대덕식당’, 그리고 소구레선지국밥 전문인 ‘2대국밥’ 등이다.

해송식당은 가업을 이어받은 젊은 박근덕 사장(41)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20㎏짜리 한우 대가리를 15만원 정도에 사갖고 온다. 장날을 대비해 부위별로 장만을 해둬야 한다. 핏물빼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솥에서 끓인 초벌 육수는 이물이 많이 포함돼 있어 모두 버린다. 처음 끓인 소 대가리 살점을 모두 발라내 실온에서 잘 말려 먹기 좋게 다 썰어둔다. 공정 하나가 잘못되면 국을 다시 끓여야 된다.

청도뼈해장국의 이규순 사장(여·54)은 충북 제천에서 청도로 시집왔다. 그는 감초·황기·가시오가피 등 각종 한약재를 이용해 맛을 잡는 게 특징이다. 2대국밥은 15년 구력을 갖고 있는데 소구레국밥은 물론 육국수도 손을 댄다. 특이하게 남원식 추어탕까지 끓여 청도추어탕 전통에 도전장을 냈다. 장날 하루 전날이라서 인터뷰 요청까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바빴다.

청도장 구석 자리에서 진풍경을 목격했다. 추억의 빨랫비누를 수제로 만들어 말려 파는 어르신이다. 올해 여든둘인 이상봉 어르신은 3년 전부터 소일삼아 닭기름, 잿물, 식초 등을 이용해 나흘 만에 옛날식 비누를 만든다. 하나같이 각이 비뚤비뚤하다. 그게 더 정겹다. 시장 뒤편은 항상 후줄근하다. 호롱불 같은 자태로 삶을 파는 이들이 있다. 비누집 앞 땅바닥에는 부각용 고추가 비료포대 위에서 말려지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주문받은 메밀묵을 만드는 집이 있다.

◆닭집의 전설…여정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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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식당의 옻닭 백반 한상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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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무려 11명을 먹여살리기 위해 허리 한번 펼 겨를이 없었던 여정식당 박정늠 사장. 그녀 덕분에 청도는 추억의 맛 하나를 더 가질 수 있게 됐다.


청도장에 가면 ‘전설의 닭집’이 하나 있다. 한때 토박이에겐 상어 피편 잘하는 주막으로 널리 알려졌다. 술집이 사양길이라 서둘러 옻닭집으로 변신을 한 바로‘여정식당’이다. 참 억척스러운 식당이다. 청도읍 대곡리에서 태어난 박정늠 사장 (여·79). 그녀의 삶도 소설이다. 1년에 제사를 11번 지내야 하는 가난한 종가의 종부로 한 청춘 다 보냈다. 챙겨야 될 식구가 무려 11명. 50년 전 5원 주고 산 판잣집에서 함께 살았다. 시부모는 물론 시동생, 심지어 시조모까지 수발해야만 했다. 너무 힘들어 친정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친정아버지는 “시집귀신이 되어라”면서 그녀를 외면했다. 말달구지를 몰았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난다. 가업을 혼자 떠안아야만 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차린 게 바로 주막이다.

이 주막을 알려면 ‘납딱바위 정서’부터 알아야 된다. 현재 청도역 옆에 납딱바위 쉼터가 있다. 예전 그 바위는 넓고 평평해 길손 쉰명은 너끈하게 앉아 쉴 수 있었다. 바로 옆에는 청도천 맑은물이 감돌아 소를 이루었다. 노거수와 찬물이 나오는 샘까지 있어 과거 보러가는 선비, 각종 공물을 지고 청도를 통과하는 역인과 보부상 등에겐 최고의 랜드마크였다. 밀양에서 올라오는 길손도 납딱바위까지 오면 정오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 건설 때 납딱바위는 철거된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군민들이 1998년 역전도로 4차로 확장공사 때 바위 흔적을 찾아 자연석 일부를 놓고 쉼터로 조성했다. 근처 ‘정우(停佑)식당’도 그 바위를 추억하는 숯불갈비집이다. 그 바위에는 현재 청도반시가 바위를 파고들며 자라고 있다. 청도는 확실히 감천지다.

여정식당은 ‘긴 여정에서 피로를 말끔하게 풀고가는 막걸리집’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녀는 친정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를 위해 산약초로 약닭을 만드는 걸 유심히 관찰해뒀다. 지금의 옻닭 레시피는 친정집에서 벤치마킹한 것.

식당 한쪽 벽에 사용하는 13가지 약초를 진열해놓았다. 옻나무, 헛개나무, 대추, 영지버섯, 뽕나무버섯, 쑥, 들국화, 구기자, 육모초, 잣나무 등이다. 주막이 사양길이라 자연스럽게 옻닭집으로 넘어왔다.

요리과정이 너무나 치밀하고 힘들어 보인다. 3일마다 약물을 빼내야 한다. 일 있는 날은 오전 4시에 기상. 잘 말린 참옻을 알맞은 굵기로 쪼개 3시간 고아내 옻물을 만들고 거기에 약초 달인 물을 섞는다. 큰 백철솥에 모두 15마리의 토종닭을 6ℓ약물로 2시간30분 끓인다. 요리가 아니라 ‘조제’ 같았다.

1만원짜리 흑갈색의 옻닭 한 그릇. 워낙 잘 걷어내서 그런지 닭기름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국물은 음식이 아니라 ‘약’이었다.

현재 막내며느리가 청도역 앞에서 2호점(대길옻닭)을 차렸다. 한때 지자체에서 효부상을 주려고 했지만 그런 상은 받는 게 흉이다 싶어 고사해버렸단다. 너무나 작고 갸냘픈 여정식당. 어쩜 이 식당이 진짜 납딱바위 아닐까?

◆청도추어탕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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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추어탕의 원형을 가진 의성식당의 추어탕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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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역전 추어탕거리 전경.


청도추어탕의 전설은 의성식당에서 시작됐다. 1966년 ‘청도추어탕 어머니’로 불리는 김말두(87)가 청도역 앞에서 개천에서 잡아온 온갖 잡고기로 추어탕을 끓여 팔았다. 그 맛을 며느리 김점숙(64), 다시 작은아들 선종재(35)가 이어받았다.

40여 년 전부터 향미, 삼양, 해동, 다시 역전, 알토랑, 수정, 고향 등이 가세한다. 역전이 청도추어탕거리로 변모한다. 현재 역전에는 모두 9개 업소가 모여 있다. 역전 청도추어탕에는 미꾸라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끔 미꾸라지가 잡히면 그것도 함께 사용하지만 지금은 잡고기만 쓴다.

그런데 각남면 이서교 근처에 있는 ‘고향추어탕’은 특이하게 청도식임에도 불구하고 미꾸라지만 사용해 끓인다. 여기 가면 토박이가 좋아하는 특별한 양념장을 만날 수 있다. 조선간장에 찧고 빻은 고추와 마늘을 섞어내는데 이는 ‘걸장’이다. 칼국수용 양념장 같다.

각북면에 가면 ‘덕산추어탕’이 있다. 그 집에서 사용하는 배추는 추어탕용보다는 좀 더 거친 우거지류를 주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박성우기자 parks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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