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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내일의 나를 만드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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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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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짱구는 못 말려’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아시다시피 다섯살 어린 아이가 나와서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과 벌이는 소동극입니다. 놀랍게도 지금 텔레비전에서는 열여덟 번째 시즌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18시즌이 될 동안 여전히 짱구는 (23살이 아니라) 떡잎유치원 해바라기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좋은 연출력과 이야기로 에피소드를 뽑아내는 솜씨는 감탄을 부릅니다. 짱구는 유치원에 지각을 하면 엄마가 태워주는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가끔 지각한 날 비가 와서 엄마랑 우산을 쓰고 산책을 즐깁니다. 정말 드물게 엄마가 태워주는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겨우 도착했더니 짱구의 양말 한 짝이 안 보입니다. 시즌이 계속되면 ‘짱구가 유치원에 지각’하는 상황으로 수십 개의 이야기는 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올해 EBS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소개된 ‘모리야마씨’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도쿄의 낡은 주택지에 독특한 집을 짓고 사는 모리야마 야스오라는 중년 남자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태어나서 도쿄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모리야마씨의 독특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영화 ‘한여름의 환타지아’의 배경은 일본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입니다. 영화의 1부는 고조시에 사는 사람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로 봐도 무방한데, 여기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은 고조시의 고령화입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시노하라 마을은 심지어 폐교가 덩그러니 자리한 곳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난 고요한 마을. 그러니까 이 영화의 배경은 인기 관광지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며 애초에 관광지처럼 묘사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카메라는 이 작은 마을에도 얼마든지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군다나 제목도 ‘환타지아’입니다.

“선생님은 해마다 하는 일이 똑같이 반복되니까 힘들지 않을까?” 저의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가끔씩 저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3월에 새로 아이들이 입학을 해서 2월에 떠난 자리를 채우지만, 늘 비슷한 시기에 시험을 치르고 방학을 하고 행사 시기마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학교 밖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친구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흥, 정말 그렇게 보여? 근데 너희들 이거 아냐? 몰입이 어쩌네 하면서 예측 가능한 것을 잘 통제해서 방해요소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는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절대로 교사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 걸?” 그러면 친구들은 이해가 안 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대화가 이 정도 진행되면 저는 승자의 미소를 짓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깁니다. “학교의 오늘은 절대로 어제와 같지 않아. 단 한순간도 같을 수가 없어. 내가 다섯 반에 수업을 들어가서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려고 마음 먹어도 절대 그럴 수가 없지. 이 반과 저 반 아이들이 다르거든. 더 놀라운 건 아이들이 매 순간 자라고 있다는 거야.”

학교가 직장인 저에게 교사라는 직업이 어떤 매력이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마도 제 친구들에게 했던 마지막 말을 하겠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매 순간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예측 불가능한 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그 순간순간이 모여서 오늘이 되고, 또 그 ‘오늘’이 쌓여 내일을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그러니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각자의 일상을 최대한 자기답게 가꿔 나가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매월 말, 다음 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정통신문이 학생들에게 배부됩니다. ‘○월 학교밥상 식단표’. 받자마자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메뉴에 형광펜으로 칠하기도 하고 별표도 그려봅니다. 우리 학교는 과반수의 학생이 기숙사에 살고 있어 세 끼를 급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식단표는 매일 소셜 푸드(급식)를 매개로 어떻게 소셜 다이닝(급식을 친구들과 먹는 행위)을 할지에 대한 계획표라 할 수 있습니다. 저와 몇몇 선생님은 점심을 먹고 학년 교무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드리퍼로 내리는 과정이 반복되어 숙달된 듯 하지만 커피 맛은 매번 다릅니다. 그런데 조금씩 다른 커피 맛이 주는 즐거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도쿄의 커피 장인 6명의 인터뷰 책 ‘커피 장인’은 “커피는 커피를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고,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다”고 합니다.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상으로 누리고 있고 그 과정도 매일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고 있어 즐겁습니다. 일상을 충실히 산다는 건 이렇게 삶을 윤기나게 합니다. 매일의 ‘오늘’을 다르게 살아가는 힘으로 내일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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