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참회의 香을 사르며 원혼을 달랬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평화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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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8   |  발행일 2014-08-08 제33면   |  수정 2014-08-08
베트남전쟁 국군파병 50주년…민간인 학살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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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베트남전 백마부대 참전군인이었던 류진춘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베트남 중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 마을에 있는 한국군증오비를 찾아 제단에 향을 사르며 원혼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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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호아 마을 학살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안응이아씨(48·당시 생후 6개월). 총탄에 맞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지만 빗물과 핏물이 섞인 탄약가루 때문에 실명했다. 도안응이아씨가 기타를 치며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디어헌터·지옥의 묵시록·플래툰·풀 메탈 자켓·람보·하얀 전쟁·머나먼 쏭바강·무기의 그늘·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푸른 옷소매·님은 먼 곳에.

이들은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영화와 드라마, 소설과 노래다. 베트남전쟁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올해는 ‘베트남전쟁 국군파병 50주년’이다.

대한민국은 1964~73년 8년6개월간 베트남전쟁에 청룡·맹호·백마부대 등 전투부대와 건설·의료지원부대 등 비전투부대를 포함해 총 32만4천864명을 파병했다. 참전한 7개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보냈다. 72년에는 미국(2만4천명)보다 더 많은 군인(3만6천790명)을 파병하기도 했다. 전쟁 기간 국군 5천99명이 전사했으며, 1만1천232명이 부상당했다. 31만여명이 생존해 귀국했으나 그 가운데 2만여명이 고엽제 등 전쟁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베트남은 300만명이 죽고 200만명이 부상당했으며 400만명의 고엽제 피해자가 양산됐다. 그 결과 15만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미국은 30년간 5만여명의 전사자를 냈다. 가장 많은 전비를 투입했으나 역사상 처음으로 패전을 기록했다.

미국은 베트남을 구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공언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3배에 달하는 폭탄을 베트남에 쏟아 부었다. 또한 미국은 4천400만 ℓ의 고엽제를 베트남 전역에 뿌려 살아있는 생명체의 씨를 말리려 했다. 이 고엽제엔 무려 170㎏의 다이옥신이 포함됐다.(85g의 다이옥신만으로 800만명을 죽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사상 첫 해외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약 10억달러의 경제원조자금을 받았다. 박정희정부는 이 돈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포항제철 등을 세웠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은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고 국군을 현대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단지 미국의 용병으로, 돈을 위해 싸웠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64년 당시 한국은 1인당 GNP가 250달러로 지독히 가난한 나라였다. 합동연감(1967)에 따르면 한국군 소장의 월급(354달러)은 미국의 중사(366달러)나 필리핀(441달러)과 태국(389달러)의 소위 월급보다 적었으며, 한국의 소령 월급(224달러)이 미군의 이등병 월급(235달러)보다 적었다. 미국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자국내 반전여론을 무마시키고, 게릴라전에 한국군을 투입시킴으로써 전비와 자국군의 희생을 줄이고자 했다.

미군이 주로 베트남 북부에서 북베트남 정규군과 전투를 벌인 데 비해 한국군은 중부지역에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과 전투를 벌였다. 미국은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수단으로 한국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용맹했으나 잔인하다고 알려졌다. 베트남현대사 전문가인 구수정 박사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은 파병 초기(66~68년)에 주로 이루어졌으며, 학살엔 주로 청룡이나 맹호 부대가 개입했다”고 밝혔다. 구 박사는 “지금까지 베트남정부가 밝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80여군데 9천여명”이라고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이끈 맥나라마 국방장관은 후일 그의 자서전인 ‘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에서 “베트남전쟁은 잘못된, 끔찍하게도 잘못된 전쟁이었으며 우리는 미래 세대에 왜 그것이 잘못된 전쟁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참회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 창조주는 명백하게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 권리는 바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다.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베트남 호찌민(옛 사이공)시 중심에 있는 전쟁증적(證跡)박물관 2층 전시관 입구에 걸린 글귀다. 베트남인은 미국독립선언문을 전시장 입구에 걸어놓고 미국에게 “당신들은 이것을 지켰느냐”며 역설적으로 되묻고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70년, 미국과 30년간 끈질기게 싸워 이긴 민족이다. 베트남인에게 이 전쟁은 통일전쟁이었으며 민족해방전쟁이었다.

이번호 위클리포유는 베트남전쟁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베트남 중부지역에 세워져 있는 한국군증오비와 위령비를 찾았다.이곳에서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와 부상자를 인터뷰했다. 이 밖에 미군에 의해 자행된 밀라이학살박물관도 둘러봤다. 베트남전쟁을 이끈 지도자와의 대담과 평화기행단의 스토리도 함께 실었다.

글·사진=베트남에서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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