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도 반한 마력의 매운맛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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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33면   |  수정 2017-06-02
[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전북 순창
‘고추장 사찰’ 만일사 설화로 구전
20170602
순창고추장민속마을 대문 서까래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추장용 메주가 금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원래 처서 무렵에 매달지만 철이 지나서도 그냥 둔 것은 포토존용 장식 메주다. 이 고추장 메주는 구멍이 뚫려있고 된장용 메주보다 훨씬 작은 게 특징.

느릿·깐깐하고 그러면서도 쿰쿰했다. 달팽이 기세로 살아가는 고장, 바로 ‘순창(淳昌)’이다. 누군 순창을 두고 ‘청산청수청인(淸山淸水淸人)의 고장’이라 했다. 산은 ‘강천산’, 물은 ‘섬진강’, 사람은 바로 ‘선비·고추장 명인·명창’을 의미한 걸까. 이 고장은 다른 곳에 비해 근대화로 인한 자연훼손이 덜했다. 섬진강은 4대강사업에서도 비껴갔다. 철길도 이 고장을 파헤치면서 지나가지 못했다.

순창으로 가는 내내 바람은 더없이 풍성했다. 5월의 산하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푸르고 객수감(客愁感)까지 어른거렸다. 대구에서 2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순창읍 백산리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이하 고추장마을). 거기로 막바로 가선 안 된다. 탁미(卓味)는 탁지(卓地)에서 난다고 했다. 순창을 잘 아는 한 여행가가 고추장마을로 가기 전에 먼저 가봐야 할 데가 있다고 했다. 적성면 괴정리에 있는 채계산이었다. “정상인 장군봉에 오르면 기막힌 풍경을 친견할 수 있고 유려하면서도 균제미가 빼어난 그 산하를 보면 왜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순창IC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곳에 나지막하게 앉아 있는 채계산을 올랐다. 일광사 옆 무량사 가는 길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갔다. 30여분의 고즈넉한 초여름의 산길. 이 산의 수호신이랄 수 있는 ‘돌노인’에게 합장을 했다. 30m 높이의 ‘화산옹(華山翁)’이다. 순천군민에겐 각별한 바위다. 돌노인의 눈매는 항상 섬진강과 순천읍 방향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추장 장인들은 장을 담글 때 돌노인 앞에서 고유제를 올리기도 한다. 군민들은 이 바위의 색감을 보고 그 해 운세를 점쳤다.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 같으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순창고추장의 붉은색은 오히려 액막이 구실을 한다. 바위가 적변(赤變)해도 순창고추장이 액기(厄氣)를 중화시켜준다. 결과적으로 순창이 순박(淳朴)한 건지도 모른다.

등산하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모처럼 구름나그네였다. 산정부는 공룡의 등 같은 암릉군이었다. 불과 몇평 되지 않는 좁디좁은 장군봉 전망대. 하지만 예측불허의 가경이 발아래 무릉도원처럼 깔려 있었다. 산맥·강·들판·촌락이 이렇게 완벽한 황금비율로 짜여 있는 경우를 최근에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산 발치는 넓은 들이다. 보리·밀 수확과 모심기 준비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 광경이 조각보 같은 형색이다. 바로 옆에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212.3㎞)이 임실군을 훑고 S자로 굽어져 순천읍으로 굽이쳐가고 있다. 강 너머는 중국 계림을 축소해 앉혀 놓은 듯한 연봉이 연꽃처럼 피어있다. 전남 구례군 사성암(四聖庵)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이 압권이란 말도 이젠 수정해야만 될 것 같다. 채계산에서 본 섬진강. 성형수술한 4대강에 비해 훨씬 토속적이고 친환경적이었다.

순창고추장, 그게 장인의 손끝보다 어쩜 섬진강과 기름진 옥토의 산물인 것 같다.

◆고추장 사찰 …회문산 만일사

순창이 고추장의 고장이란 걸 알려주는 중요한 비석이 있다고 해서 구림면 안정리에 위치한 만일사(萬日寺)로 향하였다. 만일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건국 전 무학대사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공을 들일 때 머물던 절이다. 이성계는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와 인근 김좌수의 집에 초대받아 점심을 먹게 된다. 그때 먹은 고추장 맛이 이성계에겐 특별했던 모양이다. 조선을 건국한 후 이성계는 그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토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록은 사료로 전해지지 않는 구전설화다. 6·25전쟁 등 두 차례 소실 끝에 195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만일사는 두 거장이 머문 곳이라 하기엔 너무 작았다. 6·25전쟁 당시 회문산에 북한의 남부군 총사령부가 자리하였다. 만일사는 집중 포화로 모든 것이 소실된다. 다만 훼손된 중수비만 살려냈다. 순창군이 파손되고 마모된 비문에서 태조 대왕과 무학이란 단어를 찾아낸다. 이걸 토대로 비각 옆에 고추장전시관도 만들고 ‘순창고추장스토리텔링’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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