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고추장마을’ 장독대마다 맵고 짜고 단 三味가 익어간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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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2   |  발행일 2017-06-02 제34면   |  수정 2017-06-02
■ 푸드로드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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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토굴은 장류를 일정한 온도로 보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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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간 고추장 외길을 걸어온 조경자 할매. 그녀에겐 이 장독대가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1년 이상 숙성하고 첨가제가 없어야 제맛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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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마을 장독대에는 간장과 된장이 고추장과 삼합을 이루고 있다. 고추장과 달리 간장은 햇살이 좋을 때마다 뚜껑을 열어 잡내를 날려줘 깊은 맛을 낸다.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고추장마을.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IC 근처에 있다. 정확하게 말해 광주 방향 순창휴게소 바로 옆이 민속마을이다. 기와집으로 된 54개 고추장 공방이 구획돼 있는데 현재 여기서 영업하는 등록 업소는 38곳. 이 마을에는 명인, 기능인 등을 포함해 주민 200여명이 살고 있다. 집집마다 옹기 100~200개가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옹기가 이 마을의 수호천사고 생명줄이고 밥을 보장해주는 관광상품 1호다.

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산이 있다. 장독대에 상생의 기운을 보태준다는 ‘아미산’이다. 주민들에겐 ‘고추장산’으로 통한다. 고추장마을의 역사는 불과 20년밖에 안 된다. 원래 논밭이 있던 언저리였다. 그걸 밀어내고 계획적으로 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순창읍내에 흩어져 있던, 사업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그냥 민초로 살던 그들이 이 마을로 이주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1997년부터 고추장 명인·기능인 이주
54개 공방이 전통고추장마을 이룬 곳
집집마다 장독대에는 옹기 100∼200개

2004년 전국시장 40% 차지 순창産 장류
대량생산 ‘공장표 국민고추장 시대’활짝
반찬이던 고추장이 특제소스로도 주목

타임誌 표지 소개 ‘발효할매’이기남씨
농식품부 지정 名人 문옥례·강순옥씨
80년된 씨간장·17년된 고추장 등 名物


◆88고속도로와 순창고추장

‘전통민들레고추장’이란 독특한 상호를 가진 고추장집을 꾸려가는 박재기 이장(64). 97년 읍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집이 여기로 옮겨올 때 이 마을 이름을 공모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응모한 마을 이름이 채택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박 이장댁은 특이하게 민들레로 장아찌를 만든다. 그가 순창고추장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고추장마을로 오기 전에는 다들 읍내 버스터미널과 군청 인근 도로변에 자릴 잡았죠. 그들이 오늘의 순창고추장의 산증인이죠.”

1960년대 초만 해도 주먹구구식 고추장이었다. 사업으로 고추장을 만든 게 아니다. 그냥 식구와 친척·지인과 나눠먹기 위한 것이었다.

63년 동아일보에 순창고추장 특집기사가 실렸다. 군내 100여 군데에서 고추장을 만드는 것으로 보도됐다. 82년에 순창고추장보존협의회가 24명 회원으로 발족된다. 89년 <주>대상(현 청정원)이 읍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던 화영식품을 인수한다. 순창고추장 대량생산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상은 훗날 청정원이 되고 여기서 ‘해찬들 태양초고추장’을 출시해 ‘공장표 국민고추장 시대’를 연다.

순창고추장 전국화가 88고속도로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그는 맘이 편치 않았다. 민심을 가라앉히고 영호남 화합의 장을 만들기 위해 88고속도로를 부리나케 준공시킨다. 개통된 그 고속도로를 통해 여러 시·군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지역특산물을 사주었다. 그는 특히 순창고추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60~70년대만 해도 순창읍 곳곳에 포진해 있었던 고추장할매는 사업가로 보기 어려웠다. 지방마다 자기 식대로의 장류가 엄존했다. 그러니 순창만의 고추장을 생각할 수 없었다. 남은 고추장이 있으면 옆집과 나눠먹었다. 너나없이 먹을 게 없던 시절, 고추장은 부동의 1순위 반찬이었다.

“추억의 고추장밥상을 잊을 수가 없어요. 꽁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 거기에 참기름 몇 방울이면 한끼가 해결됐죠. 세월이 변해 이제 고추장은 반찬이라기보다 특제소스라고 봐야 해요.”

90년대로 접어들자 고추장산업도 발전을 위한 ‘성장통’을 앓게 된다. 순창고추장 제조시설이 워낙 열악했고 폐수문제로 환경단체 등에서 위생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한다. 이즈음 이승우 순천군수(현 군장대 총장)가 맨 처음으로 순창고추장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93년부터 마을 조성공사가 시작되고 이주를 위한 분양신청을 받는다. 하지만 다들 ‘옮겨가면 다 망할 것’이라며 군과 대립각을 세웠다. 4년에 걸쳐 엎치락뒤치락했다. 진통을 겪는 과정에 읍내 고추장집들도 하나둘 고추장마을로 옮겨간다. 자격이 있었다. 10년 이상 순천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여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97년에 고추장마을이 그랜드오픈한다. 이주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2004년에 순창에서 생산한 장류는 전국시장의 40% 수준으로 성장한다.

이후 고추장마을을 중심으로 관련 인프라가 추가로 들어선다. 고추장마을과 연장해선 옹기체험관과 장류박물관, 제2생산단지권에는 장류사업소·발효소스토굴·메주공장·절임류공장·미생물진흥원·장류체험관 등, 2021년까지 조성될 참살이발효존에는 백세식물원·발효테라피센터·전통음식거리·세계발효마을농장·펜션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 세 섹터를 합쳐 ‘순창장류밸리’로 부른다. 특히 130m의 길이를 가진 발효소스토굴. 동굴에 들어온 것 같다. 관계자들은 장류도 와인과 젓갈처럼 토굴에서 보관하는 게 낫다고 믿는다. 여기에 가면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의 신형 옹기도 구경할 수 있다.

◆기와집…한옥과 양옥 사이

멀리서 보면 겉모습은 한옥 같은데 가까이 가보면 ‘퓨전한옥’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곳은 집이며 동시에 가내수공업 공장이다. 그러면서 상점이며 대형 장독대이기도 하다. 집 하나가 그 네 가지 기능을 감당해야 된다. 자연 편리를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하고, 그래서 점점 퓨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기능인 박현순씨가 경영하는 ‘명인고추장’. 그 집의 장독대가 고풍스러워 들어가봤다.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반원초등 학생과 학부모가 고추장체험단으로 참석해 북적거렸다. 올해 85세의 시어머니(조경자)로부터 기술을 전수한 기능인 박씨가 아이들 눈높이에서 고추장·된장 담그는 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고추장을 옹기에 담을 때도 가득 채우면 안됩니다. 한여름에 한뼘 반 정도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 낮춰 담아야 합니다. 고추장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단기에 먹을 수 있는 공장표 양조고추장과 1년 이상 숙성시켜 출시하는 전통고추장이죠.”

박씨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80여년 된 씨간장과 17년 된 묵힌 고추장이다. 원래 간장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지만 된장과 고추장은 1~2년 됐을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17년 이상 고추장을 묵히고 있는 건 시간과 고추장 맛의 함수관계를 실험해 보기 위해서다.

22세에 시집와서 여태껏 고추장 외길인생을 산 조경자 할매. 심심했던지 방에서 나와 아이들 곁을 맴돈다. 그러다가 고춧가루와 메줏가루를 옹기 위에 올리고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20년 전에 맏며느리인 박씨에게 전권을 물려주고 지금은 뒤에서 병풍역할을 한다.

“고추장 재료를 장만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리고 담그는 데는 3일 정도면 되고, 또 1년 이상 숙성과정을 기다려야 해. 맛은 사람이 내는 게 아니고 하늘이 내는 거지.”

고추장마을에선 금기시되는 질문이 있다. ‘어느 집 고추장이 제일 맛있느냐’는 것이다. 집집마다 고수급 기능인이 살고 있다. 다들 자부심이 대단한다. 우열은 없다. 그냥 맛의 질감만 차이가 날 뿐.

현재 고추장마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순창 고추장 제조 및 가공 명인이 딱 두 명 있다. 문옥례(88)와 강순옥 할매(71)다.

문 할매는 사업가적 감이 빨랐다. 현재 고추장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문옥례식품을 만들고 아들 조종현씨에게 기능을 전수했다. 그녀는 62년 4월 읍내에서 ‘순창고추장상회’를 연다. 88년에는 ‘순창문옥례할머니고추장’, 96년 다시 ‘문옥례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한다. 현재 고추장마을이 아닌 읍내에 살고 있다.

고추장할매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기남, 문정희, 오순희, 조경자, 김점례 등도 한몫한다. 타임지 표지로 소개된 발효할매도 있다. 바로 이기남 할매다. 하지만 명인이란 타이틀이 실력의 궁극적 척도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명인제도 특성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정되지 못한다. 솔직히 명인 타이틀은 민속마을에선 별다른 효력을 발휘 못한다. 모르긴 해도 외지인을 위한 ‘대외마케팅용’이 아닐까.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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