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술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장은 “더 이상의 국가폭력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38년전 5월은 가슴 아픈 달이자, 현실과 부단히 싸웠던 달이죠.”
그는 1980년 5월을 이렇게 기억했다. 5·18민주화운동 38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이상술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장(62)을 만났다. 그의 삶을 통해 1980년 5월을 전후한 대구의 단면과 마주했다. 그를 통해 들은 5월 대구의 모습은 광주의 그것과 맥을 함께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사회에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아픔을 겪었다.
성주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대구로 온 이 지부장은 고등학생 때 친구의 형과 친해지면서 사회에 눈을 떴다. 친구의 형은 김지하 시인의 ‘오적’ 등 당시 ‘불온서적’으로 불리던 문학작품을 소개해 줬다. 이 지부장은 이를 접하면서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회에 저항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경북대서 한 선배를 만난 후
학생운동에 동참하기 시작
그시절 학생운동 잊혀가지만
우리 국민 마음속엔 언제나
촛불혁명 같은 저력이 있어”
유공자에 정부 관심도 당부
“최소한 고독사 없도록 해야”
1978년 10월2일. 학교를 마치고 친형 집에 가기 위해 경북대를 가로지르던 그는 학교 안을 메운 경찰 무리를 발견했다. 경북대 총장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
이 지부장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더라고요. 책으로만 보고 알고 있던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는 실마리를 찾은 거죠”라고 그날을 기억했다. 그는 이듬해 경북대에 입학해 한 선배를 만나면서 학생운동을 본격화했다. 그의 이름은 함종호. 1980년 5월 경북대 학생운동의 주역이었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여명회’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 지부장이 2학년이던 1980년 5월. 대구에선 민주화운동의 물결이 더디게 일었다. 초기 30명에 불과하던 시위 대열은 서울에서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점차 불어났다. 그러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확대하면서 경찰, 보안대는 시위 주동인물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는 함께 투쟁한 동지들과 이곳저곳으로 숨어다녔다. 그러다 가족이 위협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조사만 3개월가량 받고 나왔다. 천운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군부의 손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당시 경북대 내에서 신군부를 비방하는 편지글이 배포됐는데, 경찰은 이 지부장을 포함해 두 명의 경북대 학생을 주동자로 지목했고 셋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는 “함께 잡혀간 이들 중 권순형 후배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손발이 묶인 채 1주일가량 발바닥을 두드려 맞는 모진 고문을 당한 그들. 겨우 풀려난 권 후배는 이후 정신지체장애를 앓게 됐다. 그럼에도 바로 군에 징집돼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권씨는 지난 3월 고독사한 채 발견됐다. 사망일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은 부패해 있었다. 이 지부장은 권씨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고문으로 정신 이상이 생긴 친구를 군에 강제징집하고, 마지막엔 돌보는 이 없이 방치한 거잖아요. 국가폭력에 희생된 거죠. 늦었지만 이제라도 챙겨보려고 연락한 건데….” 이 지부장은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이 점차 잊히고 있는 것에 대해 “사라져가는 건 슬프지만 마냥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마음 깊숙한 곳엔 특정한 계기가 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촛불혁명이 증명했잖아요. 앞으로도 필요한 순간이 오면 우리는 움직일 거라는 거죠. 다만 지금 필요한 건 언제일지 모르는, 또 다른 움직임의 순간을 위해 잘 대비해야 돼요.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늘 고민해야겠지요.”
남은 과제도 끄집어냈다.
“먼저 역사를 제대로 봐야죠. 지금껏 왜곡되고 잊혀 온 우리의 과거를 바라보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현 정부도 말로만 ‘따뜻한 보훈’이라고 하지 말고 최소한 유공자들이 쓸쓸히 죽은 채 발견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죠.”
한편 5·18민주항쟁 관련 대구경북지역 유공자는 80여명에 이르며 현재 5·18민주묘지에 5명의 대구경북 출신 유공자가 잠들어 있다.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는 18일 오후 7시 2·28기념중앙공원에서 ‘5·18민중항쟁 38주년 기념식 및 정신계승 문화제’를 연다. 이날은 고(故)권순형씨를 위한 추모의 시간도 마련된다.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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