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히든 카드·애프터 루시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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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27   |  발행일 2013-09-27 제42면   |  수정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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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 카드 (장르 : 범죄·드라마·스릴러,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화이트칼라들이 벌이는 서부극 같은 ‘두뇌대결’

세상 모든 사람은 도박을 한다.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불법 도박은 물론, 주식과 부동산 등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선 일종의 도박이다. 국내 불법 도박시장의 매출액은 2012년 기준으로 약 75조원에 달한다고 조사됐다. 이는 도박의 메카 라스베이거스의 연간 수익 약 60억달러(6조4천500억원)를 11배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해외 인터넷 도박 사이트들이 2011년에 거둬들인 수익만 440억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라스베이거스가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영화 ‘히든 카드’는 바로 ‘제2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리는 인터넷 도박 세계를 다룬다.

명문 프리스턴 대학의 우수학생으로 손꼽히는 리치(저스틴 팀버레이크). 학비 마련을 위해 인터넷 도박에 손을 댄 그는 한 번의 베팅으로 전 재산을 모두 날린다. 하지만 해당 도박 사이트에 자신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음모와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파헤치기 위해 무작정 코스타리카로 떠난다. 그 곳에서 엄청난 돈을 손에 쥐고 코스타리카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인터넷 갬블계의 거물 아이반(벤 애플렉)을 만난다. 리치의 영특함이 마음에 든 아이반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제안하며 그를 갬블의 세계로 유혹한다. 주저없이 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 리치는 그의 밑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히든 카드’는 과도한 욕망이 만들어낸 화려함과 그 이면의 어두움을 스릴러 장르 안에 담아낸 작품이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쪽박과 대박이 가능한 인터넷 도박은 베팅을 하는 순간 통제불능의 상황이 된다는 점에서 많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쪽박을 감수하지 않으면 대박을 얻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하우스는 항상 이긴다’는 말은 이 세계에서 진리로 통한다. 그만큼 베팅할 때와 과감히 포기할 때를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리치는 한 순간의 욕망을 참지 못해 전 재산을 날렸다. 그는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과 불편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아이반과의 만남은 리치의 삶을 새롭게 변모시킨다.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대학졸업장이었던 그는 이제 돈이 주는 편안함과 화려함에 서서히 취해간다. 게다가 아이반의 오른팔이자 사업 파트너인 미모의 레베카(젬마 아터튼)와의 만남은 또 다른 행복을 꿈꾸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이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위험도 역시 증가한다. 오랫동안 아이반을 내사하고 있던 FBI는 그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며 그 증거를 잡을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회유와 협박을 받게 되고, 리치 역시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아이반의 음모와 불법 거래를 알게 된다.

영화는 화려함과 가난, 규제와 타락이 공존하는 갬블러의 나라 코스타리카를 배경으로 인터넷 도박 세계에서 펼쳐지는 짜릿한 쾌감을 스타일리시하게 담아간다. 특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뜻의 국가명에 걸맞은 천혜의 자연환경은 카지노와 호텔 등 화려한 도시와 대비를 이루며 이국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볼거리를 쉴새없이 펼쳐낸다(하지만 실제 촬영은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촬영됐다).

사치와 향락의 삶이 화려하게 전시되는 중반까지를 이처럼 매력적인 볼거리에 천착했다면 이후 이야기는 스피디한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이 주를 이룬 범죄 스릴러로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리치와 아이반이다. 무엇보다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벤 애플렉의 불꽃튀는 연기는 압권이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돈도 명예도 빠른 시간 안에 손에 쥐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소셜 네트워크’ ‘인 타임’ 등을 통해 붙여진 악동 수식어 대신 치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며 전세 역전을 도모하는, 타고난 브레인의 소유자로 거듭났다. 벤 애플렉은 악역 도전으로 눈길을 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사기와 뇌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두 사람의 짜릿한 두뇌대결은 마치 화이트 칼라들의 서부극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브래드 퍼맨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게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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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프터 루시아 (장르 : 드라마,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집단 따돌림 딸을 위한 아버지의 충격적인 복수

로베르토(헤르난 멘도자)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자, 딸 알레한드라(테사 라)와 멕시코시티로 이사한다. 두 사람은 고통과 상실감을 떨치기 위해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일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레스토랑 셰프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로베르토는 마음에 맞지 않는 직원들이 영 마뜩잖다. 알레한드라는 그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새 학교에 차츰 적응해가던 알레한드라는 술에 취해 저지른 남자친구와의 섹스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그 수위가 상상을 뛰어 넘는다. 화장실까지 그녀를 따라와 바지를 벗고 오럴 섹스를 요구하거나 욕실에 갇힌 상황에서 그녀를 범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어른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다. 베라크루즈로 수학여행을 가게 된 알레한드라는 결국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애프터 루시아’는 전세계적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좀처럼 법석을 떨거나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 절제된 시선으로 감동과 충격을 극대화할 뿐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감정을 조율하는 데 있어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특히 별다른 배경음악 없이 담담히 부녀의 모습을 쫓아가는 카메라는 마치 현실의 시·공간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롱테이크 장면들로 포착돼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에 더 빠져드는 효과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미셸 프랑코 감독의 화법은 유난히 도드라진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는 이미 ‘다니엘 & 아나’(2009)로 칸영화제에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젊은 감독이다.

카메라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해 알레한드라의 감정과 시선을 따라간다. 그녀는 아내가 남긴 세간을 보며 눈물 훔치는 아빠 로베르토와 달리, 담담히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감내해나가는 꿋꿋한 소녀였다. 또한 엄마의 부재를 대신해 집안 문제를 헤쳐 나가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알레한드라는 집단 따돌림에 차츰 지쳐간다. 무엇보다 즐거워야 할 학교생활은 ‘창녀’라는 표현을 쓰며 집단 폭행을 가하는 친구들로 인해 생지옥으로 변했다. 문제는 그런 딸을 보듬어야 할 아빠의 부재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로베르토의 나약한 심리는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수리된 아내의 자동차를 인수해 운전하던 중 도로 중간에 차를 버리고 차도로 뛰어드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한다. 또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다. 사회 부적응자인 아빠를 알레한드라는 측은하게 생각한다.

부녀는 집에서도 시종 침묵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부녀가 아닌 모자(혹은 부부) 관계로 치환되는 듯 보인다. 로베르토가 알레한드라의 무릎에 자연스럽게 발을 얹거나, 딸의 품안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 종종 비쳐진다. 그리고 변변한 가구 하나 없는 휑한 집 안은 그런 아버지와 딸의 감정 상태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알레한드라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그 과격한 폭력과 고통을 그저 덤덤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 가족의 수난사를 무심하게 따라가던 영화는 딸의 실종을 알게 된 로베르토의 복수가 펼쳐지는 후반부터 급반전된다. 딸을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감행하는 아빠의 복수는 처절하다. 영화는 이렇게 왕따와 폭력, 상처, 복수, 그리고 용서의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대한 직·간접적 참여와 판단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이유없는 미움과 증오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커다란 고통과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애프터 루시아’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폭력은 그만큼 무섭고 불편하다. 고통의 심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사라진 알레한드라와 그런 딸을 위해 복수를 감행한 로베르토의 행동은 그런 점에서 극단적이긴 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로베르토의 충격적인 복수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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