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산불됴심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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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03   |  발행일 2015-04-03 제23면   |  수정 2015-04-03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라는 당나라의 시처럼 꽃 피고 바람 많은 계절이다. 이 시인이 봄을 노래한 것은 아니지만 만만찮게 부는 봄바람을 보면 생각나는 시구다. 더불어 봄바람이 작은 불씨를 키워 아까운 산을 불태우는 시기이자 지자체 공무원들이 휴일도 잊고 산불감시에 나서는 피곤한 때가 요즘이다. 한식을 전후해 성묘를 하거나 산소를 돌보는 4월 초가 산불위험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무리 말려도 밭두렁을 태워야 직성이 풀리는 농민들도 산불원인에 가세한다. 너나없이 산불뿐 아니라 항상 불조심으로 생명과 재산을 잃지 않도록 할 일이다.

옛 사람들도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 않았다. 문경새재 옛길을 오르다 보면 제2관문 못미처 오른쪽 길 옆에 한글로 ‘산불됴심’이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다듬지 않은 돌에 글자 하나가 가로 세로 30여㎝ 정도로 큼직하게 새겨 길을 오가는 사람들 눈에 쉽게 들어온다. 됴심-죠심-조심의 구개음화 현상이나 단모음화 현상을 감안할 때 200여년 전 영·정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산불조심에 나선 관료들이 일반서민이 잘 알도록 한글 비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산불됴심 비는 자연보호의 시금석이자 보기 드문 한글 비로 지방문화재 자료 제226호로 지정된 유산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후 한말까지 우리나라에 세워진 한글 비석은 고작 4개밖에 없다. 일본에 있는 1점까지 합치면 지구상에 5개에 불과하고 온전히 한글로만 이뤄진 것은 산불됴심비가 유일하다. 중종 31년 세운 보물 제 2524호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의 영비(靈碑)나 경기도 포천의 선조 아들 인흥군 묘역에 있는 한글고비, 진주 의곡사의 비석은 한글과 한자가 섞여 있다. 일본 지바현에 있는 한글비도 중국의 전서체와 일본식 한자, 산스크리스트어와 함께 글자를 새겼다. 반면 한자로 된 비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글을 천시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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