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이념 대립에 희생된 구미 독립운동가를 기리다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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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0 08:14  |  수정 2017-04-10 08:14  |  발행일 2017-04-10 제29면
운파 최관호 선생 70주기 추모제
구미 해평리 쌍암고택 인근 개최
옛 선산군지역 중심 진보적 활동
미군정하에서 억울하게 즉결처분
좌우이념 대립에 희생된 구미 독립운동가를 기리다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쌍암고택 인근에서 독립운동가 운파 최관호 선생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독립운동가 운파(雲坡) 최관호 선생(1905~46)의 70주기 추모제가 지난 8일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쌍암고택 인근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운파 최관호선생추모사업회, 해평면노인회, 전주최씨 인재공파 해평문중이 주최했으며 300여명의 추모객이 참석했다. 옛 선산군 지역에서 청년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운파 선생은 20대 초반인 1925년 구산구락부(龜山俱樂部)를 창립해 선산지역 청년운동과 지역사회 진보진영을 이끌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927년 신간회 선산지회 창립을 지원했고, 29년에는 만주 북방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사재를 들여 창간한 만몽일보를 활용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30년 8월에는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 선생이 옥중에서 자결하자 만몽일보에 게재한 ‘민족이여 각성하라’는 사설로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최대 항일조직인 신간회가 해산된 31년 경북도내 신문기자들로 결성된 ‘보도협조망’의 선산군 대표로 참여했고, 34년부터 동아일보 선산지국 기자로 활동을 재개했다. 44년 독립운동가 여운홍, 안재홍, 심산 김창숙 선생과 함께 건국동맹을 결성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다 왜관경찰서에서 옥중 광복을 맞았다.

운파는 광복 이후 극단적인 좌우이념 대립으로 치닫던 1946년 10월16일 미군정하 군인들에게 강제로 연행돼 구미시 해평면 해평지서 앞 농창(農倉)에서 재판 없이 즉결 처분돼 생을 마감했다.

당시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은 ‘운파를 즉각 석방하라’는 급전을 보냈으나 도착하기 1시간 전에 사태가 마무리됐다.

김종길 구미 선산지역 근현대사 연구모임 대표(운파 생애와 경력 집필가)는 “운파의 독립운동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렸던 신문기사, 지인들이 주고받은 편지, 사진과 일제하 대구의 언론연구, 폭풍의 10월에 실린 내용으로 삶과 경력을 재조명했다. 선생의 투철한 독립정신은 언론계, 대한광복회, 사회활동, 건국동맹활동에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백종현기자 baek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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