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의 사필귀정] 약자에게 더 엄격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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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3   |  발행일 2018-05-23 제30면   |  수정 2018-05-23
[박순진의 사필귀정] 약자에게 더 엄격한 사회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범죄 피해의 고통은 강자의 그것보다 덜 아픈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 행위는 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가? 건전한 식견을 가진 시민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강자보다 아픔이 덜하지 않으며 신분과 권력 유무에 따라 처벌을 달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런저런 사정을 따지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처벌하고 고통을 당한 피해자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형사사법기관의 태도와 언론매체의 보도 관행이 좀처럼 자명하게 관철되지 않으니 여러모로 유감이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몰래카메라 및 불법촬영 관련 사안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제기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대학 실기수업에서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하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성모델을 신속하게 수사하여 구속한 사건을 두고 여성에 대해 편파적인 수사라며 규탄하는 시위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큰 규모로 일어났다. 관련 국민청원에 대해 여성가족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수사나 처벌에 있어서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가해자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하여 엄정하게 처리한 형사사법기관에 대해 그간 가해자가 남성인 사건의 느슨하고 미진한 수사 관행과 비교하여 매우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투 운동만 해도 그렇다. 법무부 고위 검사의 성추행 사건 이전에도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이 어렵게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박한 언론은 좀처럼 보도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민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한 시민이 야당 원내대표에게 접근하여 폭력을 행사한 사건에 대한 형사사법기관의 대응 역시 인터넷에서 열띤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더구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시민이 저지른 단순 폭행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정당 활동을 위축시키는’ 위험한 테러 수준의 행위라고 판단하여 신속하게 구속 수사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필자를 비롯한 일반 국민은 국회의원끼리 드잡이하는 장면을 언론을 통해 적잖게 목격한 바 있는데도 주먹을 날리거나 기물을 던진 국회의원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였다는 것은 들은 바 없다.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힘 있는 사람들의 일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 언론의 보도 관행이고 일반 시민의 여론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피해자의 아픔을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저울질하거나 힘센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며 우대하려는 관행이 존재해온 것이 아닌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보잘것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력을 가진 사람에 비해 자신의 피해와 아픔을 호소하는 일이 쉽지 않고 정의롭게 일을 해결하는 것은 더 힘들다. 지위가 높으면 응당 더 엄중한 책임을 요구할 일이지 더 크게 보호할 일은 아닐 것이다.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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