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지역문학과 지역민의 소통, 그리고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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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0   |  발행일 2019-05-30 제30면   |  수정 2019-05-30
조선 문인 서거정 ‘대구십영’
후대에 지역 정체성 일깨워
지역문학 통한 유대와 결속
지역민은 자신이 사는 곳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 삼아
20190530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본관은 달성이다. 비록 그는 외가인 경기도 임진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친향(親鄕)인 대구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대구 경재소(京在所)의 당상(堂上)을 맡아 동향의 인재들이 조정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대구로 부임하는 지방관들에게는 지역의 문화를 부흥시켜주기를 당부하기도 하였다.

서거정의 이러한 관심은 대구의 명소 10곳을 대상으로 한 10수의 칠언절구(七言絶句)로 구체화되었는데, ‘대구십영(大丘十詠)’ 또는 ‘달성십경(達城十景)’ 등으로 불리는 작품이 그것이다. 각각의 제명(題名)은 금호강의 뱃놀이(琴湖泛舟), 삿갓바위에서의 낚시(笠巖釣魚), 연귀산의 봄 구름(龜峀春雲), 금학루의 밝은 달(鶴樓明月), 남쪽 연못의 연꽃(南沼荷花), 북벽의 향나무 숲(北壁香林), 동화사의 스님 찾기(桐華尋僧), 노원의 송별(櫓院送客), 팔공산의 쌓인 눈(公嶺積雪), 침산의 저녁노을(砧山晩照)이며, 현재에도 대구의 명소로 사랑 받고 있는 금호강과 동화사, 팔공산, 도동 측백나무 숲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대구십영’은 대구를 사랑했던 서거정의 감성과 당대 대구의 풍경이 담겼다는 점에서 지역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서거정의 ‘대구십영’은 후대 문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 중기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문인이었던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은 ‘대구십영’에 대한 감상을 쓴 시에서 “서거정의 십영은 그 이름이 영원할 것이며, 시는 일대의 시단을 울렸네.(徐子十詠名不朽, 詩鳴一代擅騷壇)”라고 평가하였고, 조선 중기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던 오숙(吳 , 1592~1634)은 ‘대구십영’을 차운하여 ‘달성십영차서사가운(達城十詠次徐四佳韻)’을 지은 바 있다. 근세에 들어서도 1949년 봄 대구향교를 출입하던 지역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대구십영’을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대구팔경을 선정하고, 1951년 ‘대구팔경시집(大邱八景詩集)’을 간행한 바 있다. 이때 참여한 지역인사가 182명, 그들이 창작한 시가 모두 1천456수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 유림들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짐작하게 한다. 그들이 선정한 대구의 풍경은 달성의 맑은 남기(達成靑嵐), 앞산의 봄 경치(南山春色), 금호강 어부의 피리소리(琴湖漁笛), 와룡산의 뜬구름(龍山歸雲), 신천의 밝은 달(新川霽月), 동화사의 저녁 종소리(桐寺暮鐘), 영선못의 가을 연꽃(靈池秋蓮), 고야 들판의 벼(古野禾黍)였다. 이들은 서거정이 살았던 조선 전기의 대구와 그들이 살고 있는 근세 대구의 지역적 변화를 인식하면서 팔경을 선정하고, 이를 토대로 팔경시를 창작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결국 서거정의 ‘대구십영’이 대구를 대표하는 지역의 문학으로 그들에게 인식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대구가 가진 지역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대구시에서는 현대적 인문경관과 전통적 경관을 함께 포함하여 대구 12경을 설정하고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 강정고령보나 대구스타디움, 83타워 등이 지역 공동체 내에서 얼마나 지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제 새로운 ‘대구십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문학의 역할을 고민해야만 한다. 지역문학은 지역민의 삶과 터전이 주요한 배경이 되며, 지역민은 지역문학을 통해 자신이 딛고 있는 지역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문학에서 지역은 운명적’이라고 말한 것일 터이다. 지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지역문학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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