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연극인 길 41년’ 이송희 이송희레퍼토리 대표

  • 박주희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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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7   |  발행일 2019-07-27 제22면   |  수정 2019-07-27
“성민(배우 이성민)이가 ‘대구 연기 1등’이라 띄워줬지만 안 맞는 역 맡아 혹평 듣기도”
배우 이성민 추천 상업영화 첫 출연
20190727
이송희 ‘이송희레퍼토리’ 대표가 “최근 난생 처음 상업영화에 출연한 게 좋은 경험이 됐지만, 역시 영화보다는 연극이 편하고 자유스럽다”며 “젊었을 때부터 노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앞으론 달콤한 로맨스 연기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배우 이성민의 추천으로 영화 ‘비스트’에 주요 역할로 출연하게 된 대구 연극계의 대(大)배우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성민이 ‘대구 연기 1등’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운 터라 궁금증이 더 했다. 그에게 상업영화 첫 출연 스토리와 41년 연극 인생을 함께 듣고 싶었다. 지난 12일 빈티지 소극장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소극장 입구임을 인지케 했다. 철 지난 연극 포스터와 음식, 막걸리 사진 등이 붙어 있는 비좁은 계단을 내려 인사를 건넸다. 아무도 없었다. 무대에는 탁자와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객석 의자에 대본 등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하얀색 공기청정기 두대는 푸른빛을 내며 생뚱맞게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인기척이 났다. 뿔테 안경에 티셔츠 차림의 동네 아저씨가 나타났다. 이송희 이송희레퍼토리 대표다.

첫 주제는 역시 영화 ‘비스트’ 이야기였다.

“배우 이성민씨가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이 대표가 떠올랐다던데요”라고 물었다.

그는 “성민이 추천으로 영화사에서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봤는데 딱 나더라고. 내가 노역 전문 배우예요. 대한민국에서 내가 적역이지. 안경도 이거 그냥 쓰고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게 분장해서 그냥 촬영했어요. NG도 별로 안 났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안겼다. 영화 ‘비스트’에서도 그는 70대 노인 역으로 출연한다. 포털사이트의 영화 소개에는 단역으로 나오지만 존재감이 있는 역할이다.

미대 입학 후 연극반 가입하며 입문
20대부터 노인·비극적인 역할 소화
방송 체질 안 맞아…무대선 자신감
지역 연극계, 인프라는 좋지만 영세
홍보 강화·작품 질 향상 함께 추진을

배우 이성민 추천 상업영화 첫 출연
‘15禁’ 제약 격투신 대거 편집 아쉬워


“20대부터 노인 역할, 비극적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20대 때 노역전문배우라고 신문에 이름도 났었어. 젊었을 때도 그 나이에 맞는 청년 역을 맡으면 되레 어색했고 혹평을 듣기도 했지.”

2001년 19분짜리 독립영화인 ‘샴 하드 로맨스’에 아편쟁이역으로 출연한 이후 두번째 영화 출연, 상업영화로는 첫 출연이다. 촬영지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동인시영아파트. 지역에서 촬영하다 보니 대구 배우 20여명이 조단역과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를 ‘15금’으로 만들면서 잔인한 장면이 많이 편집돼 영화에 안 나오는 사람도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영화 촬영할 때 관계자들이 ‘개봉하면 바빠지실 것 같다’ ‘체력 관리 하셔라’ 등 가슴 부푼 소리를 하기도 했고 사실 나도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다른 영화에서 섭외가 돼 대구 배우들에게 연결 다리가 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영화가 흥행이 안돼(비스트는 관객수 20만명을 조금 넘었다) 아쉽죠.” 그러면서 “성민이가 또 소개해 주면 좋죠”라는 말을 스르르 흘리며 허허 웃었다.



#‘대구 연기 1등’

▶상업영화 첫 촬영이었는데 촬영할 때 어땠나요.

“성민이가 ‘대구의 전설’이라고 워낙 띄워줘서 대접을 잘 받았어요. 누가 연기 지도를 하겠어요. ‘대구 전설’한테…. 출연료도 2천만원을 받았어요. 하루당 200만원씩 10회 찍었죠. 연극은 몇달 해봐야 벌이가 시원치 않은데…. 또 성민이가 시사회하면서 무대 인사에서 ‘이송희 선배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해 어깨도 으쓱했죠(그는 시사회 무대 인사 때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시사회 끝나고 관객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하기도 했어요. 다만 성민이와 격투신 등 편집이 많이 돼 아쉬워요.”

▶‘진작 영화로 옮겨볼 걸’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사실 영화보다는 연극이 편하고 자유스러워 내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요.”

▶대구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던 배우 이성민씨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나요.

“선후배 사이죠. 사실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성민이 덕분에 좋은 경험했어요. 1993년 ‘느릅나무 곁에 욕망’이라는 대백예술극장 개관 기념공연에서 내가 아버지, 성민이가 아들역으로 연극했던 게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연기는 타고나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대구 연기 1등’이라는 수식어가 붙던데요.

“연기는 좀 타고 나야죠. 저도 좀 그런 면은 있는 것 같아요.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고 웅변을 해서인지 대사전달력이 좋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연기 최고는 없어요. 배역을 잘 소화하는 배우가 있을 뿐이죠. 저도 매번 잘할 수 없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듯한 역할이라는 혹평도 듣고 했어요.”

#41년 연극 인생과 대구 연극계

▶미대에 입학했던데 어찌 연극을 하게 된 겁니까.

“어릴 때 오락 시간이면 사회자로 나섰어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고 웃기는 게 좋고 짜릿했죠.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 가야 하는 시간에 부모님 몰래 웅변학원을 다닐 정도였어요. 70~80년대는 구봉서·배삼룡 등 코미디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코미디언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고.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영남대 미술대 조소과에 입학했죠. 입학하고 연극반 포스터를 보고는 바로 노크해 그 길로 연극을 쭉 하게 됐네요. 당시 출연하던 연극이 졸업작품전과 겹쳐서 제때 졸업도 못했어요. 졸업작품을 제출 못했거든.”

▶연기한 작품수는 얼마나 되나요.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통상 1년에 4~5개 작품을 해요. 40~50대 들어서는 연 6~7개 작품씩 하고 있으니 한 200~300개 작품을 했을 것 같네요.”

▶기억나는 작품을 꼽으라면요.

“2019년 대구연극제에서 우수연기상을 받았던 ‘전선 위에 걸린 달’, 대구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았던 ‘삼류 배우’ ‘만무방’도 기억나고…. 85년 ‘아일랜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죠. 아일랜드는 동아쇼핑 비둘기홀에서 대학동기이자 현재 대구MBC FM MC로 활동 중인 류강국과 공연한 2인극이에요. 대구 연극계에서 획을 그은 작품이에요. 두달 장기공연을 했거든요. 지방에서는 첫 장기공연이었어요. 에너지 넘치고 템포 있는 2시간짜리 공연이라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힘들었죠.”

▶방송활동 제의는 없었나요.

“나이 서른쯤 되면 하나둘 연극을 떠나요. 결혼도 하고 밥벌이도 해야하니…. 1980~90년대는 대구 연극계와 방송국 간 교류가 많았거든요. 강국이는 대구MBC에서 활동했고, 저도 대구KBS 1라디오에서 MC로 3~4년간 활동했어요. 근데 방송 체질이 아니야. 그때 PD가 그러더라고. 마이크만 갖다대면 감정의 50%도 안 나온다고. 계속 못했죠.”

▶41년째 쉼 없이 하고 있는 연극의 매력은 대체 뭡니까.

“저는 일상에서는 그냥 볼품없는 할배예요. 숨어있어야 될 사람이야.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다르죠. 일상의 실수가 상쇄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연극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든 적은 없었습니까.

“회의라기보다는 연극하다 보면 밤낮 뒤바뀌어 생활이 불규칙하고 가정도 등한시하게 되잖아요. 가족을 힘들 게 한 것이 마음에 걸리죠.”

▶아직도 해보고 싶은 역이나 작품이 있다면.

“20대부터 노인 역, 비극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와서 달달한 로맨스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대구 연극계를 어떻게 진단하는지요.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대명공연거리에는 소극장도 15개 정도 되고 인프라가 좋은데 극장에 관객이 많지 않아요. 뮤지컬·영화 등으로 관객을 뺏겼고, 극단이 영세하다 보니 홍보력이 약해서 관객들에게 잘 인식되지 못한 측면도 있지요. 지원제도가 연극인들의 예술정신을 갉아먹은 측면도 있어요. 홍보기획 전문가가 필요하고 연극인들도 의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죠. 기업체·학교 등과 단체 협약을 통해 관객들이 많이 찾을 수 있게끔 방안도 모색하고 양질의 작품 제작에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이송희 이송희레퍼토리 대표(60)는 79학번으로 영남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영남대 천마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다. 데뷔작은 이근삼 선생의 ‘요지경’이라는 작품이고, 1981년 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극단 원각사의 ‘무엇이 될꼬 하니’에서 거지 역을 맡으며 프로배우로 첫발을 내디뎠다. 84년 극단 우리무대 창립 멤버로 들어가고 92년에는 이송희레퍼토리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2009년 빈티지소극장을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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