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상의원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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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26   |  발행일 2014-12-26 제42면   |  수정 2014-12-26
한복 아름다움 향한 조선시대 두 남자의 치열한 경쟁
왕실 의복 만들었던 ‘상의원’ 소재
20141226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었던 상의원 사람들을 소재로 삼았다. 태조 때 설치되었다가 1907년 폐지되었다는 상의원은 왕실의 보물창고로 불리었을 만큼 많은 재화와 의상, 사람과 권력이 수시로 드나들고, 그들의 관계와 조밀하게 얽혀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영화는 이를 배경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향한 진검승부를 펼쳤던 두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돌석(한석규)과 공진(고수)이다. 돌석은 30년 동안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 어침장.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제 6개월 후면 양반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박신혜)의 시종들이 실수로 왕(유연석)의 면복을 불태우게 된다. 왕비의 다급한 요청에도 돌석은 하루 만에 옷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면 궐 밖 옷 잘 짓기로 소문난 공진(고수)은 하루 만에 완벽하게 왕의 옷을 지어 올린다. 돌석은 처음 기생의 옷이나 만드는 천한 사내라고 생각하며 공진을 무시했지만, 차츰 공진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천재성에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옷은 그것을 입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뿐만 아니라 개성까지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일차적인 수단이 된다. 때문에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과 타고난 능력을 가진 이를 향한 질투 또는 열등감은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상의원’은 이에 주목해 권력과 혁명의 소재로 주로 소비되던 기존 사극의 형식을 벗어나 사람과 옷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일단 옷을 매개로 돌석과 공진의 주변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상의원’이 동력으로 삼은 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관계 같은 구도다. 선왕 때부터 왕의 옷을 전담해왔던 돌석이 전통과 규범을 중시하는 철저한 노력형이라면, 기생의 옷을 만들며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던 공진은 경계와 틀을 뛰어넘는 파격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스타일의 천재 디자이너다. 그런 공진에게 돌석은 “옷에는 예의와 법도 그리고 계급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의 천재성을 경계한 일종의 질투심이다.

물론 돌석은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충분한 재능을 갖췄다. 하지만 공진이 내놓은 놀라운 결과물은 늘 돌석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자신의 재능보다 남의 것이 더 커 보여서 생기는 이 열등감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그를 쫓아갈 수 없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살리에르의 고뇌와 같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깊이감을 더한 건 두 사람의 대결에 일조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작용한 왕과 왕비다.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왕 역시 미천한 출신 때문에 적통이었던 선왕에 대한 열등감으로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이 없다고 여긴다. 때문에 왕위에 오른 후 선왕을 모신 대신을 모두 내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옷을 만들어준 조돌석만은 곁에 남겨 둔다. 옷만이 자신의 위엄을 과시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한 그에게 돌석은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인 셈이다. 반면 왕비는 공진의 옷을 통해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빛을 잃었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옷을 통해 왕과 왕비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움, 질투, 열등감, 권력욕을 추구하고 해소해 나간다.

옷을 소재로 삼은 만큼 ‘상의원’의 방점은 매 시퀀스 펼쳐지는 다채로운 옷의 향연이다. 시각적 쾌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순 제작비 72억원 중 의상에만 1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다소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야기는 산만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과 감정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아예 이원석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감각이 돋보인 중반까지의 스탠스를 후반까지 그대로 유지해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재기발랄한 데뷔작 ‘남자사용설명서’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장르: 사극 등급: 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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