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한지붕 4代’ 이야기-의성 우종한씨네 가족

  • 이춘호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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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18   |  발행일 2015-02-18 제3면   |  수정 2015-02-18
웃어른과 함께 살기에…웃음은 끊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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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녀가 봄방학 직후 집에 돌아와 모친의 손을 잡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종한씨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명절에 가족 30명 모두 모이면
4代가 흥겨운 노래자랑 ‘들썩’

추운날엔 어머니방부터 확인
웃어른 계시니 부부싸움 못해

시어머니의 머리 감겨주는 아내
며느리가 보고배우는 ‘父孝子孝’


◆ 행복의 원천 중 하나는 가족 노래방

노래는 분명 우종한씨의 4대 대가족에는 ‘해피 바이러스’.

명절에 30여명의 혈족이 모이면 윷놀이부터 한판 올리고, 흥이 달아 오르면 창고에 넣어둔 노래방 기계를 꺼낸다. 4대 노래자랑이 펼쳐진다. 모친은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 우씨는 송대관의 ‘네박자’, 아내는 남정님의 ‘새벽길’, 아들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며느리는 빅뱅의 히트곡을 즐겨 부른다.

주말엔 외식도 자주 한다. 이 집은 증손녀보다 모친이 좋아하는 고기류 위주로 식당을 찾는다. 우씨 내외와 아들 내외도 밖에서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우선 모친부터 맛을 보인 뒤 먹는다.

아들 병택씨는 아무리 바빠도 가급적 매주 일요일은 가업으로 물려받은 정미소를 닫는다. 사회인 야구 등 취미생활도 아내와 함께 즐기지만 가족과의 시간이 최우선. 최근에는 대구시 북구 읍내동의 모 극장에 가서 ‘국제시장’을 단체 관람했다. 매년 영덕삼사해상공원으로 해맞이 나들이도 한다.

◆ 어머니 방 군불 때기는 아들의 몫

해가 넘어 갔다.

갑자기 바람이 거세진다. 거실로 냉기가 밀려든다. 도시보다 더 빨리 어두컴컴해진다. 그럴수록 거실의 표정은 더 환하게 피어오른다.

갑자기 우씨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이불 밑으로 손을 들이민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밖으로 나가 아궁이 안으로 장작을 충분하게 집어넣고 들어온다. 그는 90년대초 유림(儒林)에 들어갔다. 현재 의성 비안향교 장의이자 대한유도회 청년부장.

“어느 날 어머니가 기름값 때문에 냉방에서 잠을 청하는 걸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른 방은 모두 보일러지만 어머니 방만은 제가 직접 군불을 땝니다. 이건 효행이 아니고 자식의 도리죠.”

이 집은 1년 내내 햅쌀을 먹을 수 있다. ‘밥 인심’이 각별하다.

병택씨가 정미소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결혼하면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도덕정미소의 3대 사장이 된다. 1년에 20㎏ 쌀을 4만여 포대 도정해 ‘안계 고두미’와 ‘도덕쌀’로 판다. 도정 물량이 쇄도하는 매년 8월부터 3개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헤어디자이너 출신인 아내가 그에겐 ‘최고의 위안’이다. 그녀가 분가 대신 시어른과 동고동락하겠다고 결심한 게 큰 버팀목이 된 것이다.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분가하면 재밌을 것 같지만 자칫 삶이 피폐해질 수 있죠. 도시의 삶이란 게 얼마나 황량합니까. 아내는 요즘 대가족 생활에 완전 적응했고 일석삼조랄까, 부수적으로 혜택 받는 게 많아요. 웃어른 덕분에 아이들의 인성이 정말 반듯해졌어요. 그게 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텃밭도 넉넉해 대형마트 채소 코너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돼요. 내집 마련 걱정도 필요없죠. 항상 제철음식을 먹으니 아이들이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아요.”

◆ 부부싸움도 언감생심

원래 예전 양반가 웃어른은 독상인데 우씨 가족은 겸상을 한다.

“독상은 어머니를 더 외롭고 처량하게 하죠. 겸상을 하면 손자와 대화도 나누고 맛있는 반찬도 골고루 드실 수 있죠. 어머니가 무병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도 겸상이라고 믿습니다.”

이 집에선 부부싸움도 언감생심이다. 화를 내고 싶어도 웃어른 때문에 최대한 자제한다. ‘화는 최소화, 웃음은 극대화’된다.

서울 송파소방서에 근무하는 우씨의 둘째 아들 병일씨(36)가 한과 세트를 보내왔다. 며느리 보라씨는 일찌감치 시어머니와 함께 안계면 전통시장을 찾아 강정과 가래떡 등 성수품을 장만해 왔다. 우씨는 손주에게 줄 빳빳한 세뱃돈까지 미리 챙겨두었다.

첫째딸(미나·44), 둘째딸(미정·43)은 모두 출가해 현재 대구에 살고 있다. 하지만 기제사와 명절 땐 집을 찾는다.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 내외까지 총출동하면 거실은 입추의 여지가 없다. 명절 잔치는 2일간 지속된다. 방은 딱 3개. 한 개는 어머니, 또 한 개는 우씨 내외 차지. 화장실도 3개로 늘렸다. 방이 부족할수록 더 정겹다. 명절 전날에는 10명 이상이 몸을 맞대고 거실에서 잔다. 자식들의 두런거리는 얘기 소리에 쉬 잠을 못 청하는 우씨 내외는 ‘이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고 독백한다.

거실 한 쪽에 어머니의 나이와 비슷한 녹슨 ‘싱거 미싱’이 유물처럼 놓여 있다. 어머니는 몇년 전부터 청력이 극도로 떨어져 마을회관에는 나가지 않고 종일 집을 지킨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병원 신세도 지지 않을 정도로 타고난 건강체질. 오전 7시쯤 일어나면 요강부터 비운다. 가족이 없으면 혼자 청소와 빨래, 텃밭가꾸기까지 챙긴다.

어머니와의 소통을 위해 아내가 통역사로 나선다. 평소보다 두세 배 크게 고함쳐야 시어머니가 말귀를 알아듣는다. 하루에 10번 정도 그렇게 통역하다보니 아내의 음성도 엄청 커져버렸다. 아내는 5일마다 목욕을 하면서 시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린다. 그 광경을 본 며느리 역시 시부모에 대한 봉양 마인드가 더 솟구칠 수밖에 없다. 고부갈등이 일어날 수가 없다.

‘부모의 효를 자식이 본받게 된다’는 ‘부효자효(父孝子孝)’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이 대가족은 핵가족 시대가 놓치고 있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표 가족애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손녀가 증조할머니에게 공손히 배꼽인사를 올린다. 대가족이 모두 마당까지 나와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내내 이 가족의 웃음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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