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원 쏠림→공정거래 불가능→시장기능 훼손→불황 ‘도미노’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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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03 07:23  |  수정 2015-08-03 09:33  |  발행일 2015-08-03 제3면
수도권 규제완화는 잘못된 선택…‘대압착’ 정책서 답을 찾자
20150803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구시와 경북도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코앞의 투자유치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지역 인재 유출 심화, 지역 유치 기업의 수도권 U턴 현상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압착’으로 중산층 키워 공황 극복한 미국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의 격차가 극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수도권 규제 완화’가 아닌 ‘대압착(The Great Compression)’ 정책으로 수도권에 몰려있는 국가 자원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사업의 핵심으로 추진한 대압착 정책의 목적은 시장기능 회복이었다.

시장경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들 간에 평등한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공정한 거래가 이뤄져야 공정한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 공정한 시장이 형성돼야 사람들의 시장참여가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국가의 자원이 특정계층에 집중된다면 공정한 거래는 불가능하다.

독점 대기업들은 카르텔을 통해 시장가격 형성을 방해하고, 중소기업들의 제품가격을 생산비 이하로 후려쳐 중소기업들을 고사시킬 수 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소득분배구조를 살펴보면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50% 가까이를 가져가는 극단적인 부의 불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부의 독점을 대공황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자들이 나라의 부를 독점하고 있으면 상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 공급현상이 발생해 공황이 터질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압착 정책을 시행해 중산층을 부활시켰다. 이로써 ‘공정 거래’라는 시장 본래 기능을 살릴 수 있었고, 부활한 중산층이 소비를 늘리면서 미국은 공황에서 근본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美 대공황 원인은 富의 독점때문
상위 10%가 소득의 50%나 차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압착 정책
시장 기능 살려 소비증가에 초점


◆국가 자원의 ‘블랙홀’ 수도권

문제는 미국 공황 당시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부(富)의 독점 현상이 대한민국 수도권과 비(非)수도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지난달 28일 발간한 ‘2015 행정자치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총인구의 절반인 2천536만3천671명(49.4%)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인 경기도 수원시의 인구는 117만4천228명으로 같은 시(市) 단위 중 최소 인구를 보유한 충남 계룡시의 4만1천명에 비해 무려 28.6배나 많았다.

또 한국도시연구소장인 변창흠 세종대 교수에 따르면 인구, 생산액, 사업체와 같은 일반기능의 50%, 지역총생산(GRDP)의 47.1%, 총사업체 수의 47.4%를 수도권이 차지하고 있다.

첨단기능·가치창출기능도 수도권에 약 3분의 2가 집중돼 있고, 전국 예금액의 70.2%, 연구개발비의 67.1%, 재산세 징수액의 66.5%가 수도권에 물려 있다. 생산기술이 표준화되고 있는 제조업은 비수도권에 집중되는 반면, 첨단서비스업이나 문화콘텐츠산업의 수도권 집중도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행정·정치·경제·문화·교육 등에서 국가핵심기능과 부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우선 전국의 대학평가 상위 20개 중 수도권 대학이 80%인 16개다. 매출액 기준 10대 기업의 90%, 100대 기업의 84%, 1천대 기업의 70.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법인의 시가총액은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의 87.7%에 이르고, 코스닥시장의 74.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지역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의 지역격차와 사회격차를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지적하며, 이를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훨씬 심각
국가자원 독점 불구 생산성 낮아
지방 육성해 국가 경쟁력 키워야
내수 살아나 경기침체 탈출 가능

◆수도권의 국가 富독점 원인 ‘정부 정책’

수도권의 국가 자원 독점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생산성이 비수도권보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김정훈 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 수도권 인구 비중이 42%일 때 수도권 생산량 비중은 약 47.5%로 생산량 비중이 인구 비중보다 높았으나, 2005년엔 양자의 비중이 비슷해졌다. 이후 2012년에는 수도권 인구 비중이 약 49.5%로 증가한 반면, 수도권 생산량 비중은 47%로 떨어져 수도권의 생산량 비중보다 인구 비중이 더 높은 상황이 나타났다.

이처럼 수도권의 생산성이 비수도권 생산성보다 낮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으로, 수도권 인구 유입이 시장에서의 경제적 생산성이 아닌 다른 외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연구원은 이 외적요인을 ‘정부가 주는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집중은 1970년 중반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도권 규제정책이 실시됐다. 그러나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개최 등으로 수도권 규제가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 여기에 1998년 IMF 외환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추진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을 계기로 대폭적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가 이뤄진다.

당시 정부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수도권내 공장 신·증설 시 취득세와 등록세의 중과규정을 완화하고, 수도권 지역을 조세감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어 수도권 성장관리권역 내 외국인투자기업이 설립하는 20개 첨단업종에 대해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고, 국제회의 전문시설을 인구집중유발시설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한편, 과밀부담금을 면제했다.

또 2004년에는 ‘평택지원특별법’을 제정해 61개 업종의 외국인투자에 대해 신·증설을 허용하고, 관리지역 내 공장설립면적 1만㎡ 제한규모를 폐지했다. 2006년엔 사전환경성, 재해영향성 검토 절차의 면제를 포함해 농지전용확대와 개발부담금 감면 등 각종 규제의 예외적 특례를 적용한 ‘공장입지유도지구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2008년 들어서 이명박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토이용의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수도권 규제를 대폭 해제했다. 박근혜정부 역시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활성화를 내세워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국가경쟁력과 ‘무관’

이 같은 정부의 각종 혜택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은 아주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세계 광역권 도시 현황’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도권의 2014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소득은 일본 및 대만의 주요도시뿐 아니라 중국의 쑤저우, 우시 등의 도시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수도권을 집중발전시켜 타 지역으로의 시너지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정부·재계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인 셈이다.

또 수도권 규제 완화의 주요 논리 중 하나인 수도권 공장 증설을 막으면 투자가 중국 등 주변국가로 옮겨갈 뿐 수도권 억제로 인한 기업의 지방이전 효과는 없으며, 국가 전체적으로 오히려 손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고영구 극동대 교수(도시환경계획학과)에 따르면 80년대 후반과 95년 수도권 억제 정책이 상대적으로 강력했던 시기, 제조업체 수도권 비중은 58.1%에서 55.6%로 감소한 반면 충남·충북과 강원도 등 수도권 인근 지역의 비중은 6.9%에서 10.1%로 크게 늘었다. 제조업 종사자 수도 수도권은 47.8%에서 46.7%로 줄었으며, 비수도권은 7.9%에서 10.3%로 대폭 증가했다. 생산액도 수도권은 43.4%에서 41.5%로 감소했지만 다른 지역은 8.3%에서 10.9%로 상승해 수도권 억제 정책이 기업의 지방이전에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이고 일관된 지역육성 정책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내수시장의 총량이 커지고 질도 향상돼야 지금의 경기 침체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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