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呪術(주술)에 빠진 대선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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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7   |  발행일 2021-10-07 제22면   |  수정 2021-10-07 07:15
군주 될 운·관상 따로 있을까
'王'자 손바닥 표기 기상천외
허접한 해명이 논란 더 키워
AI시대 주술·무속은 퇴행적
무당층 향배가 승패의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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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수나라가 건립되기 전 위진남북조시대는 분열과 혼돈의 난장(亂場)이었다. 45개 왕조 235명의 군주가 명멸했다. 한족은 물론 선비족, 강족, 흉노족 등 이민족까지 저마다 왕조를 세워 할거했다. 수왕조는 2대 단명으로 끝났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대륙 통일시대가 열렸다. 마이클 하트의 저서 '세계사를 바꾼 사람들:랭킹 100'에서 수문제는 마오쩌둥보다 앞선 82위에 올랐다. 하트는 오랫동안 분열된 중국 문명권을 통일한 업적을 높이 샀다고 술회했다.

수문제 양견의 아버지 양충은 북주의 개국공신이었다. 양견은 부친의 후광으로 일찌감치 표기장군 지위에 올랐고, 딸이 북주 황후가 되면서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황제 선제는 양견의 명망과 위세에 황실이 위협받을 것을 염려해 점술가에게 장인의 관상을 보게 했다. "장군감이지 군주 관상은 아니다"란 말을 듣고 선제는 안도한다. 하지만 양견은 선제 병사 후 어린 정제가 즉위하자 황위를 찬탈한다.

왕이 될 운이나 관상이 따로 있을까. 윤석열 대선 후보의 '손바닥 王자' 파동은 단순한 해프닝일까. 윤 캠프 말대로 지지자들이 적어준 응원 메시지에 불과한 걸까. 그렇다 치더라도 오락가락 해명, 허접한 해명은 괜한 의혹과 미심쩍음을 유발한다. 처음엔 "'王'자를 지우려 했지만 알코올이 들어간 세정제로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5차 토론회 외에 3·4차 토론회에서도 '王'자 손바닥이 확인되면서 말을 바꿨다. 동네 할머니들이 매번 적어준 거라고. 한데 여섯 차례의 국민의힘 2차 경선 토론은 방송사가 다 다르고 토론시작 시간도 들쭉날쭉이다. 할머니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정확히 알고 기다렸을까. 더욱이 4차 토론회는 밤 11시에 열렸다. 밤늦은 시각에 할머니들이 나와 '王'자를 써준다? 상식으론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매직펜으로 쓴 글자는 손 소독제로 다 지워진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민주당이 가만있을 리 없다. "무속을 대선으로 끌어들인 저질정치, 쯔쯔쯔"(홍준표 후보). "부적을 붙이든 굿을 하든 자유지만 국민을 속이려 해선 안 돼"(유승민 캠프). "차라리 '王'자 복근을 만들어라"(정청래 의원). 5일 열린 6차 토론에서도 역술인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주술 논쟁이 이어졌다.

주술(呪術)의 사전적 의미는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론 주술이란 말이 훨씬 광범위하게 쓰인다. 이를테면 '운칠기삼' 맹신이나 진영논리 집착증, 지나친 확증편향도 일종의 주술이다. 주술 파문은 윤석열 후보의 '王'자 토론회에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장동 게이트'든 '고발 사주'든 진상이 속 시원히 까발려지긴 어렵다. 특검 역시 만능이 아니다. BBK 부실 특검의 기억도 있지 않나. 설사 수사를 통해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 사주' 흑역사가 밝혀진다 해도 이재명·윤석열 '덕후'들이 쉽게 지지를 철회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 진영을 향해 주술을 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래저래 대선이 주술에 빠진다는 얘기다. 결국 대선 승패의 관건은 중도층·무당층 향배다.

인공지능(AI)·메타버스 시대에 주술과 무속이 어른거리는 선거는 격에 맞지 않다. 매우 퇴행적이다. 주술과 미신을 한 방에 날릴 철언(哲言)이 있긴 하다. "최고의 운(運)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운이다." 세계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영원한 노병 맥아더의 아포리즘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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