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察眉堂(찰미당)' 이야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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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7   |  발행일 2021-10-27 제26면   |  수정 2021-10-27 07:33
백성들 눈썹 찌푸린 이유
잘 살펴 문제 해결해주려는
마음 담은 '찰미당' 현판
찰미 실천하는 고위공직자
이어져야 진정한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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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지난 17일 일요일 경북 안동을 다녀왔다. 고서와 고서화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안동선비문화박물관(사립박물관)과 광흥사(廣興寺)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둘러봤다. 광흥사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나온 사찰이다. 이날 날씨가 정말 좋았다.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을 한참 보다가 '명경지공(明鏡止空)'이라는 말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날씨라도 이렇게 좋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2월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면서 답답한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심각한 청년 일자리 문제, 빈부격차 심화, 인구절벽 문제 등을 생각하면 더욱 갑갑해진다. 이런 가운데 요즘 눈길이 가게 되는 대선 주자들의 언행에서라도 '쾌청한 하늘'을 보아 희망을 기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답답함이 더할 뿐이다.

'생사당(生祠堂)'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주인공인 사당으로, 옛날에 선정을 베푼 수령이나 감사를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했다.

청백리 중 한 사람으로 허백당(虛白堂) 김양진(1467~1535)이란 인물이 있다. 40년간 관직 생활을 하면서 청백과 애민의 자세로 일관한 그는 자신의 봉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도울 정도로 민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백성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앞세웠다. 그가 1520년에는 전라감사로 완산(전주)에 부임했다. 이듬해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자 그를 전송하는 주민들이 탄 수레와 말이 수백 미터나 이어졌다. 눈물을 뿌리며 계속 따라오는 그들을 타일러 보내느라 큰 애를 먹어야 했다. 그중 노복이 되기를 자원하며 따라온 30여 명은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고 결국 안동까지 따라와 노복으로 함께 살았다. 완산 주민들은 이런 허백당이 완산을 떠난 후 생사당을 지어 그 덕을 기렸다.

경북 봉화가 고향인 학사(鶴沙) 김응조(1587~1667)라는 선비는 인조반정, 병자호란 등 심각한 내우외환의 혼란기에 관직 생활과 은거를 반복하며 모범적 지식인의 삶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도 내직에 있을 때나 외직에 있을 때나 항상 더 나은 백성의 삶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가 외직으로 나가 다섯 지역을 다스렸는데, 다섯 곳 모두에 선정비가 세워졌다.

그의 애민정신은 인동(仁同)부사 시절 집무를 보던 관사의 이름을 '찰미당(察眉堂)'이라고 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관청을 찾는 백성들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 이유를 잘 살피고 문제를 해결해 그들 눈썹을 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후임 목민관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다.

예전에는 이런 목민관들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찰미'의 자세로 애민을 실천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찰미가 아니라 심하게 찌푸린 눈썹이 분명히 보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대장동 의혹 사건을 비롯해 서민들이 분통으로 눈썹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찰미'를 실천하는 공직자들이 많아지고, 생사당을 지어주고 싶은 고위공직자가 이어져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선거들을 앞두고 있다. 선거에 임하는 국민 개개인이 가을하늘처럼 맑은 마음으로 객관적 판단을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함을 새삼 절감하는 요즘이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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