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여름별미 '냉면'(2) 반세기 넘게 사랑받는 '대구 4대 냉면집' vs 새로운 맛으로 도전 '신흥 냉면 강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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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7   |  발행일 2022-05-27 제34면   |  수정 2022-05-27 08:54
비빔밥 전문 개정식당이 개발한 냉면.
동구 신천동에 등장했던 '반야월 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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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전문 개정식당이 개발한 냉면

◆평양냉면의 등장

평양냉면은 1915년께 미국 시카고 인근에 첫선을 보였으며 이는 서울보다 5년 빨리 등장했다는 사실이 문헌으로 처음 밝혀졌다. 도산이 1925년 시카고 한인들을 모아놓고 '10년 전 이곳을 지나갈 때에 장씨에게서 냉면을 대접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와보니 참 반갑습니다'라고 언급한 내용의 연설문이 최근 발견된 것이다.

평양냉면은 평양이 근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19세기 말에 접어들어 전문식당에서 팔기 시작했다. 1910년대에 평양 대동문 앞에는 2층으로 된 냉면집이 있었고, 1920년대 들어 평양 시내 수십 곳에 냉면집들이 속속 생기면서 냉면집 주인들은 평양면옥상조합을 설립했다. 이 평양냉면이 서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알려졌다. 이때 문을 연 냉면집은 낙원동의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그리고 돈의동의 '동양루'가 전문점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로 미루어 냉면은 서울보다 시카고 등 미 중서부에서 먼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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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계식으로 면을 뽑지만 예전에는 목조 국수틀을 사용했다.


소설가 김랑운은 1926년 잡지 '동광(東光)' 8집에 소설 '냉면'을 발표했다. 세계 경제 공황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신문 기자인 순호가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8월 줄어든 월급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하다 종로 근처에서 돼지편육과 채를 썬 배, 그리고 노란 겨자가 수북이 얹힌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과정을 묘사했다. 1930년대 들어 냉면은 배달 음식으로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당시 유기그릇에 담긴 냉면 값은 15전이었다. 배달부에게 별도로 10전의 수고비를 얹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미루어 평양냉면은 평양면옥상조합이 설립된 1915년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 이미 시카고에 진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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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신천동에 등장했던 '반야월 밀면'.

1896년 작자 미상의 '규곤요람'에도 '냉면법'이 나온다. '밋밋한 맛이 나는 간이 덜 된 무김치 국에 메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잘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배와 밤, 그리고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은 후 잣을 넣어 먹는다'라고 나온다.

1919년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경북 상주의 군수직을 임했던 심환진이 필사한 '시의전서(是議全書)'의 상편 주식류의 면편에서 냉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나박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양지머리·배·배추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잣을 올려 먹는다'라고 기록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고기 뼈를 우려내거나 고기를 우려낸 장국을 차게 하여 국수를 말아먹기도 한다'는 기록도 병기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재료가 다르다. 북한 음식사전에는 '함흥냉면'이란 용어도 없다. 함흥냉면은 '농마(녹말)면'이라 해서 감자 전분으로만 만든 질긴 면인 반면 평양냉면은 점착력이 부족해 잘 끊어질 수밖에 없는 메밀로만 만든다. 북한산 메밀에 비해 남쪽 메밀은 점착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밀가루를 섞어 탄력도를 높였다. 참고로 전분의 경우 북한은 감자, 남한은 고구마 전분에 무게 중심을 둔다. 가격은 감자전분이 더 비싸다.

1920년대 서울 진출한 평양냉면
감자전분 사용해 질긴 함흥냉면
메밀·고구마 전분 강원도 막국수
지역별 고기·과일·동치미 육수
전분에 밀가루 섞은 부산 밀면
평양식 온면같은 의령 메밀소바

대구 강산·대동면옥·대동강 등
1950·60년대 창업 후 전통 지켜


냉면배달부
일제강점기 냉면 배달부는 요즘 택배기사처럼 나름 바쁜 직종이었다.

◆팔도의 별별 냉면들

강원도 막국수도 냉면의 한 종류인데 거기는 대구와 달리 메밀 함유량이 높다. 메밀과 고구마 전분 혼합률이 7대 3 정도가 된다. 강원도 막국수도 문파가 있다. 춘천막국수, 봉평막국수, 원주막국수, 양양막국수. 차이는 뭘까? 춘천은 고기 육수, 봉평은 과일육수, 원주는 메밀껍질째 갈아 넷 중 가장 거무튀튀한 빛을 발한다. 그리고 양양은 동치미육수가 특징이라 일명 '동치미막국수'라 불린다.

강원도 막국수는 소면처럼 뚝뚝 잘 끊어지지만 대구는 반대로 메밀보다 전분을 더 많이 섞어 가위로 잘라야 할 정도로 질긴 게 특징이다. 강원도와 대구의 냉면은 그 질김 정도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대구의 냉면집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위를 내준다. '잘라 먹어'란 의미다.

부산의 밀면도 한국 냉면의 새로운 이정표라 할 수 있다. 부산 우암동 내호냉면이 퍼트린 이 밀면은 '밀가루냉면'의 준말이다. 전분에 밀가루를 섞은 것이다. 메밀가루가 없는 게 특징이다.

의령에 가면 '메밀소바'를 맛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일본식 잔치국수' '의령식 냉면' '의령식 막국수'로 부르기도 한다. 언뜻 보면 밥에 장국을 붓고 찢은 닭가슴살, 달걀지단, 빈대떡 등을 올린 '평양온반' 같다. 이 소바는 일본의 전통 메밀국수. 광복 이후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기술 전수자는 부림면 신반마을 어느 할매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할매의 레시피가 현재 의령소바의 전신인 셈. 의령소바는 일본 스타일과 많이 다르다. 면을 쓰유에 적셔 먹지 않고 삶아낸 면에 멸치로 우려낸 뜨거운 국물과 각종 고명을 얹은 것이다. '장터 잔치국수 스타일'이다. 의령전통시장에 3인방 소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맏형 격인 '다시식당'과 둘째 격인 '화정소바'는 '본방사수'다. 화정소바 바로 옆에 있는 '의령메밀소바'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해 자기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맛의 전통은 '다시식당'과 '화정소바'에 더 실린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제주도다. 고기국수는 보편적인 반면 그렇게 메밀 재배 면적이 광대한데도 '빙떡'은 잘해 먹으면서도 냉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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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25전쟁 중 피격된 서울의 한 건물에 냉면 간판이 선연하게 다가선다.

◆대구냉면 4인방

1951년 창업한 중구 교동의 '강산면옥'과 중구 계산동의 '대동면옥'(최근 재개발로 인해 한옥을 지어 근처로 본점 이전), 1953년 부산에서 창업한 뒤 1969년 대구로 이전한 중구 공평동의 '부산 안면옥' 주인은 모두 평양 출신이다. 이와함께 1965년에 창업한 남구 봉덕동의 '대동강'을 합쳐 '대구 4대 냉면집'이라고 한다. 북한식 평양냉면에 가장 가까운 건 대동강, 북에서 피란 온 실향민의 입맛에 잘 맞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은 풍기 '서부냉면'이 좌장격.

새로운 냉면 강자가 대구 도심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수성구 대우트럼프월드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삼교리 동치미막국수'는 강원도식 냉면, 그리고 '속초코다리냉면', '온채당', '제형면옥', '교동면옥', 대명동 수미담 진주냉면, 반야월 냉면, 박군자 진주냉면 등이 도전장을 냈다. 다음 회에는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진주냉면'의 실체를 밝혀볼 작정이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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