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정치판의 언어유희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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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5 06:46  |  수정 2023-01-05 06:48  |  발행일 2023-01-05 제22면
'읽씹' 등 유행어 대세 '축약'
'yuji' 뉴 콩글리시도 등장
'정치 트로이 목마' '민포대'
'앙증맞은 몸' 말장난 난무
조롱보단 신박한 패러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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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언어는 진화한다. 유행어도 시대적 조류에 따라 진화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대세는 '축약'이다. '진짜'는 '찐'이 되고 '짝퉁'은 '짭'으로 압축됐다. 절친보다 더 친한 친구는 '찐친'이다. '진짜 상놈'이 '진상'으로 통용되며 '진상'은 신생아 작명 기피 1순위가 되고 말았다. SNS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읽씹' '빛삭' '최애' '열폭' '영끌'도 다 축약어다. 접두사 '개'의 통상적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개꿀'도 재미있는 신조어다. 택시기사들의 은어(隱語)였던 '꽐라'는 어엿이 드라마 대사로 나온다. 원래는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지칭했지만 이젠 만취 남녀를 통칭한다. 김건희 여사의 논문 '멤버 yuji'를 패러디한 뉴 콩글리시도 등장했다. 총재를 chong-jae라고 하는 식이다.

경제 쪽의 신조어도 이채롭다. '떡상' '떡락'은 가격 등락의 상·하한이 없는 가상화폐의 폭등과 폭락을 은유한 말이다. '떡'은 여성을 비하하는 은어이면서 접두사로 쓰일 땐 '몹시'란 뜻을 지닌다. '떡실신'이 그런 경우다. 주식시장에서 '사물놀이' 장세는 횡보 장세를 지칭한다. 사면 물리고 놀면 이긴다는 뜻이다. 부지런한 자는 망하고 게으른 자는 승리한다는 '부망게승'의 함의도 비슷하다.

말이 곧 정치인 정치판에 어찌 언어유희가 없으랴.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과 장제원 의원의 '김장연대'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는 "비만 새우가 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조무래기"라며 평가절하했다. 이 전 대표는 이전에도 '용피셜(용산+뇌피셜)', '윤핵관 호소인' 같은 풍자의 언어를 곧잘 구사했다. 권성동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 비판을 주저 않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민주당의 정치적 트로이 목마"라고 직격했다.

김남국 의원은 민주당 출신의 양향자 의원이 자주 민주당을 비판하자 "전향자로 성을 바꿔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더불어 M번방' '더듬어 민주당'은 야권의 잇단 성 추문을 빗댄 여권의 조어다. 여권에서 무속 논란이 불거진 땐 민주당이 '굿힘당'이라고 조롱했다. 권은희 의원은 지난해 8월 본인을 징계하려는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를 "윤리참칭위원회"라고 저격했다. '주윤발 무야홍'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홍준표 후보 캠프에서 띄운 문구다. 낮에는 윤석열을 지지하다 발을 빼고 무조건 밤에는 홍준표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자주 언어유희의 과녁이 된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생·민심·민주주의를 포기한 대통령 '민포대'"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했다. SNS엔 '윤'을 뒤집은 'ㄱㅛㅇ정'이란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윤 대통령의 브랜드인 '공정'이 사실은 공정하지 않다는 의미다. 용산 대통령실을 '용궁', 윤 대통령을 '용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태극기 휘바이든'이란 패러디는 '바이든-날리면' 파동의 산물이다.

정치인에겐 말이 무기다. 적절한 비유와 풍자는 정적을 압박하고 촌철살인의 패러디엔 지지자들이 열광한다. 하지만 풍자와 조롱의 경계는 애매하다. 민주당은 2018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뒤처리하는 비데위원장으로 희화화하며 조롱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해 2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SNS에 'ㄹㅇㅋㅋ'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여야 모두 "지나쳤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전 국회의장에게 "앙증맞은 몸"이라며 왜소한 체격을 비하했다. 참 앙증맞은 말장난이다. 여경의 어설픈 현장 대응을 빗댄 '오또케'도 혐오의 언어다. 정치판이든 어디든 유희적 언어는 필요하다. 다만 신박한 풍자와 맛깔스러운 해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조롱과 막말은 나쁜 언어유희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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