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선조, 인조, 이승만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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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6 06:54  |  수정 2023-04-06 06:55  |  발행일 2023-04-06 제22면
권력욕·의심증·용렬 공통점
전란 때 도망친 것도 닮은꼴
젤렌스키는 망명 거부 督戰
李 사사오입 개헌 등 過 많아
기념관 건립 국민동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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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선조와 인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통점은 뭘까. 외침을 막지 못해 백성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도탄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권력욕이 강하고 의심증이 많으며 도량이 좁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전란이 발발했을 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패륜도 데칼코마니다.

#23전23승. 이순신 장군의 경이적인 전적이다. 불패신화의 비책은 선승구전(先勝求戰). 손자병법의 백미다.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싸운다는 뜻으로, 지는 전쟁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하지만 이순신은 세 번 파직 당하고 두 번 백의종군하는 고초를 겪는다. 선조의 용렬함과 무능의 파편이 튄 것이다. 이순신 사후에도 선조는 장군을 평가절하했다. 선조는 1601년 왜란 중 활약했던 공신들을 선정하면서 이순신을 원훈(元勳·으뜸 공신)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나라가 보전된 것은 명군(明軍) 덕분이라며 딴죽을 걸었다. 앞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해 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으며 여차하면 요동으로 망명할 심산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여 년 후 조선은 다시 외세의 노략질과 만행으로 피폐해진다. 역사는 병자호란을 가장 굴욕적인 전쟁으로 기록한다.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인조는 삼전도로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 의식을 치른다. 소현세자, 척화파 관리와 많은 백성이 볼모로 청나라로 끌려갔다. 전쟁 통에 죽거나 다친 장정, 아사(餓死)한 아이, 오랑캐에 능욕당한 아낙네가 부지기수였다.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광해군의 균형외교를 팽개친 채 기울어가는 명의 썩은 동아줄만 잡은 인조의 아집과 무능이 부른 재화(災禍)였다. 인조에겐 선승구전의 지략이 없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러시아군 선발대에 내려진 1호 지령이 '젤렌스키 제거'였다. 객관적 전력은 러시아의 압도적 우위. 사흘이면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거란 섣부른 예측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 내각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안전이 경각에 달한 상황. 미국이 젤렌스키에게 망명을 제안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끝까지 조국을 사수하겠다며 국민을 독전했다. 미국엔 망명처 제공보다 무기를 달라고 했다. 이승만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썩소'를 날리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까.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공을 인정하더라도 과가 너무 많다. 3·15 부정선거와 독재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침탈했으며, 반민특위 와해 공작으로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적 소명을 배임했다. 장기집권을 위한 1954년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은 희대의 블랙 코미디였다. 한 표 차로 부결된 개헌안을 반올림이란 신박한 아이디어로 불법 가결해 치욕의 헌정사를 남겼다. 정치깡패의 득세, 백주의 테러, 김구 암살 배후…. 이승만 정권의 폭력과 흑역사를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

#윤석열 정부가 이승만 기념관을 본격 추진할 모양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공칠과삼'이 아니라 '공팔과이'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공팔과이? 정녕 공과(功過)의 뜻을 모르나. 아니면 반대로 해석한 건가. 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다는데 부정적 측면도 함께 톺아봐야 공평하지 않겠나. 이참에 선조와 인조가 묘호(廟號)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따져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반드시 국민동의를 얻는 게 좋겠다. 4·19 정신의 모욕일지 모르니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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