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검증단 아닌 시찰단이라고?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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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8 06:53  |  수정 2023-05-18 06:53  |  발행일 2023-05-18 제22면
조사·검증 못 하는 시찰 한계
일본, 단순한 '참관' 선 긋기
試料 없이 안전성 확인 불가
오염수 7월 방류 의향 확고
"과학적 처리" 주장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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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과거 경제부 기자 시절 기업 CEO들과 함께 소련과 동유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이들 나라는 한국과는 미수교국. 당연히 관광 목적의 입국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산업시찰단이란 명분으로 거침없이 동유럽을 누볐다. 소련의 섬유업체 등 산업시설을 둘러보긴 했어도 대부분 일정은 관광으로 채워졌다. 이를테면 산업시찰은 구색 맞추기였다. 시찰단이란 게 대개 그런 거다.

정부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오염수 시찰단이 오는 23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등을 방문한다는데 시찰단이란 명칭부터 마뜩잖다. 시찰은 글자 그대로 '두루 돌아다니며 실지(實地)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다. 깊이 있는 조사나 검증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깔려있다. 니시무라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 시찰단의 성격을 명확히 정의했다. "안전성에 대한 평가나 확인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참관'에 한정하겠다는 선 긋기다. 철저한 안전성 검증을 바라는 국내 여론과는 괴리가 크다.

정부는 "현장의 안전성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확인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료 채취 없이 안전성 확인이 가능하겠나. 일본은 시료 채취는커녕 관련 정보도 주지 않을 태세다. 무엇보다 일본은 7월로 예정된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국에 이해를 구하거나 공동 조사할 의향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일본이 기어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투명한 정보 공개, 완전한 안전성 검증,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동의다. 하지만 일본의 행태는 이들 조건에 부합하는 게 하나도 없다. 이런 계제에 검증단도 아닌 시찰단을 파견하겠다고? 들러리 서줄 일 있나. 어쩌면 일본은 "한국 시찰단이 안전성을 확인하고 갔다"며 왜곡할지 모른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말마따나 '면죄부 시찰단'이 아니라 '국민 검증단'을 보내야 한다.

일본은 오염수의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안전을 확신한다면 왜 주변국의 공동조사 제안을 거부하나. 켕기는 구석이 있나. 심지어 일본 국민의 52%가 해양 방류를 반대한다.

정부가 오염수의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때맞춰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오염 처리수'라고 쓰는 게 맞는다"며 거들었다. 여당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TF' 위원장의 일본 정부 코드 맞추기가 눈물겹다.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는 줄곧 처리수로 표현해 왔다. 삼중수소와 방사성 탄소는 알프스 처리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세슘과 스트론튬, 아메리슘은 극소량만으로도 인체 피폭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처리수라는 순화어를 쓰지 못해 안달한다. 중국과 북한의 공식 용어는 '핵 오염수'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과거사와는 또 다른 현실의 문제다. 정부는 철저한 검증과 공동조사를 일본에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오염수는 물론 후쿠시마 인근의 해수, 어패류, 해조류, 퇴적물을 채취해 방사선량을 정밀 측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로선 '미션 임파서블'이다. 일본 정부가 시료 채취를 막고 있어서다. 과학적 안전을 주장하며 공동검증은 거부하는 야누스 일본의 속내가 아리송하다. SNS에 올라온 돌직구 한 줄이 뇌리에 꽂힌다. '물컵의 나머지 반을 오염수로 채우겠다는 건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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