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미신에 빠진 청년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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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2 06:44  |  수정 2023-12-22 07:00  |  발행일 2023-12-22 제26면

사주를 보러 갔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니 꽤 오래됐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은 쌓아야 하는데 진로는 명확히 정하지 못했다. 평소 점술을 믿진 않았지만 내 앞날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철학관에 들어섰다. 나이 든 선생이 앉아 있었다. 선생은 생년월일을 묻더니 종이에 받아적곤 알 수 없는 한자들이 적힌 책을 들여다봤다. 그는 내가 "공직에서 일할 팔자"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내 삶은 선생의 대답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정치학을 공부했다. 전공 특성상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흥미를 느꼈다. 글을 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기자가 떠올랐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했다. 기자가 됐다. 현재 업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공직에서 일할 거란 선생의 예언은 빗나간 셈이다.

사주는 민간에서 유행하던 점술이다. 태어난 생년월일과 시간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태어난 시간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입증된 결과가 없다. 즉, 사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미신에 불과하다. 기자의 경우만 봐도 사주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많은 청년이 철학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알바천국이 지난해 10~30대 1천6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0%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새해가 다가오면서 사주를 보는 이들이 더욱 늘어난 분위기다. 동성로를 걷다 보면 '사주·타로·운세' 문구가 적힌 가게들 앞에 젊은 여성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젊은 세대가 사주를 보는 이유 대부분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취업난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요즘 사주를 보러 가는 청년들 중에는 원서를 낼 기업 명단까지 추려가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여러 기업 중 합격 가능성이 높은 곳을 듣기 위해서다. 취업이 어렵고 이들이 처한 현실이 암울하다 보니 사주에까지 기대 불안을 떨치는 것이다. 근본적인 취업 시장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효성 있는 청년 관련 정책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먹고살기 팍팍한 시대다. 취업난으로 미신에 의지하는 청년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청년 일자리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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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뉴스팀 조현희 기자입니다. '요즘 것들'의 시선에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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