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상상의 지평

  • 김채윤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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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4 08:32  |  수정 2024-03-04 08:34  |  발행일 2024-03-0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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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윤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 담당)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작품들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곳은 저마다의 사연과 영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비록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한정적 공간에서의 활동이라 할지라도 사유함에 있어 제한된 경계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이렇듯 상상의 지평 저 너머로 우리를 이끄는 창조와 예술의 힘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전시기획팀의 하루는 언제나 전시실 오픈을 준비하며 시작된다.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빌려 정성껏 준비된 공간을 개방하며 느끼는 설렘은 늘 어제의 묵은 감정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전시가 끝난 후 작품을 철수하고 나면 이제 전시실은 단순히 비어버린 공간이 아니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러한 순환의 원리는 우리의 삶 속에 늘 작용하고 있다.

비워내면 채워질 수 있다. 이 단순한 순환의 원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를 용량의 한계가 존재하는 저장매체라 생각해 보았을 때 저장되는 정보는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입력될 수 있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수도 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즉 삶의 어떤 부분에서 마주했던 경험이나 우연히 접했던 어떤 자극이 그 성질과 무관하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장되어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렇게 입력된 정보가 저장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와 같은 후유장애를 유발한다면 우리는 그 정보를 삭제하거나 새로운 정보로 대체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기능적 측면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을 접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향유의 경험으로 인식되며 나의 내면과는 다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과 교류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장하게 한다. 또한 사상과 감정이 농축되고 승화된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내면의 균형을 회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입력된 정보는 우리 내면의 저장 공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정보들과 융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재생산해내며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의식적 감상이 아닌 일상 속 경험으로 공공재인 예술을 접하고 내면을 채우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어쩌면 전시를 관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문화산책' 게재 기회를 통해 다양한 전시 사업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필자가 느끼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채윤<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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