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순의 정신세계 이야기] 오랑캐꽃과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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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0 07:56  |  수정 2013-12-10 09:46  |  발행일 2013-12-10 제20면
20131210

나는 오랑캐꽃을 싫어했다. 아니, 나는 오랑캐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고 싫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랑캐’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분명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머리에 뿔나고 손에 몽둥이 든 시커먼 그림자 같은 오랑캐, 그 단어가 너무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너무 놀랐다. 오랑캐꽃이 바로 제비꽃이란 사실을 알고는.

이럴 수가. 4월에 우리 들녘 지천에서 피는 그 제비꽃이 오랑캐꽃이었다니. 너무 미안했다, 제비꽃에게, 잘못 알고 있었던 그 오랑캐꽃에게.

제비꽃이 오랑캐꽃이라 불린 사연을 옛 시인의 해설을 인용하면서 그동안의 오해가 죄 닦음 되기를…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먼 조상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 있다. 정신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이 되고 해괴망측한 행동과 이상한 말을 한다. 또 기이하고 괴상한 외모에, 매우 엉뚱한 감정을 나타내며, 때로는 무서운 공격을 할 것 같은 그런 병에 어울릴 듯한 이름이 바로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다. 너무나 무서운 오해다.

사실 정신분열증은 그런 병이 아니다. 그것이 제비꽃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오랑캐꽃을 싫어했듯이, 정신분열증은 그런 병이 아님에도 그럴 것이라 여기고 쉬쉬하며 불러왔다.

사람의 마음 중 생각하는 기능에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 병을 학술적으로는 정신분열증이라 불러 왔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망상, 남과 다른 느낌을 가지는 환각, 혼란스러운 생각, 혹은 눈에 띄지 않는 음성증상까지 정신분열증은 다양한 증상을 가진 병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정신분열증은 드물다. 우리는 그동안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면서, 이 모든 증상을 다 가진 것뿐만 아니라 없는 증상까지 덧붙여진 그런 병을 상상하고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현악기의 줄이 조율이 덜 된 상태로 느슨하게 되어 있다면, 아름답고 적절한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 악기가 아름답고 정확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조율을 해야 한다. 이런 조율이 필요한 상태를 조현(調絃)이라 부른다. 사람의 마음을 악기로 비유 한다면 이렇게 조율이 필요한 현악기처럼, 마음의 한 부분이 병이 나서 조율이 필요한 병이라는 의미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

이제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은 없다. 대신 조현병이란 말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동안 오랑캐꽃이라 불렸던 제비꽃처럼,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 부르며, 그 병에 대한 나쁜 오해와 잘못 알고 있던 편견이 바로잡히기를 기대해 본다.

<곽호순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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