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노아·벨과 세바스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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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21   |  발행일 2014-03-21 제42면   |  수정 2014-03-21

노아 (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성서 얘기 살짝 비틀어 거대한 블록버스터로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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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조물들을 세상에서 없애려 한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 온갖 생물 한 쌍씩을 데리고 들어가 살아 남게 하여라.”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方舟)’는 타락한 인간 세상을 파멸시키고 새로 시작하려는 창조주의 결심을 노아라는 인물을 통해 구체화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종교를 떠나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3살에 노아에 대한 시를 써서 상을 받았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에게 노아 이야기는 좀 더 특별했다. 성경에 몇 단락으로 기술되어 있는 에피소드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웅장하고 거대한 대서사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여기에 더해진 무한한 상상력은 매혹적인 스토리들로 넘쳐나는 블록버스터의 토대가 됐다. 모두가 원했지만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성서 속 영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21세기에 재창조됐다.

‘노아’는 세상을 삼켜 버린 대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창조주의 구원을 받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압축된다. 므두셀라(안소니 홉킨스)의 손자인 노아(러셀 크로우)는 아내(제니퍼 코넬리)와 세 명의 아들, 셈·함·야벳이 있다. 셈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온 일라(엠마 왓슨)와 연인 사이다. 이들은 노아와 함께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대한 방주를 짓기 시작한다. 방주에 탈 수 있는 이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암수 한 쌍과 노아의 가족뿐이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되자 세상은 온통 물바다가 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렸고, 물은 땅 위에서 150일 동안 불어났다’고 묘사돼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영화는 인류 최초의 종말을 맞아 노아 가족이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에 주목한다. 그 중심에 현재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가족 간의 갈등과 불신, 화해와 사랑이라는 가족 드라마가 위치해 있다. ‘노아’를 “성경이야기가 아닌, 새롭고 흥미로운 서사물”이라고 말한 대런 에로노프스키 감독의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때문에 ‘노아’는 창조주와의 교감을 통한 종교적 접근보다는 스스로의 판단과 논리를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그의 특별한 여정에 방점이 찍힌다. 이는 선택된 인간으로서의 성스럽고 축복된 모습보다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갈등을 마주한 세속인의 그것이다.

영화는 노아의 방주라는 설정만 제외하면 성서와는 확연히 다른 감독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단 노아는 러셀 크로우를 캐스팅하면서 희고 긴 수염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아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닌 전사에 가깝게 그려졌다. 방주에 함께 탈 구성원 역시 성서에는 노아의 다섯 가족과 아들 셋의 짝이 될 여자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영화에선 셈 커플만 탑승한다. 이는 중반 이후 가족 갈등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노아가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행동이나 종말론적인 정서는 세상의 생명들을 구한 성서의 이야기와 크게 배치된다.

대런 에로노프스키 감독의 연출력은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놀라운 통찰력에서 빛을 발해왔다. ‘더 레슬러’ ‘블랙스완’ 등을 통해 이미 인정받았듯 이번에도 인간의 선과 악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며 다시 한 번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한다. 이는 아들 함과의 갈등에서 주로 표출된다. 함은 노아에 대한 불만이 크다. 형과 달리 짝이 없던 함은 대홍수가 오기 직전 어렵게 상대를 찾았지만, 노아의 외면으로 그녀가 죽게 되자 아버지를 미워하게 된다. 이후 함은 방주에 몰래 탑승한 악의 수장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의 하수인 노릇까지 한다. 이처럼 창조주의 대리인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아의 번민은 극적 긴장감을 형성하며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물론 ‘노아’는 흥미로운 이야기만큼이나 시각적 볼거리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대홍수의 압도적인 비주얼은 물론, 광활한 대지와 거대한 방주 등은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할 만큼 즐거움을 선사한다.


벨과 세바스찬 (장르:모험 등급:전체 관람가)
알프스서 펼쳐지는 양치기 소년과 떠돌이 개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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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펠릭스 보쉬)은 할아버지(체키 카료)와 함께 알프스 근처 산속 마을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6살 소년이다. 평소처럼 알프스를 누비던 세바스찬은 마을의 양떼를 습격하고 사람을 다치게 만들었다는 떠돌이 개와 마주한다. 하지만 ‘난폭한 짐승’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겁먹은 표정과 선한 눈망울을 가진 개에게 연민을 느낀 세바스찬은 ‘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남몰래 우정을 쌓아간다. 사실 벨은 양떼를 지키는 충실한 양치기 개였지만, 주인의 학대로 도망쳐 알프스 언덕을 떠돌고 있었다. 한편 이 마을을 점령한 독일군은 누군가가 스위스로 도망치려는 유대인들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벨과 세바스찬’은 1965년 동명의 TV 시리즈로 방송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다. 국내에서도 80년대 ‘용감한 죠리’라는 제목으로 방영돼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외로운 소년 세바스찬과 떠돌이 개가 된 벨의 진정한 우정을 담고 있다. 각각의 사연과 외로움을 품고 있는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고, 그 동안 느끼지 못한 우정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광을 무대로 유려하게 펼쳐간다. 그 점에서 대자연의 알프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셈. 아닌게 아니라 벨과 세바스찬이 펼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우정만큼이나 아름답고 동화 같은 자연 풍경은 이야기와 보조를 맞춰 시종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온 들판에 야생 꽃들이 알록달록하게 만연하고, 나무에 빨갛게 낙엽이 지고, 모든 산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의 사계절이 담겨진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다. 니콜라스 배니어 감독은 “계절이 변하는 과정을 색깔의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며 “알프스산 역시 하나의 인물처럼 구성하고 변화의 배경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벨과 세비스찬의 우정에 중심을 두었던 이야기는 차츰 전쟁이라는 현실과 함께 세바스찬의 성장담까지 아우른다. 중반까지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순수하고 따뜻한 감정을 그를 통해 엿볼 수 있다면, 이후 이야기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힘든 용기와 희망이다. 영화의 배경인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기폭제가 된다. 마을의 의사 기욤(디미트리 스토로지)은 남몰래 유대인 가족을 스위스로 탈출시켜왔다. 하지만 그가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세바스찬은 누나와 함께 이 일을 대신하게 된다. 독일군의 눈을 피해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길안내를 맡은 벨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여행에 대해 많은 동경을 해왔던 니콜라스 배니어 감독은 25년 이상 알래스카와 모스크바, 북극해 등을 탐구해온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무려 2천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세바스찬 역에 발탁된 펠릭스 보쉬는 6살 특유의 순수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데, 연기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편견을 가진 어른들로부터 벨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맞서는 용감한 모습과 벨과 함께 알프스를 누비며 놀 때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귀여운 매력까지 유감없이 선보인다. 또 다른 주인공 벨 역의 가필드 역시 100: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천재 연기견이다. 특히 극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 연기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벨과 세바스찬’은 그런 두 주인공의 명품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영화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제대로 어우러진 순수 그 자체의 힐링 무비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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