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맛있는 이야기 .4] 연탄석쇠구이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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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1   |  발행일 2015-12-01 제12면   |  수정 2015-12-01
연탄화로 불기운이 들러붙은 돼지고기는 적당히 훈증돼 제맛 내는데…

◆ 스토리브리핑

연탄과 음식의 만남. 가장 멋진 궁합을 이룬 건 대구가 원조인 ‘연탄석쇠구이’다. 대구는 요리할 때 연탄을 잘 사용한다. 안지랑곱창골목을 비롯해 북성로돼지불고기, 칠성시장 석쇠불고기 등은 물론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 바로 옆 강창식당은 연탄불로 장어를 굽는다. 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구는 ‘구이 불모지’. 수육이 강세였다. 돼지는 고작 수육, 편육 등으로만 먹었다. 쇠고기는 장조림, 산적, 국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한국 불고기의 발상지로 황해도 사리원이 손꼽힌다. 이게 6·25전쟁 때 부산에 상륙해 ‘해운대 불고기’로 안착한다. 가장 대박을 낸 곳은 대구다.


1957년 불고기식당 계산땅집 탄생
수육 강세였던 대구 ‘구이시대’로
연탄석쇠구이 3인방 흐름 이어받아


1957년 대구시 중구 계산동 현재 대동면옥 바로 옆에 초강력 불고기 전문식당이 탄생한다. 바로 ‘계산땅집’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요리를 배우고 귀국한 대구 출신의 박복윤씨가 오픈한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불고기를 팔았다. 이 특수 때문에 강산면옥, 황해집, 남폿집 등 지역의 냉면집도 불고기를 취급한다.

불고기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대구의 불고기는 육수와 채소를 가미한 ‘전골 스타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역전회관은 물기가 없는 ‘바싹 불고기 스타일’, 의성군 중앙시장 내 쇠머리국밥으로 유명한 남선옥은 ‘양념석쇠 스타일’, 전남 담양시 덕인관은 ‘떡갈비 스타일’.

아무튼 계산땅집 특수를 이어받아 종로땅집·북성로땅집이 생긴다. 연이어 대구은행 대신점 근처 삼성갈비, 향촌동 향미, 시청 근처 합승면옥 등이 가세한다. 60~70년대 대구는 불고기천국이었다. 아쉽게도 현재 그 전통을 겨우 지켜가는 곳은 시청 옆 ‘원도매불고기식당’ 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갈비구이와 불고기는 달달한 양념이 생명. 왜간장·설탕·미원의 합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설탕이 가장 강력한 맛을 낸다. 설탕은 53년 6월 등장한다. 대구의 양조간장 본산 격인 삼화간장. 53년 11월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난다. 대구의 갈비문화는 계산땅집보다 4년 늦은 대신동 ‘진갈비’에서 형성된다. 계산땅집과 진갈비를 벤치마킹하고 거기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가미한 것이 ‘동인동찜갈비’다.

역시 좋은 쇠고기는 숯불구이, 돼지는 석쇠구이가 정석. 대구의 돼지불고기문화는 전국 최강의 인프라를 구축한 상태.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수육에서 벗어난다. 한쪽에는 ‘삼겹살’, 다른 한쪽에서는 양념이 들어간 ‘석쇠돼지불고기’가 태어난다. 돼지불고기의 경우 70년대 중반 현재 노보텔 대구 뒤편에서 오픈한 ‘팔군식당’에서 비롯된다. 계산땅집과 쌍벽을 이룬다. 삼겹살보다 저렴한 다릿살에 고추장·고춧가루를 버무려 불고기를 구워 팔았다. 대박이었다. 한때 ‘대구 돼지불고기의 대명사’로 군림한다.

78년 남구 대명동에서 ‘대원돼지숯불갈비집’이 태어난다. 대구의 첫 돼지갈비구이집이다. 그 뒤에 남부정류장 근처의 미정이 ‘한방양념돼지갈비’시대를 연다.

이 흐름을 흡수한 연탄석쇠구이 3인방이 출범한다.


#1. 칠성시장 족발골목의 단골·함남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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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시장 족발 골목에 있는 단골·함남식당 돼지석쇠불고기는 북성로와 달리 즉석에서 초벌구이로만 고기를 구워낸다. 주말에는 모두 3개의 연탄화로를 번갈아 사용해 대량으로 고기를 낼 수 있다.

◇ 칠성시장 단골·함남식당
목살·삼겹·갈비 등 온갖 부위 섞여
한번만 구워 쫄깃하고 향미도 강해

칠성시장에 재밌는 돼지고기 골목이 있다.

LH농협은행 남쪽에 20여 개 업소가 밀집한 ‘족발 골목’. 지역 무속인용 돼지머리도 여기서 다 팔려나간다. 그 골목 안에 북성로 돼지불고기의 형님 격인 연탄석쇠불고기집이 두 곳 있다. 바로 ‘단골식당’과 ‘함남식당’. 단골식당이 선배 격이다.

지난 8월28일 SBS ‘3대천왕’ 첫회 때 단골식당의 ‘석쇠불고기’가 방영됐다. ‘백주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백종원씨가 여기 불고기를 먹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주말 오후 4시쯤 단골식당을 찾았다. 손님이 장사진을 쳤다. 이 식당의 명물은 가게 입구 3개의 연탄화로. 3기통 실린더처럼 쉼 없이 가동된다. 화구별로 아줌마가 붙어서 연신 석쇠를 화로에 내리친다. 기름이 연탄불에 떨어지자 순간 30~60㎝ 불꽃이 인다. 화로 밖으로 기름꽃이 작렬한다. 그 불기운이 석쇠 속 고기에 들러붙어 ‘화근내(탄 냄새)’를 낸다. 와인과 고량주로 만들어내는 불꽃과 맛이 다르다. 적당히 훈증되어야 제맛이 난다. 종일 연탄 6장이 필요하다. 아무리 위생을 강조하는 깔끔파도 족발 골목에 오면 거무튀튀하게 기름범벅된 연탄화로를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60년대 초 친구 간인 유말선·김분선 할매가 동시에 석쇠불고기를 선보였다. 그 집이 잘되자 순식간에 10여 군데로 불어났지만 나중에 두 곳만 남고 다 사라진다. 함남은 식육점으로 출발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대구로 온 김복만 할머니가 꾸려간 식육점을 석쇠불고기로 이어받은 건 이정순 할매, 다시 그 딸 박주영씨한테로 가업이 이어졌다. 형님뻘인 단골식당은 3대를 이어 현재 경북대 외식최고경영자과정을 졸업한 며느리 김지연씨가 꾸려가고 있다.


#2. 북성로 돼지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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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돼지불고기는 돼지 다릿살을 주로 사용하고 초저녁에 초벌구이를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재벌을 해서 상에 낸다.

◇ 북성로 돼지불고기
젊은층 겨냥 기름 적은 다릿살 사용
초벌구이 해뒀다 주문 받으면 재벌

북성로는 ‘공구거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후에 가게가 문을 닫으면 두더지처럼 숨어 있던 포장마차가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여기에 진을 친다. 식당과 가게가 ‘공생’하는 셈이다.

음식 맛도 맛이거니와 연탄불꽃쇼가 식욕을 더 돋운다.

이 골목도 최근 KBS2 ‘다큐 3일’에 소개돼 칠성시장과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준호집을 비롯해 북성로일번지, 부산갈매기, 달맞이, 불타는청춘, 디웅박, 신라의달밤, 태능집, 장작불, 오뚜기, 좋은날, 북성로포장마차 등 모두 13곳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자기 가게가 없는, 다들 부평초 신세다.

옛 전매청 네거리에서 옛 금호호텔 네거리로 가는 서성로에는 서쪽으로 빠지는 골목이 4개가 있다. 세 번째 골목이 바로 북성로 돼지불고기의 탄생지. 정모씨로 알려진 한 포장마차 주인이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근처에서 돼지불고기를 ‘가락국수’와 함께 팔았다. 이게 북성로 불고기 시대의 시작이다. 불고기는 칠성시장 석쇠불고기, 가락국수는 당시 대박을 터뜨렸던 분식점, 동성로 미성당의 가락국수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불과 1년을 못 넘기고 박정만씨에게 바통을 넘긴다. 박씨도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주차장 자리에서 ‘대구은행 앞 돼지불고기’란 상호로 장사를 했다. 박씨도 비명횡사를 한다. 아무튼 그 무렵 6곳이 더 생겨난다. 그곳의 터주 격이었던 원조북성로불고기 최진수 사장도 2007년 뇌출혈로 타계한다. 북성로 불고기 개국공신은 다들 우울한 말로를 맞았다.

북성로의 명물은 의자. 우스꽝스럽게도 1인용 낚시용 의자를 사용했다. 어떤 집은 목욕탕용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기도 했다. 엉덩이를 간신히 걸치고 고개를 숙이고 가락국수를 먹었다. 예전 교통시장통에서 쪼그려 앉아 납작만두를 먹는 모습과 비슷했다. 지금은 정상적인 규격의 플라스틱 의자를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불고기와 우동을 합쳐 1천500원. 단골이었던 심야 택시기사에게는 가격을 덜 받았다. 지금은 한 접시 5천~2만원, 우동은 3천원.

주인이 직접 연탄불에 구워 낸 이유는 뭘까. 숯불은 갈무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음식을 빨리 내기 위해선 연탄석쇠가 제격이었다. 주문하면 3분도 안 돼 고기가 나온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다릿살 대신 갈비를 사용했다. 82년 야간통행금지가 풀리면서 심야 손님이 폭증했다. 갈비를 해선 타산이 맞지 않았다. 빨리 고기를 구워내기 위해 다릿살로 교체한다. 현재 북성로 돼지불고기는 달서구 상인동 등 대구 곳곳으로 확산됐다.


#3. 북성로와 칠성시장 불고기 차이

북성로는 초벌구이를 해뒀다가 주문받으면 재벌구이해서 내보낸다. 북성로는 젊은 단골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기름이 별로 없는 뒷다리(후지)를 사용하게 됐다. 미리 초벌한 탓에 맛이 좀 퍽퍽하다. 칠성시장은 목살, 삼겹살, 갈비 등 돼지의 온갖 부위를 사용하고 석쇠에서 딱 한 번 만에 구워내기 때문에 더 졸깃하고 향미도 강하다. 맛은 칠성시장, 분위기는 물론 북성로가 한 수 위다. 북성로는 가락국수가 축을 이루지만 초창기 칠성시장은 가락국수 대신 공기밥을 냈다.


#4. 마당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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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찜갈비를 벤치마킹해 돼지갈비를 축으로 한 연탄석쇠돼지찜갈비 시대를 연 중구 달성네거리 근처 33년 역사의 마당갈비식당의 연탄에 갓 구워낸 돼지갈비.

◇ 달성네거리 마당갈비
동인동찜갈비 벤치마킹한 돼지요리
생갈비를 소스에 잘 재운 후 구워내

33년 전, 거인 씨름선수 이봉걸씨와 함께 동인동의 한 찜갈비집에서 식사를 한 김순필씨.

아마추어 마라토너이기도 한 그녀가 마늘·고춧가루가 가미된 매콤한 갈비찜을 먹으면서 새로운 돼지요리 아이디어를 얻는다. 쇠갈비가 아니라 돼지갈비로 갈비찜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 82년 태어난 중구 달성네거리 근처 마당갈비. 마당갈비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돼지찜갈비 시대’를 개척했다. 동인동찜갈비의 새로운 변신이었다. 생갈비도 칼집을 넣고 오갈피, 산수유 등 4종 한약재로 만든 소스에 잘 재워둔다. 먼저 연탄불에 갈비를 잘 굽는다. ‘옛날연탄돼지갈비’ 버전이다. 그건 1단계 요리, 아직 2단계가 남았다. 구운 갈비에 마늘, 고춧가루, 생강 등만 넣고 잘 버무린다. 잔열이 스며든 갈비는 양념 기운을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공동기획: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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