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공부보다 중요한 것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6-20 08:04  |  수정 2016-06-20 08:04  |  발행일 2016-06-20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공부보다 중요한 것


생과일주스를 두 잔 들고 온 어머니가 한 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입술을 대보니 파인애플 향과 단맛이 코와 입으로 진하게 느껴졌다. 자기 앞의 주스를 단숨에 절반 정도 쭉 마시고 어머니는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수학, 과학 영재반에 다닐 정도로 우수했고, 선생님들도 아이가 최고의 명문대학에 쉽게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발명 특기자로 활동을 했고 여러 번 상을 받았습니다.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초등 5학년 때 중3 수학까지 끝냈습니다. 중2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책상에 늦게까지 앉아는 있지만 공부에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첫 시험에서 중간도 안 되는 성적이 나왔습니다. 해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해 더욱 기가 찹니다. 앞으로 학생부교과와 종합전형이 확대되면 수시로 대학에 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내신관리가 좀 쉬운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면 어떨까 싶어 상담하러 왔습니다.”

“전학을 가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어디에 가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전학을 가면 잘 할 것 같습니까? 환경의 변화가 주는 문화 충격으로 더욱 방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신 성적 때문에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일종의 현실 도피입니다. 정공법으로 맞서지 못하는 자신이 더 못마땅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가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모두에게 주목받고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초등학교 시절, 그때의 마음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의 생활은 어떠냐고 묻자, 밥맛이 없다며 아침은 늘 굶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 몸이 바싹 말라있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계획을 세워 반드시 실천하여 성취감을 누적시키면 생활이 즐겁고 자신감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남은 주스를 또 절반쯤 단숨에 마셨다.

“어머니, 지금 주스를 거의 다 마셨는데 주스 향이 좋다거나 단맛이 감미롭다거나 이런 걸 느끼셨나요?” “속이 답답하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셨어요”라고 답했다. “어머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남은 주스를 마셔 보십시오.” 엄마는 천천히 조금씩 마셨다. “향도 느껴지고 단맛도 나네요.” “무조건 윽박지르거나 다그치지 말고, 아이가 밥상머리에서 입맛이 돌아오도록 엄마 아빠가 마음의 여유를 좀 가지십시오. 자신감에 충만하여 아무 두려움이 없던 어린 시절을 함께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가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배웅하러 밖으로 나가니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찬란했다. 남쪽 하늘에 뭉게구름이 기이한 형상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어머니, 아이의 가슴에 희망과 꿈, 하고자 하는 의욕이 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