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삼덕동 ‘임재양 외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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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4   |  발행일 2015-07-24 제38면   |  수정 2015-07-24
병원? 눈을 의심하겠네
건강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 10년 준비 끝에 오픈
가정집 같은 나무대문…다실·도서관·별당도 마련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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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삼덕동3가 동부교회 주차장 근처에 조금은 별스러운 동네병원이 있다.

유방암 전문 임재양 외과다. 처음 이 병원을 본 사람은 ‘이게 병원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한다. 손바닥만 한 간판, 출입문도 나무대문이다. 처음 내방하는 환자는 대문을 삐걱거리며 열고 들어온다는 사실에 적잖이 감동한다. 접수 후 대기하면서 한 평 남짓한 다다미방에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널찍한 홀에서 힐링 관련 책을 읽으며 자신을 정리정돈할 수 있다. 고개를 들면 예전 고가에서나 볼 수 있는 서까래 천장이 보인다. 한옥은 그 자체로 환자의 심신을 평화롭게 해주고 있다.

올해 예순을 맞는 임재양씨. 현재 화두는 ‘힐링(Healing)’이다.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니 기존 ‘웰빙(Wellbeing)’만으로는 역부족이란 생각을 했다. 웰빙을 넘어 힐링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그는 일상에서 여러 가지 힐링적 실천을 했다. 그중 하나가 자연과 함께하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반채식주의적’으로 돌아갔다. 그 숱한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다양한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데 채식주의자로선 너무나 힘든 과제였다. 과감히 관계를 정리했다. 여느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게 직접 주방에서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요리해 먹었다. 불안한 식재료를 극복하기 위해 병원 마당에 각종 채소와 허브류를 재배했다. 웰다잉 연구소장인 김조한씨와 함께 말기 암환자를 불러 최후의 만찬 콘서트도 자신의 부엌에서 진행했다.

그는 암을 조기발견하고 치료하는 의사였다. 10년 전부터 병의 형태가 이상한 것을 감지한다. 35년 경력 의사의 직감이었다. 일단 병원의 형태부터 바꾸고 싶었다.

그동안 여느 의사처럼 대로변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병원이 입주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었다. 준비 기관이 10년이 걸렸다. 2002년부터 삼덕동 원룸 저지대책 운동을 벌인다. 특정 원룸 건설을 저지했다. 동네 사람과 자주 싸움을 벌이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이건 불법도 아니고 막을 이유도 없었다. 그때 그는 ‘그럼 원룸이 못 들어오게 땅을 사면 된다’고 여겼다. 원래 현재 자리에는 당시 꽤나 유명한 한식당이 있었다. 이 집을 사기 위해 무려 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모두 3채의 집을 매입했다.

건축가를 구하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 도시한옥 전문 ‘구가도시건축’을 통해 건축을 시작한다. 그는 추상적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럼 건축가는 설계를 수정했다.

한옥이지만 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구조다. 전통과 현대적 미학을 조합했다. 굳이 한국 소나무를 고집하지 않았다. ‘더글라스’란 북미송을 사용했다. 예전에는 사계절이 뚜렷해 국내 소나무의 조직이 조밀했다. 하지만 갈수록 물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부러 전통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3명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차실에서는 편히 마당을 바라볼 수 있다. 마당에는 지인 등이 선물로 보내온 각종 전통 옹기가 눈을 즐겁게 한다. 안쪽에는 도서관도 있다. 환경 및 건강한 먹거리 관련 서적을 다수 모아두었다. 대기실에는 TV를 없애고 중년이 읽어야 될 철학 서적을 비치해 두었다.

2012년 6월에 오픈한다. 한옥에 병원이 통째로 들어온 경우는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공간이고 비용도 적잖아서 일반 의료인이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좀 ‘별난 병원’이다.

살구나무를 병원 입구에 심어두었다. 중국 오나라 동승이란 의사는 환자 치료 대가로 살구나무를 받고 나중에 살구나무 동산을 만든다. 그 후로 살구나무는 병원을 상징하고 각 의과대 행사나 동인지에 ‘행(杏)’ 자가 들어간다.

병원 입구에 세이지, 패랭이꽃, 무궁화 등이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한편에 색다른 억새밭이 조성돼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아르헨티나가 원산지인 억새 수종 팜파스글라스다. 7월부터 2월까지 은백색 꽃이 피고 키도 3m에 달해 장관을 이룬다. 영국 근위병 모자 위 수술도 바로 저 꽃이다.

병원 바로 옆 동은‘한입 별당’.

한입별당과 마당은 힐링푸드를 위한 공간이다. 현대의 많은 병이 잘못된 먹거리와 오염된 환경 탓이라 생각해 주 1회 차를 몰고 오지 않는 환자들에게 통밀로 만든 착한 통밀빵도 선물로 나눠준다. 판매하라는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이를 묵살하고 인연 되는 사람에게만 무료로 나눠준다.

5년 전 결단을 한다. 현미채식을 시작하면서 20㎏ 감량하고 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청도에 텃밭을 마련했다. 그러나 거리상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 할 수 없이 텃밭을 마당에 조성한다.

가지, 오이, 상추, 깻잎, 바질, 루콜라, 딜 등 10여 종의 허브까지 심었다. 마당에는 살구나무, 백일홍, 감나무, 회화나무, 매화, 벚나무, 무화과 등 30여 종의 관상·유실수를 심었다. 집에서 나온 모든 음식쓰레기를 발효통에서 삭혀 퇴비화하고 있다.

그의 힐링식품론의 요체는 이렇다.

“건강한 음식론의 경우 좋은 것을 일단 찾지 말고 나쁜 걸 피해라. 나쁜 건 아주 심플하게 나와 있다. 열량이 많은 것과 패스트푸드, 기름기 많고 태운 음식 정도만 피하면 족하다. 나쁜 상황에 노출되고 있으면서 좋은 것만 찾아다니니 몸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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