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대경미술연구원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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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2   |  발행일 2018-11-02 제35면   |  수정 2018-11-02
“여류화가 조명·젊은작가 발굴·교육현장 재능기부…소통기회 늘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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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남희 경북대 교수와 그 제자들이 모여서 만든 대경미술연구원의 연구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장자윤·김미자·임현숙·이영미·김미련·류시숙·조덕연·정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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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부터 소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및 포럼을 앞두고 연구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면서. <대경미술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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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남희 경북대 교수

대구경북 미술발전 왕성한 활동
디지털페인팅 작가 널리 알려져
전통미의식 현대적 재해석 호평


대구에서 태어난 고(故) 박남희 경북대 교수는 대구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이자 30여 년간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했던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와 동대학원을 나온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했다. 귀국한 뒤 대구로 돌아와서 1980년대 초 대구가톨릭대를 거쳐 경북대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돼 2016년 퇴임했다.

1960년대 말 여성의 몸으로 서울로 공부를 하러간 것은 물론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예술인로서, 사회인으로서 다양한 본보기를 보여줬다. 대학에 몸 담고 있으면서 경북대미술관 초대 관장, 한국미술이론학회 회장, 경북대 디지털아트콘텐츠연구소 초대 소장, 경북대 평생교육원장,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 등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박 교수는 디지털페인팅(언제 어디서든 창조적 아이디어와 컴퓨터만 있으면 자유롭게 미의식을 펼칠 수 있는 디지털아트) 작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디지털페인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말부터 이 작업을 꾸준히 펼쳤으며 한국의 전통적 미의식과 역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호평을 받았다. 이런 활동을 통해 대구시전 초대작가상, 모스크바미술협회장상, 대한민국무궁화대상 등을 받았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지역미술 발전 힘쓴 ‘대경미술硏’ 故 박남희 원장
류시숙 화가, 스승 유지 이어 연구원과 역량 결집
미술대 졸업생‘봉산 새내기전’…갤러리 무료대관
대구미술 발전 포럼…시민과 교류·문화도시 조성
탄탄한 역량 활용 문화예술계 전체 발전방안 고민

대구경북 근현대 미술사 큰획 작고·생존작가 조명
젊은작가 창작활동 도움주는 행사 마련 ‘새 활력소’
학교 창의체험 활동과 미술관 투어·작가 탐구 접목
예술가 목소리 내는데 소홀…처우·권익 위한 토론



고(故) 박남희 경북대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2015년 대경미술연구원을 만들었다. 경북대 석·박사 졸업생 및 연구자들을 모아 지역미술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가겠다는 취지로 결성한 것이다. 하지만 개원 기념으로 2015년 12월 ‘영남의 현대미술, 뿌리 찾기 세미나’를 연 데 이어 2016년 2월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인 ‘영남의 현대미술, 봉산 새내기전’(이하 봉산새내기전)을 개최한 뒤 박 교수가 갑작스레 타계했다.

현재는 류시숙 화가가 박 교수의 뒤를 이어 원장을 맡아 그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사제지간의 따스하고도 끈끈한 정이 가득한 대경미술연구원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연구원들의 역량을 결집, 지역미술의 발전에 일조를 하겠다는 의지로 탄탄히 다져지고 있다.

그래서 인터뷰 장소도 ‘봉산새내기전’이 열렸던 대구 중구 봉산동 봉산문화거리의 한 커피숍으로 정했다. 봉산새내기전은 경북대, 계명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영남대 5개 대학의 졸업생을 대상으로 선발한 30명의 예비작가들이 참여했으며 봉산문화거리 내 10개 갤러리에서 펼쳐졌다.

류 원장은 “꽤 오래전부터 미술계 전체가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때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미술대학 졸업생들에게 창작동기를 부여한 행사로 의미가 있었다. 그때 갤러리들이 무료 대관해주었는데 이 같은 갤러리의 도움도 신선한 자극제였다. 작가와 갤러리의 소통·협업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류 원장의 말에 이어 임현숙 연구원(갤러리DM 대표)은 “예상외로 관람객들이 많았다. 대학생만이 아니라 각 미술대학 교수와 중·고생들의 관람이 이어졌다”며 “이 전시는 작가 발굴의 의미도 컸다. 당시 참여작가들 중 이 전시를 본 다른 화랑으로 부터 러브콜을 받아 전시를 한 경우도 꽤나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새로운 기획은 박 교수를 비롯해 연구원들의 뛰어난 역량으로 인해 가능했다. 현재 연구원은 20여 명이다. 작가로 활동 중인 류 원장, 이영미, 장자윤, 방나교, 김미련, 서상희씨를 비롯해 영진전문대 이선희 교수, 국립대구박물관 배진희 학예연구사, 대구문화예술회관 박민영 학예연구사, 봉산문화회관 정종구 전시기획자, <사>이인성아트센터 대구본부 채정균 본부장, 국립현대미술관 박미화 학예연구사, 안미희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팀장, 구암중 김미자 교장 등이 연구원으로 있다.

이 단체의 궁극적 설립 목적은 학문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미술, 나아가 지역학문의 발전을 위해 지역학의 학풍을 정립하고 지역이 구심점이 돼 지역문화예술의 학문적 체계를 정리 및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런 목적 아래 그 구체적인 활동으로 지역의 근·현대미술 및 미술사를 깊이있게 연구하고 지역의 주체적 문화예술 연구의 기반을 닦아나가려 한다. 1회에 그쳤지만 ‘영남의 현대미술, 뿌리 찾기 세미나’를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6년 이 세미나의 두 번째 행사를 개최하려 했으나 박 교수가 타계해 진행하지 못했다.

올해는 그 아쉬움을 풀어주고 대경미술연구원이 3년여 진행해온 사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포럼을 기획했다. 2일부터 17일까지 소헌미술관(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기획전을 열고 ‘대구미술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포럼도 진행할 계획이다. 포럼에서는 대구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일반시민과 미술의 교류 방안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현대미술가들의 활동을 짚어보고 해외아트페어의 동향도 훑어볼 예정이다.

이영미 연구원은 “대구·경북이 가진 문화저력이 대단한 데도 경제적으로 위축되다보니 문화예술적인 면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포럼을 계기로 지역이 그동안 다져왔던 탄탄한 역량과 기반을 이용해 지역 문화예술은 물론 전체를 발전시킬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대경미술연구원은 앞으로도 지역미술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업들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조덕연 부원장은 “대구·경북 미술사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묻히고 잊혀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을 찾아서 재조명하는 것도 큰 임무”라며 “그 첫 사업으로 지역의 여류화가에 대한 연구를 좀 더 깊이있게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구에는 여류화가들의 모임인 청백여류화가회, 여류100호회 등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청백여류화가회는 창립된지 30여 년이나 될 정도로 역사성이 있다. 전국적으로 볼 때 30여 년간 모임이 유지되어온 여류화가모임은 거의 없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꾸준히 전시를 보여줌으로써 지역 여류화가들의 역량을 키우고 창작 의지를 북돋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여류 100호회는 남성작가보다 체력적으로 약해 대작을 하기 힘든 여성작가들이 큰 작품에 도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대경미술연구회는 여류화가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앞으로 지역의 근·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고작가는 물론 생존작가를 기록하고 조명하는 사업들을 꾸준히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 말 끝에 이들은 지역화단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해서도 토론을 이어갔다. 자치단체 등의 미술분야 지원이 부족한 것이 문제지만 미술인들 스스로도 각성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들은 미술인들끼리의 소통부재에 대해서도 한목소리를 내며 지역미술 발전을 위한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 등을 통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대경미술연구원과 같은 미술단체들이 활성화돼 미술인들끼리 교류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경미술연구원은 앞으로 지역의 젊은 작가 발굴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봉산새내기전’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타진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사업에 힘을 쏟으려는 것이다.

장자윤·이영미 연구원은 “영국의 yBa 등을 통해 젊은 작가 발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역미술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젊은 작가의 창작활동에 도움을 주는 행사들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yBa(young British artists)는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yBa 그룹 혹은 yBa 군단이라 한다.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이안 대번포트, 레이첼 화이트리드, 샘 테일러우드 등 현대미술의 주역들이 활동했다.

이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쉽게 접하고 친근감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의 체계도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대경미술연구원에서 교육분과 일을 책임지고 있는 김미자 연구원은 “학교의 창의체험활동 등에 미술관 투어, 작가 탐구 프로그램을 접목해 미술현장과 교육과정이 연계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려 한다”며 “미술인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교육현장과의 연계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런 일련의 활동들을 통해 미술인과 시민들 간의 소통 기회를 늘려나가고 미술, 나아가 문화예술 인구의 저변도 확대해 나가는 동시에 미술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의 인권, 예술가의 삶 등에 대한 고민과 토론도 이어갈 예정이다.

김미련 연구원은 “예술의 궁극적 발전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처우·권익 등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에만 집중하다보니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데는 소홀했다”며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예술인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해볼 시점”이라고 밝혔다.

대경미술연구원은 미술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장르의 활동가들이 모였고 연령층도 40대부터 60대까지 비교적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류시숙 원장은 “각 분야에서 탄탄히 다져온 실력있는 연구원들이 많다. 이런 인적 구성의 특징을 살려 현재 지역미술계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지역미술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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