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예산 조기집행 ‘묵히는 돈’만 수북

각 지자체의 예산 조기집행 추진방식에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산 조기집행은 당초 일정보다 예산을 앞당겨 사용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서민생활안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실적을 위한 끼워맞추기식 예산집행,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집행 등 각종 부작용이 불거져 나와 최근에는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올 초에는 행정안전부가 해당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예산 조기집행 계획을 밀어붙여 지자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지자체 예산 담당자들은 조기집행의 이점을 인정하면서도 무리한 조기집행이 재정건전성 악화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조기집행률 102.3%

12일 대구시에 따르면, 시와 8개 구·군은 전체 조기집행 목표액 2조8천856억원중 2조9천529억원을 집행해 102.3%의 집행률을 보였다.

조기집행률이 가장 높은 곳은 서구였다. 서구는 조기집행 목표액 208억원 중 255억원을 집행해 122.9%의 집행률을 보였다. 다음으로 높은 집행률을 보인 곳은 목표액 249억원중 276억원을 사용한 남구다. 711억원의 목표액중 777억원을 조기집행해 109.2%의 집행률을 보인 동구가 뒤를 이었다.

대구시는 목표액 2조4천367억원 중 2조5천386억원을 조기집행해 104.1%의 집행률을 기록했다. 대구시에서 집행률이 가장 저조한 구·군은 북구와 달성군으로, 각각 80.1%와 72.2%의 조기집행률을 보였다.

◆부작용도 많아

무리한 조기집행 추진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우선 취지에 맞지 않는 예산 조기집행이 늘면서 ‘풀리는 돈’이 아닌 ‘묵히는 돈’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조기집행 예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복지사업비의 경우, 묵히는 돈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구 A구청 예산 담당자는 “우리 구의 예산 조기집행 대상사업 목록 중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사회복지시설 관리운영비 지출 항목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지급해야 할 운영비 및 인건비를 미리 준다고 해서 복지시설에서 한꺼번에 쓸 수는 없을 터이고, 결국 그 돈은 시중에 풀리지 않고 갇혀있게 된다”고 꼬집었다.

지나친 실적주의도 하나의 부작용이다. 각 지자체가 실적 달성에 매달리면서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B구청 한 부서에서는 조기집행 실적 달성을 위해 매년 사무집기를 대량으로 구매해 ,이제는 온갖 사무집기가 남아돌 지경이다. 복사용지를 일년치씩 사놓는 것은 기본이다. 이 구청 건설과 직원들은 매년 초 업체를 찾아다니며 조기집행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조기집행의 장점을 살리면서 제도의 취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시 관계자는 “매년 행안부의 일방적인 통보형식으로 조기집행이 진행되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며 “무조건적 시행이 아니라 경기상황을 고려해 유동적으로 시행을 해야 한다. 조기집행 대상사업이 얼마나 취지에 맞게 선정됐으며, 실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동구의회 황순규 의원은 “예산 조기집행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다”며 “각 지자체에서 예산 조기집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손실분과 취지부합성 등을 한번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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