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9) 대구시 수성3가 ‘커피인’ 이영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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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27   |  발행일 2012-07-27 제42면   |  수정 2012-07-27
아이스드립, 10여분 후에도 향·맛의 농도 유지 ‘커피향 와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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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이영재씨는 “상당수 손님들은 커피의 진미보다 커피를 둘러싼 분위기, 유행 등에 현혹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저급한 커피문화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경력이 있어야 커피도 좋다?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경력이란 어쩜 실력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자들이 휘두르는 ‘칼’같다. 따라서 기본기를 익히는 절대적 시간은 사실 경력의 자장권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고 본다. 십년전이나 이십년전이나 비슷한 화풍, 가창력을 가진 화가와 가수는 실은 예술과 거리가 먼 ‘박제된 존재’들이다. 경이로움은 세월을 압축파일로 담을 줄 아는, 다시말해 절벽정신 같은 ‘집중력의 산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기자는 최근 지역의 바리스타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커피명가·다빈치·시애틀 잠못이루는 밤·핸즈커피·모캄보·브릿지·로스팅로보 등 대구발 커피 프랜차이즈보다는 평생 커피 자체에 목숨을 걸 사각지대 고수를 만나고 싶었다. 마침 한 파워블로거가 대구시 수성3가 119센터 근처에 있는 커피인(Coffee人)의 오너셰프인 이영재 바리스타를 추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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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인'의 이영재 바리스타가 핸드드립하고 있다.(위) 얼음이 녹아도 커피의 농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아이스드립.(가운데) 다른 터치를 전혀 배제한 커피인의 명물 옛날식 팥빙수.

◆오픈 2년…핸드드립 마니아에 인지도 높아

수소문해보니 커피인은 생긴지 채 2년도 안됐다. 그런데 지역의 상당수 핸드드립 마니아들에게 꽤 인지도가 높았다.

이 셰프는 오전 7시30분쯤 일어난다. 숍에 나오면 8시30분. 가게 테이블 정리를 한다. 화장실도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위생이 무너지면 문을 닫겠다는 각오다. 내가 못 먹는 커피는 안 판다는 원칙 아래 커피 첫 잔을 직접 테이스팅한다.

요즘 우유팥빙수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토핑이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옛날 버전이다. 그런데 이름이 재밌다. ‘사이 나쁜 팥빙수’, 혼자 많이 먹으려고 하는 과정에 한 사람이 토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메뉴판 첫 페이지를 읽어봤다.

‘핸드드립 전문점, 주문 후 원두를 바로 갈아 한잔씩 손으로 내리는 대단히 슬로우 커피. 로스팅 한지 20일 넘는 원두는 버리고, 좋지 않은 원두에 인공향료를 과도하게 첨가한 헤이즐넛 같은 건 팔지 않는다’

주변의 반응을 정리해봤다.

‘손맛이 있는 것 같다. 핸드드립이기 때문에 손맛이 있다. 재료에 대해 정직하다.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오버된 걸 과감하게 버리는 게 너무 프로스러워 보인다. 청결도 장난이 아니다. 머신 같은 것도 다른 집에서는 대충 넘어가는데 정말 깨끗하게 닦는다. 밤중에 들러 주인 혼자서 1시간 이상 머신의 구석구석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뢰가 간다. 겸손하면서도 소신과 자존감을 갖고 있다. 원칙을 벗어나면 본인은 물론 더 나아가 선배도 정색하면서 비판한다.’

◆아이스드립을 맛보다

이 셰프가 일본 홋카이도식 강배전(다크 로스트) 아이스드립을 한 잔 내민다.

10여분이 지났는데도 향과 맛의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마치 커피향 와인을 먹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보온병을 갖고 와 테이크아웃해가는 이들도 많다. 사실 여느 업소에서는 두배 가량 커피가 많이 소요되는 아이스드립을 경영상 꺼리고 있지만 여긴 자신있게 내민다. 그는 자신있게 로스팅 기계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 솔직함에 한 표를 주고 싶었다.

이밖에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에티오피아 모카·에티오피아 시다모·모카 하라도 있고, 세계 3대 커피로 불리는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안 코나, 블루마운틴 넘버원 등 모두 12종류의 로스팅 원두를 지니고 있다. 토스트 하나도 생우유를 베이스로 반죽하도록 외주업체도 엄선했다.

공유와 배려 마인드를 존중한다. 그래서 골수 마니아들이 외국 갔다 고급원두 갖고 와서 선물을 주면서 드립해달라고 하면 기꺼이 서비스해준다.

◆경남 김해서 ‘진짜커피’를 만나다

이 셰프는 대륜고를 졸업하고 전문대 전자과를 나왔다. 커피집 사장, 젊은 시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15년전 서울로 가 30명 직원을 둔 건설회사 ‘자딘’의 대표가 된다. 하지만 잘 나가던 사업이 부진에 빠지자 2006년 그만 접는다. 독신이라서 더 쉬웠다.

대구로 돌아왔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에게 아버지가 요즘 커피가 트렌드라며 강력 추천한다. 일단 사업을 한번 해보자 싶어 커피 헌팅하러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커피에 감동 같은 게 없었다. 그냥 커피 수준이었다. 그냥 먹으니까 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사부가 되는 정원영 바리스타(55)를 경남 김해시 내외동의 한 커피점에서 만나 ‘진짜커피’를 접하게 된다. 6년전이었다. 에티오피아 커피 원두 중 가장 단단한 예가체프와 아이스드립, 이 두 개를 먹었다. 짐을 싸고 다음날 김해로 갔다. 원룸 잡고 설겆이부터 시작했다. 수업은 요즘 방식과 달랐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도제식 수업이었다.

1년6개월 전 현재 자리서 커피인을 차린다. 아직 그의 실력은 ‘발효중’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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