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이웃사람·차가운 열대어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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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24   |  발행일 2012-08-24 제40면   |  수정 2012-08-24
[신작 對 신작] 이웃사람·차가운 열대어

◇ 이웃사람 : 원작 강풀의 웹툰 속 캐릭터 완벽하게 스크린 재연

영화 ‘이웃사람’은 강풀의 동명 웹툰을 모티브로 했다. 강풀 특유의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과 줄거리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웹툰 ‘이웃사람’은 그의 원작 중 가장 영화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형에 연쇄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이야기는 장르적 재미만큼이나 ‘소통과 단절’이라는 메시지를 유효하게 전달한다. 여기에 강풀 작가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쉽고 매력적인 대중적 화법과 선명한 캐릭터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원작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에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선에서 인물들의 감정선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 김휘 감독의 말처럼 ‘이웃사람’은 강풀 웹툰을 영화화한 그 어떤 작품보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강산맨션 202호 소녀(김새론)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경비원까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주민들의 촉각은 수십만원대의 수도세, 사건발생일마다 배달시키는 피자, 시체가 담긴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사간 102호 남자(김성균)에게 모아진다. 102호 남자 또한 주민들의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하고 두 번째 소녀를 타깃으로 한 범행을 계획한다.

‘이웃사람’의 힘은 관객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연쇄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주제에 대한 고민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각 캐릭터마다 촘촘히 짜여진 이야기들과 그런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얼개로써 충분히 기능을 발휘했다. 영화의 연쇄살인범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를 유인, 납치해 살인을 저지른다. 뚜렷한 범행 동기도 없다. 일종의 싸이코패스적 성향을 지닌 범인은 자신의 극단적 행위를 은근히 자랑하고 이웃들간의 트러블도 겁내지 않는 이상심리 범죄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웃들은 그의 범행 사실을 눈치챌만한 다양한 증거들을 포착했음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방관한다. 이는 이웃사람들의 무관심이 부른 비극이자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이웃사람’을 통해 입봉한 김휘 감독은 ‘해운대’ ‘심야의 FM’ 등의 각본과 ‘하모니’를 각색한 오랜 시나리오 작가의 경험을 살려 ‘이웃사람’의 각본까지 참여했다. 전작들에서 보이듯 누구나 공감 가능한 휴먼 드라마는 늘 그가 천착해왔던 화두다. ‘이웃사람’이 비록 스릴러적 긴장감과 호러장르가 지배적이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인간의 감정과 심리에 대한 강풀 작가의 통찰은 그런 점에서 김휘 감독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영화 속 평범한 이웃사람들의 모습은 가까이 있는 이웃과 소통이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물론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놓을 만큼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도 뛰어나다. 다양한 추리와 사고를 통해 퍼즐 맞추듯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의 긴장감과 리듬감은 드라마와 절묘하게 공존한다.

‘이웃사람’의 미덕은 원작과의 완벽한 캐릭터 싱크로율에 있다. 서서히 변해가는 이웃사람들의 심리변화와 극적인 전개를 완벽하게 표현해낸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스릴 넘치는 전개에 탄력을 더한다. 김윤진은 연쇄살인범에 의해 희생된 딸 여선의 엄마(경희)로 등장한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강한 모성애를 보여준 바 있는 김윤진은 공포와 죄책감을 지닌 극 중 캐릭터를 섬세한 내면연기로 표출하며 이번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렸다. 한국의 다코타 패닝으로 불리는 김새론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소녀 여선과 긍정적이고 밝은 소녀 수연의 1인 2역 연기를 입체적으로 잘 표현했고, ‘범죄와의 전쟁’으로 일약 충무로의 스타로 급부상한 김성균은 광기에 사로잡힌 용의자를 섬뜩한 눈빛과 표정으로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악질 사채업자로 분한 마동석은 능청스럽고 리얼한 연기로 시종 극을 장악한다.

“캐릭터간의 앙상블이 빛나고 돋보이는 퀼트 같은 영화”라는 김윤진의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작 對 신작] 이웃사람·차가운 열대어

◇ 차가운 열대어 : 잔혹하고 희망없는 판타지…엽기적인 연출 ‘묘미’

샤모토(후키코시 미츠루)는 도심 변두리에서 작은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가장이다. 그는 친모에 대한 그리움이 가족에 대한 증오로 표출되고 있는 반항심 많은 딸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두번째 부인과 함께 불안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어느 날 딸 미츠코의 상습적인 도둑질이 발각돼 곤경에 처하게 된 그에게 무라타(덴덴)라는 사내가 접근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준다. 인심 좋은 이웃처럼 다가온 무라타에게 가족들은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가 운영하는 거대 열대어 가게에 미츠코를 취직까지 시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라타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샤모토는 깊은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음을 알게 된다.

소노 시온 감독의 ‘차가운 열대어’는 ‘한 순간의 혼란은 인생을 극단적인 어둠으로 치닫게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품는다. 특히 자극적인 소재와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현실 충격 영감 작업의 최종장에 해당한다고 말했을 만큼 ‘차가운 열대어’는 뜨거운 열정과 정성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영화는 1993년 일본 사이타마현의 애완견 가게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하지만 설정만 차용해 왔을 뿐, 그의 머리속에서 완성된 영화의 줄거리는 그가 늘 관객들과 소통해왔던 하드고어적 방식으로 새롭게 전개된다. 당연히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나 삶에 대한 이상적인 밝은 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독스러울 정도의 어두운 면과 이야기를 통해 현재 삶에 대한 감사함을 우회적으로 역설한다. 이는 자신의 삶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보다 못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중독을 넘어선 일방적인 맹독 현상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철저하게 돈의 노예가 된 무라타의 악마적 본성과 조용한 일상을 살고 싶었던 샤모토의 의지를 조응시킨다. 주인공 샤모토는 늘 침묵으로 일관하고 방관자이며 약자인 인물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후지산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그런 샤모토에게 무라타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네가 아는 지구는 동그랗고 푸른 색이지만, 내가 아는 지구는 돌덩어리다. 그것도 울퉁불퉁 딱딱한 돌”이라고. 이후 샤모토의 소박한 꿈은 무라타로 인해 무자비하게 찢겨져 나간다. 아내가 무라타에게 성적으로 유린 당한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자신이 꿈꾸는 가정의 행복은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세상의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일본의 사회문제를 나름의 기묘한 방식으로 풀어가던 소노 시온 감독의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인 연출의 묘미가 펼쳐질테니 말이다. 역시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잔혹하고 희망없는 판타지를 담아갔다. 그 과정에서 인생에 한번쯤 찾아오는 위험한 유혹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이는 조금이라도 기반이 무너지면 흔들리고 망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다. 하지만 소노 시온 감독은 힘들고 지친 인생이지만 실낱 같은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인생의 판타지도 조심스럽게 설파한다. 바로 소노 시온식 ‘다크 판타지’를 말이다.

주인공 샤모토와 무라타를 연기한 후키코시 미츠루와 덴덴의 열연은 이 영화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발악해도 그의 인생에 더는 희망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과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후키코시 미츠루의 연기도 좋았지만, 인심 좋은 아저씨 얼굴을 하고 가장 잔인하고 냉혈하게 살인 기술을 펼치는 유쾌한 악인으로 분한 덴덴의 연기는 지금까지 뇌리에 남는다. 그런 두 사람이 맞닥뜨려 파생시키는 기묘한 화학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온 몸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듯한 느낌이다.

최근 국내에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끔찍한 사건들, 그리고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지금, 과연 누가 진짜 악인이고,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영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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