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라잇 온 미· 복숭아나무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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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2   |  발행일 2012-11-02 제40면   |  수정 2012-11-02
[신작 對 신작] 라잇 온 미· 복숭아나무

◆ 라잇 온 미 : 사랑의 본질 제대로 짚어낸 남자와 남자의 러브스토리

퀴어 영화라는 편견을 한꺼풀 벗기고 보면 ‘라잇 온 미’는 사랑에 관한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보편적인 러브스토리다. 한밤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운명적인 만남, 서로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추억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찾아와버린 헤어짐의 문턱까지,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 누구나 거쳐갔을 기억의 조각들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라잇 온 미’는 연출을 맡은 아이라 잭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그가 현재의 배우자인 화가 보리스 토레스를 만나기 전 겪었던 10년동안의 러브스토리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뉴욕에 온 에릭(투레 린드하르트)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직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폴(재커리 부스)을 만난다. 어느덧 서로에게 다시는 없을 특별한 사람이 된 에릭과 폴은 뉴욕을 배경으로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여러 가지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로 위기를 맞는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은 에릭과 그를 사랑하지만 점점 관계의 버거움을 느끼는 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기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려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라잇 온 미’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떨림, 그리고 어느덧 찾아오는 이별의 아쉬움까지 관계에 관한 잊지 못할 여운의 순간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만큼 영화는 두 남자가 함께 하며 겪어 온 변화무쌍한 10년의 세월을 손에 잡힐 듯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낸다. 그 점에서 ‘라잇 온 미’는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문제에 관한 영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폴과의 만남에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에릭은 일과 사랑 모두에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그에 비해 변호사로 일하는 폴은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이어가고 있을 만큼 혼란 속에 살고 있다. 이처럼 너무나 다른 스타일의 두 남자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본 이들의 사랑은 크고 작은 불화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고 애틋하다. 사진첩을 넘겨보듯 서로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붉게 달아오르던 얼굴부터 약간의 오해로 빚어진 다툼들, 그리고 헤어짐을 결심하지만 결국 다시 서로를 찾게 되는 모습까지 사랑에 있어서의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담아낸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와 함께 펼쳐지는 이미지들이 갖는 관능의 여운도 인상적이다. ‘라잇 온 미’의 무대는 뉴욕이다. 뉴욕에 오랜 기간 거주한 아이라 잭스 감독은 자주 가던 바와 레스토랑, 거리 등을 무대로 활용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뉴욕을 무대로 한 영화들과 달리 ‘라잇 온 미’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이 영화가 인사이더의 시선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의 올드스트릿, 센트럴파크의 가을햇살, 그리고 이스트빌리지의 모던한 갤러리까지 에릭과 폴을 따라 만나는 뉴욕의 공간들은 그래서 더욱 생기가 넘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에릭와 폴이 1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심플하게 서로에게 안녕을 고하고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없이 아프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처럼 그 고통을 이겨내야 우리는 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그렇게 영화는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사랑에 쉼표를 찍으며 막을 내린다.

아이라 잭스 감독이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성숙감이 사랑이 가진 아주 특별한 가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라잇 온 미’는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들을 배제한 채 여느 멜로드라마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사이, 사랑할 때, 싸울 때, 헤어질 때,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을 찾아가게 될 때, 누구나 공감할 법한 보편적인 사랑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거나,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연예 지침서로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퀴어 영화 중 최고상에 수여되는 테디베어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이미 작품성은 인정 받은 셈이다.

[신작 對 신작] 라잇 온 미· 복숭아나무

◆ 복숭아나무 : 앞뒤로 얼굴 달린 샴쌍둥이 앞에 나타난 여인과의 멜로

상현(조승우)과 동현(류덕환)은 얼굴이 앞과 뒤에 달린 샴쌍둥이 형제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 그리고 하나의 심장을 가졌다. 그들은 아버지(최일화)의 보살핌 아래 바깥세상을 모른 채로 30년을 어두운 집 안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순종적인 성격의 상현과는 달리 숨어 지내는 생활이 불만인 동현은 소설가를 꿈꾸며 남몰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한다. 아버지는 이런 동현을 위해 삽화가를 꿈꾸며 놀이동산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승아(남상미)에게 아들을 도와 함께 책을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한다.

‘복숭아나무’는 배우에서 연출가로 길을 다지고 있는 구혜선 감독의 ‘요술’에 이은 두 번째 장편이다. ‘복숭아나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자책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형제의 이야기를 은유와 상징으로 엮어낸다.

상현, 동현 형제는 두 개의 인격으로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성장해왔다. 서로를 원망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숨 쉴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랑의 관계다. 영화는 그런 형제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상현과 동현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다. 상현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동생 동현의 뒤에서 항상 숨겨진 채 살아가면서도 자신과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불행들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늘 미안하고 괴로워한다. 반면 형보다는 신체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동현은 숨어 지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 그 모든 것이 상현의 탓으로만 느껴진다. 형제는 이처럼 세상과 벽을 쌓으며 애증의 관계로 30년을 살아왔다.

승아는 그들을 현실세계로 이끈다. 엄마 외에 이성과의 만남이 처음인 형제에게 승아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여자로 존재한다. 그녀로 인해 세상에 대한 셀렘과 긍금증이 더 생겨났다. 특히 자신의 존재를 봉인해버릴 수밖에 없는 상현과 달리, 운신이 자유로운 동현은 적극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 수 없게 만든 형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더욱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괴물이었을까. 구혜선 감독은 그들을 괴물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오히려 괴물이라 말한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면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꿈과 사랑, 그리고 희생과 배려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편견을 극복해가는 이야기이자, 형제의 성장담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존재인 형제를 통해 편견은 또 하나의 장애임을 말하고 싶었다”는 구혜선 감독은 이 과정을 마치 동화속 세계로 인도하듯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복숭아나무’는 이제 구혜선 감독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신선한 소재와 충격적 영상이 제대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뚜렷한 주제와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전작보다 더 풍부해지고 세련된 영상은 깔끔한 매력을 더했다.

여기엔 조승우 류덕환 남상미와 구혜선 감독의 의기투합이 충분한 시너지로 작용했다. 조승우와 류덕환의 만남은 그 중에서도 흥미롭다. 평소 닮은 꼴 배우로 화제가 되었던 두 사람은 신체의 자유는 없지만 의외로 정신은 자유로운 상현과 몸은 자유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동현으로 분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조승우는 “연기자로서 몸을 쓰지 않고 얼굴만 가지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여기에 형제에게 한줄기 희망을 선사하는 상큼 발랄한 승아 역으로 남상미까지 가세해 감성 연기에 적격인 배우들의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구혜선 감독 스스로 말했듯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다소 현실과의 거리가 느껴지는 영화지만, 분명한 건 연출자로의 길을 탄탄히 다져나가는 그의 행보는 계속 주목하게 될 듯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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