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로마 위드 러브·테이크 쉘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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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4-19   |  발행일 2013-04-19 제40면   |  수정 2013-04-19
[신작대결] 로마 위드 러브·테이크 쉘터

★ 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式 위트로 버무린 로마에서의 마법 같은 일탈

런던, 스페인, 파리에 이어 우디 앨런 감독의 시선이 머문 곳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로마다. 좁은 골목을 돌 때마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유적지를 만날 수 있는 로마는 도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이는 작품마다 새로운 장르와 표현법으로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시켰던 앨런 감독에게 다채로운 색깔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 전작 ‘미드나잇 인 파리’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시간 여행으로 아름다운 파리를 경험하게 했다면, ‘로마 위드 러브’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법한 마법 같은 일탈이 앨런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버무려졌다. 추억, 명성, 스캔들, 꿈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의 에피소드로 담겨진 이 이야기는 마치 토핑 가득한 피자처럼 맛깔스럽다.

로마에서 휴가의 마지막 일정을 보내던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닮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을 로마의 거리에서 만난다. 그는 사랑에 무모했던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며 잭의 연애사에 사사건건 참견을 일삼는다. 또 특별한 재능도, 존재감도 없이 살아 오던 평범한 로마시민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 있다. 면도하는 모습과 식빵을 구워먹는 평범한 일상까지 생중계되는 삶을 살게 된 레오폴도는 유명세 때문에 귀찮지만, 차츰 그 삶에 익숙해져간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내 꿈은 길거리를 보통 사람처럼 다니는 것이다. 친구들과 피자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말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나를 몰라보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걱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명성에 대한 솔직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로마에 정착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신혼부부 안토니오와 밀리는 로마에서 각자 짜릿한 만남을 이어간다. 미용실을 찾기 위해 호텔을 나서다 길을 잃은 밀리는 우연히 흠모했던 배우와의 만남을 갖게 되고, 안토니오 역시 얼떨결에 로마 최고의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와 부부행세를 하게 된다. 딸의 결혼식을 위해 로마를 찾은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앨런)는 천부적인 음색을 갖고 있는 예비 사돈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에 대한 우디 앨런의 찬사로 가득하다. 할 이야기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는 듯 작정하고 로마 예찬론을 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평범해서 친근하다. 누구나 로마에선 소설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을 앞세운 다양한 에피소드로 유연하게 펼쳐낸다. 남의 애정관계에 마음껏 훈수를 두고, 유명세의 즐거움도 누려보고, 또 한번쯤은 이성의 유혹에 못이긴 척 이끌려 보기도 하고, 늦었다고 생각지 말고 꿈을 향한 열정을 다시 한 번 펼쳐보라고 말한다. 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우디 앨런식 메시지이기도 하다.

로마는 인물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풍부하게 채워주는 공간으로 충실히 기능한다. 그리고 우디 앨런은 전작들 못지않게 장소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며 멋스러운 로마의 모습을 구석구석 담아낸다. 잭과 모니카가 몰래 사랑을 속삭이는 보르게세 공원은 물론, 밀리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포폴로 광장과 마테이 광장이 펼쳐진다. 또 레오폴도의 에피소드에서는 로마 중심지의 유일한 현대 건축물인 아라 파치스 박물관과 공화국 광장이 등장하고, 제리가 꿈을 되찾게 되는 곳은 이탈리아의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로마 오페라 극장이다.

우디 앨런의 시선은 이미 자신의 영화적 뿌리인 뉴욕을 떠나 유서 깊고 아름다운 유럽의 도시들을 향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로마의 역사적인 명소를 배경으로 한 ‘로마 위드 러브’를 통해 조금은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행복한 그들의 모습을 시치미 뚝떼고 지켜본다. 우디 앨런 특유의 위트 섞인 화법은 이 과정에서 또 한번 빛을 발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운드트랙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요부터 오페라와 칸초네를 아우르는 이탈리아의 생생한 음악들은 ‘로마 위드 러브’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탈리아의 대표 테너가수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직접 출연해 선사하는 황홀한 오페라는 보너스. ‘로마 위드 러브’를 볼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신작대결] 로마 위드 러브·테이크 쉘터


★ 테이크 쉘터

지구종말보다 더 공포스러운 美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건설현장 매니저로 일하는 평범한 남자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아내 사만다(제시카 채스테인)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어린 딸 한나(토바 스튜어트)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평화롭고 안정된 그의 삶은 한순간에 위태로워진다. 그의 꿈속에선 매번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얌전했던 애완견과 수천 마리의 새들이 달려들고, 노란 기름 비를 맞은 마을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되어 자신과 딸을 위협한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그의 악몽은 점차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침내 커티스는 폭풍으로부터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뒷마당에 방공호를 설치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내와 친구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테이크 쉘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위태롭고 불안한 심리를 거대 폭풍에 맞서 가족을 지켜내려는 한 남자의 외로운 싸움에 빗대 묘사한다. 즉, 거대 폭풍을 전세계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간주하고, 커티스는 붕괴되어 가는 미국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한다.

이는 영화에서 감지되는 종말론적 모습보다 더 큰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도 부담스러운 약값과 진료비, 직장에서 해고돼 딸의 청각 수술이 쉽지 않은 상황들은 커티스 가족의 근심이자 의료보험 시스템 안에서 쉽사리 혜택을 받기 어려운 미국의 현실을 은유한다. 또한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상태지만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추가 대출을 결심하는 그의 모습에선 위태로운 가계 상태를 엿볼 수 있다.

환경 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폭풍우가 몰고온 노란 비는 흡사 기름과 유사한 색깔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독가스 누출 뉴스를 접하고 방독면을 준비하는 모습에선 환경오염이 유발하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직장은 물론 기본적인 삶의 터전까지, ‘테이크 쉘터’는 아차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프 니콜스 감독은 바로 이 불안감에 주목해 새로운 방식의 심리 드라마를 그려나갔다. 이는 삶에 대한 날카로운 사유가 깃든 니콜스 감독 자신의 심리와 맞닿아 있기에 가능했다.

‘테이크 쉘터’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공포와 불안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살아가면서 삶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테이크 쉘터’는 삶의 실재적 불안과 두려움이 영화에 투영된 실질적인 공포”라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들은 영화 속 커티스를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다. 때문에 커티스에게 시작된 악몽들은 폭풍의 징후일 수도 있고, 그가 두려워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는 커티스가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강렬하고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시종 절제된 화면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스토리로 폭풍전야의 공포감과 평범한 일상을 차분히 담아간다. 덕분에 ‘테이크 쉘터’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함축하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심리 스릴러로 완성될 수 있었다. 여기에 힘을 불어 넣은 건 마이클 섀넌과 제시카 채스테인이다.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는 듯한 제시카 채스테인의 헌신적이면서도 강인한 면모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고, 섬세한 눈빛으로 망상과 환각에 시달리는 커티스를 연기해낸 마이클 섀넌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테이크 쉘터’는 2011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제64회 칸영화제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당연히 제프 니콜스 감독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모아졌고 단박에 그는 미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대주로 부상했다. 그의 세번째 장편 ‘머드’ 역시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어쩌면 요원한 ‘머드’의 국내 개봉이 그래서 더욱 간절히 기다려지는 이유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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