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참배 관례화…종국엔 ‘천황제 부활’ 노려

  • 입력 2013-04-26 07:48  |  수정 2013-04-26 08:31  |  발행일 2013-04-26 제16면
일본 야스쿠니 참배의 ‘정치적 계산’

[도쿄 연합뉴스]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이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정치적 저의는 패배주의적인 전후 역사인식과 전쟁책임의 죄의식에서 탈피해 과거를 미화하고 일본인의 주체성을 재확립하는 데 있다.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각료나 정치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영령의 명복을 비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들의 집단 참배 행위 등은 전후체제 타파를 겨냥한 상징적인 정치 이벤트의 성격이 짙다. 정치인 개인 입장에서는 전몰자유족단체인 일본유족회 등 보수우익층의 지지표를 의식한 행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은 그동안 ‘야스쿠니 문제’가 어떤 궤적을 그려 왔는지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패전일인 8월15일에 공식 참배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처음이다. 그는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15일 두 명을 제외한 각료 전원을 대동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당당히 참배했다. 아시아 전쟁 피해국들의 군국주의 부활 우려와 ‘전전(戰前) 시대로의 복귀’라는 일본 내 비난을 무시하고 강행된 참배였다.

해군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전쟁 전에는 황국사관이 있었으나 전후에는 태평양전쟁사관이나 도쿄재판 사관이 생겨 일본이 무엇이든 잘못했다는 자학적 풍조에 물들어 있다"며 일본인으로서의 주체성 확립과 패배주의적 역사인식의 타파를 부르짖었다.



전쟁책임 탈피·과거 미화
‘야스쿠니 사관’ 국론으로
보수 우익세력 결집
아베, 장기 집권 목적도


그의 85년 참배는 일본 사회의 저변에 잠복해 있던 대동아전쟁 긍정론과 전쟁불가피론의 공론화이자 과거 미화 작업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당시 나카소네 정권의 공식 참배는 한 번뿐의 단명으로 끝났다.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일본 총리의 공식참배에 항의해 한국,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 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96년 7월 사적 참배를 내세워 야스쿠니를 찾았지만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 후로는 참배를 단념했다.

아시아 피해국의 반발로 수면하로 들어갔던 야스쿠니 참배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집권을 계기로 다시 부활했다.

총리 취임을 전후해 “어떠한 비판이 있어도 나는 반드시 종전기념일인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고 공언해 온 고이즈미는 나카소네 참배 21년 만인 2006년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 5년 반의 재임 기간 여섯 번이나 강행된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는 나카소네 이후 끊긴 ‘공식 참배’ 운동을 되살리려는 일본유족회 등 우익 세력의 부단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번 야스쿠니 신사 참배 파문을 둘러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치적 언동은 과거 고이즈미 전 총리의 그것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고이즈미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야스쿠니 문제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당시 그는 일본 국민 사이에 확산된 중국 불신, 중국 위협론 등을 등에 업고 야스쿠니 문제로 상징되는 대중 강경 자세를 취함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24일 국회답변을 통해 ‘일본 각료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참배를 정당화했다.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의 후광을 업고 2006년에 1차 집권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전후체제 탈피’를 내걸고 헌법개정 요건 완화 등을 밑어붙이다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

일본 진보세력은 총리의 공식 참배가 관례화되면 일왕의 공식 참배 운동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일왕과 야스쿠니 신사를 정점으로 한 전전(戰前)의 초국가주의 체제와 국가신도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 정신은 야스쿠니로 통한다. 총리와 일왕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 관례화 문제는 신격화된 천황제 부활, 헌법개정, 군사 대국화 움직임 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 진보 지식인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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